정삼연 :: 동호회


정삼연 로그인
아이디
비밀번호
 아이디, 비밀번호 찾기
 회원가입
자유게시판
 치기 어린 시절에 남겨...
 sbs 야구병법
 EBS 세계견문록 삼국지...
  EBS 세계견문록 아틀...
 정원기 소장와 함께 떠...
공지사항
 중화TV 삼국지 덕후 콘...
 sbs 야구병법
 EBS 세계견문록 삼국지...
  EBS 세계견문록 아틀...
 정원기 소장과 함께 떠...

강하의 문빙2003-10-17 14:52:29
 천공하후패http://cafe.daum.net/qldnjfeh


강하의 문빙


머리말.

형주의 강하군은 전략상 중요한 요충지이기 때문에 위나라와 오나라 모두 신경쓰며 중요시했던 곳이다. 오나라의 손권은 형주정벌을 위한 포석으로 강하군을 노렸으며 위나라의 조조는 다른 세력으로부터 형주를 지키기 위해 강하군을 관리했다. 그것은 형주를 얻고 관리함 있어서 강하군은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강하군을 수십년간 지키며 명성을 쌓은 명장이 있다. 바로 문빙이다. 문빙은 유표의 부장으로 시작하여 훗날 쟁쟁한 위나라의 장수들과 함께 명장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비록 《삼국지연의》에서 문빙이 소홀히 다루어지긴 했으나 그것은 《삼국지연의》가 소설이라 조연으로 치부한 인물을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이지 결코 문빙이란 인물 자체가 소홀히 대접받을만큼 하찮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필자는 문빙을 고찰해보면서 잊혀진 강하의 전설을 되살리고자 한다.


강하의 명장.

남양군 완현 사람인 문빙은 본래 유표의 부하로서 유표가 형주목으로 있을 때 대장이 되어 북방의 수비를 담당하는 장수였다. 그러다 유표가 죽고 유종이 형주목을 계승한 이후 조조에게 투항하자 조조의 장수가 되었다. 문빙은 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유표와 유종에 대한 충성심으로 조조의 신임을 받았다. 조조는 문빙을 등용한 이후 문빙에게 병사를 주어 조순과 함께 장성으로 가서 유비를 추격하도록 했으며 일이 끝나자 곧 강하군의 태수직을 맡겼다.

이로서 문빙과 강하군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당시 강하군은 전략적인 이유로 인해서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조조세력의 강하군과 손권세력의 강하군이 바로 그것이다. 본래의 강하군 즉 유표가 형주목으로 있었던 시절에 황조가 수호하던 강하군은 현재 호북성 무창 서남쪽에 있었던 곳으로서 형주의 입구였다. 그러다가 손권세력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강하군이 점령당했다. 하지만 강하군이 넓었고 장강을 끼고 있었기 때문에 손권세력은 수부가 있는 장강의 남쪽 지역만 장악하고 북쪽 지역은 장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손권세력의 강하군은 장강의 남쪽으로 굳혀졌다. 반면 장강의 북쪽에 위치한 강하군은 황조가 죽은 이후 후계자 선정에서 밀린 유기가 맡았는데 손권세력의 공격이 남쪽에만 집중되다 보니 북쪽으로는 큰 피해가 없었다. 그래서 유기는 만명에 달하는 군사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강하군이 이때를 기점으로 하여 남과 북으로 갈라졌고 각각 남쪽의 강하군은 정보가 태수가 되어 다스렸고 북쪽의 강하군은 유기가 태수가 되어 다스렸다. 그러다 얼마지나지 않아서 유표가 죽었고 유표가 죽은 이후 세력을 이어받은 유종은 조조에게로 항복하였다. 그러자 본래 조조세력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던 유비세력은 설자리가 없었다. 의탁해있던 유표세력이 조조세력으로 넘어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비세력은 남하를 했고 그때 유비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유기 역시 조조세력을 피해 남하했다. 그러자 유기가 없는 강하군은 주인을 잃게 되었고 그래서 조조는 문빙을 이곳 북쪽의 강하군의 태수로 삼은 것이다.

당시 북쪽의 강하군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장강을 사이에 두고 손권세력과의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조는 유표세력에서 북방의 대장을 맡았던 문빙에게 태수직을 주고 국경지대의 사무를 맡겼으며 관내후를 내려 제후의 반열에 오르게 하여 강하군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시켰다. 문빙은 자신이 본래 이끌던 병사들과 함께 강하군에 부임하여 업무를 수행했다.  

문빙은 강하태수가 된 이후 악진과 심구에서 관우를 격파한 공로로 연수정후(정후는 열후 중 세번재 급으로 관내후보다 높다.)에 봉해지고 토역장군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한진으로 가서 물자를 수송하고 있던 관우의 부대를 공격하고 형성으로 가서 물자를 불태우는 공을 세웠다. 이로서 유비세력은 남하에 있어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이 당시 유비의 세력은 10만이 넘었으므로 이동속도가 매우 느렸다. 그래서 문빙의 조속한 행동이 가능했다.)

그후 조가 죽고 조비가 세력을 이었다. 조비는 헌제를 통해서 제위를 선양받았고 위나라의 황제로 즉위했다. 문빙은 그 동안의 공적을 인정받아 장안향후(향후는 열후 중 두번째 급으로 정후봐 높고 현후보다 낮다.)에 봉해졌으며 절을 부여받았다.

황초 3년(222). 유비와 손권의 이릉대전이 끝난 이후 손권은 위나라와 관계를 끊고 독자적인 행동을 했다. 조비는 평소부터 손권세력을 노리고 있었으므로 조진과 하후상을 파견하여 강릉을 공격하도록 했다. 이때 문빙은 하후상의 군대에 편입되었다. 하후상은 문빙으로 하여금 단독으로 군사를 이끌고 면구에 주둔하도록 하고 도중에 석범에 진영을 세웠을 때, 적의 한 부대와 싸워 공을 세웠다. 문빙은 이 공을 인정받아 후장군으로 임명되었고 신야후(신야는 현이다. 그러므로 열후 중 첫번째 급인 현후에 봉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에 봉해졌다.

황초 7년(226) 7월. 손권은 조비가 죽은 틈을 타 급히 군사 5만을 이끌고 강하군을 공격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이었기에 손권은 석양현(강하군의 현명)에서 쉽게 문빙을 포위할 수 있었다. 이때 석양현의 사정은 매우 좋지 않았다. 손권이 공격하였을 때 석양현에 폭우가 내려 성의 목책이 붕괴되었고 백성들은 공격을 피해 밭이나 들로 흩어져서 보수할 길이 없었다. 문빙은 사태가 이러하자 손권의 군대가 도착했다고 하더라도 대처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생각해낸 것이 성안에서 숨어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숨어있으면 손권은 의심을 하게 될 것이도 그로 인해서 군사를 함부러 움직일 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그래서 문빙은 성산에 있는 사람들에게 밖을 보지 못하게 명령하고 집에 누워 일어나지 말도록 했다. 손권은 성안이 잠잠하자 의심을 품고 부하들에게 말하길 "북방의 이 인물이 충신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 군을 맡겼는데, 지금은 내가 왔는데도 움직이지 않으니, 이것은 비밀스런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니면 반드시 밖으로부터 구워니 있다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는 공격하지 못하고 포위한지 20일만에 군사를 철수시켰다. 그러나 문빙은 퇴각하는 군대를 공격하여 공적을 세웠다. 이 공으로 인해 식읍이 5백호 더 늘어 이전의 것과 합쳐 1천 9백호가 되었다.

진수가 《삼국지》에서 문빙을 평하길 문빙은 강하군에서 수십 년 간 있었는데, 위엄과 은혜가 있었으므로 적국에 명성을 떨쳐 적군이 감히 침입해 오지 못했다 라고 하였다. 이후에 별다른 강하군의 공격이 없었으므로 이 말은 곧 사실로 받아들여도 될 것이다.

위나라는 문빙의 식읍 중 일부를 때어내서 문대에게 주고 열후(열후는 세습되었다. 그러므로 그 전에 문빙이 열후로 봉해졌기 때문에 문대가 열후가 되었다.)로 삼았으며 문빙의 조카인 문후에게 관내후를 내렸다. 문빙이 죽자 장후란 시호를 내렸고 문빙의 아들인 문대가 일찍 죽자 문빙의 양자였던 문휴에게 작위를 계승하게 하였다. 그리고 문휴가 죽자 문휴의 아들 문무가 작위를 계승했다.

그후 정시 4년(243) 7월에 고인이 된 여러 공신들을 조조의 제모 앞 정원에서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대사마 조진, 조휴, 정남대장군 하후상, 태상 환계, 사공 진군, 태부 종요, 거기장군 장합, 좌장군 서황, 전장군 장료, 우장군 악진, 태위 화흠, 사도 왕랑, 표기장군 조홍, 정서장군 하후연, 후장군 주령, 집금오 장패, 파로장군 이전, 입의장군 방덕, 무맹교위 전위와 함께 모셔졌다. 이로 인해 문빙의 대우를 알 수 있다. 이것으로 문빙에 관한 모든 기록이 정리된다.


맺음말.

문빙은 유표의 시절 북방의 모든 혼란스러움으로 부터 형주를 지키던 대장이었고 조조의 시절엔 손권의 야심으로부터 형북을 지키고 전천후 장수로서 형북을 평정했던 장수이다. 그는 충분히 명장이라 불러도 좋을만큼 뛰어난 기량으로 한 지역을 오랫동안 지켜왔다. 다시 강조하지만 강하군은 당시 형북과 형남을 사이에둔 접경지대에였으며 최전방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곳을 수십년간 지키며 방어했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형북의 영원한 수문장.

문빙에게는 이러한 칭호를 내려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우린 문빙을 다시 봐야할 것이다.

덧글 1개
 신창정봉 문빙 대단함 ^___^;
훗날 문흠이나 문앙은 문빙과 아무관계도 없을까요?
 2004/07/30 10:07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green
연구소 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이메일 무단수집 거부  |  고객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