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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황석영 삼국지 출간에 즈음해2003-07-30 20:48:09
 좌자


>희지재님의 글에 거는 몇 가지 딴지

  언제 보아도 사려 깊은 논리 예의 바른 태도에 호감이 갑니다. 기본적으로 동일한 이해 선상에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약간의 이의와 함께 위축된 군영회 활성화를 위하여 몇 자 딴지를 걸어봅니다.
  
1. 황석영삼국지의 문제점
  황석영삼국지에서 지향하는 "존유폄조"는 물론 찬성합니다. "존유폄조"란 원저자인 나관중이나 개편자인 모종강의 기본 사상이므로 이를 바꾼다는 건 나관중삼국지가 아니라는 것이죠. 소위 "존유폄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국 민초들의 소망이자 역사관이기 때문에 이를 왜곡하거나 부정한다는 건 삼국지 자체를 왜곡하거나 부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존유폄조"의 원류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건 삼국지 흐름 면에서 순류이므로 이런 면에서는 황석영삼국지 경향을 적극 지지합니다.
  지적하고자 하는 건 작가로서의 황석영씨 자세를 말하는 겁니다. 이미 강조하신 것과 같이 황씨는 국민적 작가이며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형작가입니다. 그러한 그가 작가 본연의 독창적 해석을 포기하고 "정역"에 손을 댄다는데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의 "정역"은 결코 정역이 될 수 없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는 겁니다. 이를 증명할 내용적인 부분은 지난번 글에서 어느 정도 제기했으므로 여기서 더 이상 상세히 파고들 필요가 없겠지요(또 다른 증거가 더 있습니다만...).
  감옥에 있으면서 7년 동안이나 구상을 했다는 말은 이상합니다. 정역을 하는데 무슨 구상이 필요하다는 겁니까? 정역이란, 말 그대로 원문을 충실하고 성실하게 번역하면 그만인 겁니다. 구상을 했다는 말은 "독자적 개편"을 염두에 두었기에 나온 말입니다. 특히 전쟁부분에 자신의 필력을 최대한 쏟았다는 발언은 명확히 정역의 범주를 벗어난 어떤 별도 형태의 새로운 번역을 의미한다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황석영삼국지의 정체는 대체 뭐라는 겁니까? 결국 정역도 아니고 독창적 개역도 아닌 어정쩡한 삼국지가 아닌가요? 이게 문제란 겁니다.
  결론이 이러하다면 왜 굳이 "정역"이라고 우기고 떠드는 것입니까? 결국 그 이유는 저 멀리 높이 화려하게 떠있는 이문열삼국지를 부러워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또 황씨는 어느 라디오 대담에서 삼국지 주인공을 "역사"라고 표현했습니다. 역사가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실체란 말인가요? 이게 무슨 언어도단인가요? 물론 이 말을 넓게 해석하여 삼국지의 주인공은 민중이라고 풀이해봅시다. 그래야만 말이 좀 되겠지요. 그래요. 삼국지 주인공은 민중입니다. 유비 관우 장비가 누굽니까? 그들은 그야말로 민중의 대표가 아닙니까?

2. 이문열삼국지의 문제점
  이문열삼국지의 특징은 조조와 조조집단의 행위를 부상시켰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기존 삼국지의 "존유폄조" 일변도에다 조조 행위의 정당성, 필연성 등을 시도한 건 기존삼국지에다 딴지를 건 셈이죠. 기존 삼국지의 흐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조조를 부각시켰다고 강변할지라도 엄연히 "존유폄조"라는 기본 원칙을 위배했으니 "조조의 복권"을 시도했다는 말이 성립됩니다. 이게 바로 이씨 삼국지의 문제점입니다. 조조는 민중의 대표라기보단 민중 위에 군림하는 자였으며, 민중을 자신의 정략에 이용한 정치가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런 면에서 불세출의 유능함에도 불구하고 천년동안이나 민중의 멸시를 받았던 겁니다.
  조조는 유능한 인재입니다. 탁월한 전략가요 정치가에다 천재적인 문학가였습니다. 원대한 포부, 예리한 상황 판단, 과감한 결단력과 행동, 추호도 차착 없는 전자계산기 같은 두뇌까지 갖추었죠. 뒤집어 표현하자면 도덕적 가치나 휴머니즘 보단 현실적 물질적 부가가치를 더욱 중시한 인물이었죠. 이 때문에 평생을 게릴라전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은 모택동의 존경을 받았고, 기회가 닿는 한 침략을 일삼는 일본인들의 가치 추구 대상이 된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와 같은 조조를 부각시킨 이문열삼국지가, 역사상 한번도 남의 나라를 침략해본 적이 없는 한국에서, 어찌하여 1400만 부나 팔리는 겁니까? 그게 이문열 개인의 문제인가요, 아니면 어느 샌가 조조와 같이 되어버린 우리 현대인의 심리적 문제인가요?
  그래서 이문열삼국지가 공전의 히트를 치는 이유가 이문열의 보수주의 때문이 아니라고 보는 겁니다. 보수주의니, 진보주의니 구분 짓는 편가르기에는 기본적으로 동참하고싶지 않습니다. 그러한 담론들은 어느 시대고 존재할 수 있는 소수그룹의 편견들일 뿐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문열을 옹호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습니다. 그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작가의 입장으로 보아 지나쳐 보일 정도의 정치적 발언을 하는 건 눈살이 찌푸려지는 행태입니다. 또 조조와 같은 극단적 이기주의를 자신의 내부에 수북히 쌓아두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슬픈 건 아직 고교생에 불과한 희지재님까지 이런 이념적 편가르기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죠. 이게 우리네 현주솝니다. 당파적 편가르기, 이념적 편가르기로 인하여 우리 나라는 멍들었습니다. 그 기간이 자그마치 고려가 멸망한 이후 오늘 날까집니다. 적어도 우리가 삼국지 토론을 할 때만큼이라도 순수한 삼국지 토론만 하기로 합시다. 그래서 결론 내리고 싶습니다. 이문열삼국지가 히트하는 이유는 그의 도덕적 문제 때문이 아니라 그걸 읽고 공감하는 독자들의 문제라고 말입니다.
  이문열의 개인은 잘 몰라도 이문열삼국지만큼은 오히려 그의 치열한 작가적 노력이 성공을 거둔 예라고 평가하고싶군요.

3. 장정일삼국지의 문제점
  아직 삼국지해제를 읽는 중이라 전체적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겠지만 몇 마디 거들겠습니다. 지난번 말씀하신 의견에 동감합니다. 삼국지를 중화사상을 앞세운 편협한 민족주의적 관점으로 몰고 가는 데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오만과 자존의 중화사상 이면에 도사린 블랙홀 같은 중화문화의 포용력을 도외시한 편견이기 때문이죠.
  작가적 정열에 의한 독창적 해석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냅니다. 장정일 같은 그러한 시도라야만 기존 이문열 삼국지와 샅바 대결을 할 자격이 있겠지요.
  그러나 경륜보다는 의욕이 앞선다 고나 할까요. 삼국지를 단순한 천재성이나 정열을 앞세워 재단한다면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 있다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삼국지해제를 대단한 책이라고 내세우는 것 같은데, 거기 수록된 견해들은 지금껏 나온 수많은 견해들의 재탕 삼탕일 뿐입니다. 한마디로 뿌리와 줄기는 약한데 꽃과 잎만 무성하다할까요? 정작 진지하게 다루어야할 기초문제에 대한 언급은 너무 미진하고 상황논리만 만발합니다. 지금껏 정삼연 회원들이 갑론을박해왔고 또 앞으로 얼마든지 피력할 수 있는 논리 범주에 불과한 내용이라는 거죠.
  삼국지 기초공부가 약하고, 역사사실과 허구 문제의 논의에선 졸속 공부로 말미암은 방대한 내용의 흐름 파악에 역부족이고, 인용한 서적을 솔직하게 밝히지 않은 혐의도 허다합니다. 특히 적벽대전을 관도대전보다 경시하는 문제에 이르러선 아연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독창적 해석으로 보기엔 과문의 소치로 해석하는 게 더욱 합당합니다.
  한마디로 요란하게 차려놓은 밥상이지만 정작 먹어 볼만한 음식은 없군요. 종횡무진 구사된 부화한 논리보다는 차분히 삼국지 정역이라도 한 번 해본 후 개역을 시도하는 게 어떠냐고 권하고 싶군요.          

* 정삼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3-10-0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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