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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공하후패(2001-01-09 15:37:24, Hit : 4284, Vote : 230
 <공명의 선택> 7장 융중에 누운 용공명의 선택
공명의 선택 (79)…제7장 융중의 누운 용 (1)
융중(隆中)―.
양양성에서 서쪽으로 20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이다. 완만한 구릉이 있고, 강물이 흐르고, 수목이 우거졌다. 평화롭고 조용한 곳이었다. 18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은 그 곳을 융중이라 부르고 있다.

한 가족이 그 곳 융중으로 이사를 왔다. 가족이라고 했지만, 17세 정도의 청년과 열 살이 조금 넘었을 계집아이, 그리고 아홉 살 난 어린 소년이 전부였다. 세간도 단출했다. 공명과 그의 두 동생인 제갈정, 제갈균이었다.

―너희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구나.

숙부 제갈현의 장례식이 끝나자 숙모 강씨는 이렇게 말하고 홀연히 친정인 동해로 떠나갔다.

―너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당분간 어머니를 모시고 곡아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 같다. 두 동생을 잘 부탁한다.

형 제갈근이 황풍을 통해 이런 말을 전해왔을 때에도 공명은 별로 마음의 동요를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어쩌면 이산이야말로 난세의 지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공명은 성장했다.

융중 마을 남쪽으로 작은 언덕이 있었다. 그 언덕은 마치 용이 누워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융중 사람들은 그 언덕을 와룡강(臥龍岡)이라 불렀다. 언젠가는 이 곳 융중 마을에서 위대한 성인이 태어날 것이라 기대하면서.

양양성을 나와 융중으로 들어온 공명은 그 와룡강 언덕 기슭에 초려를 짓고 두 동생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난세의 어지러움이 미치지 않는 융중의 자연 풍광은 소년 시절부터 연이은 불행을 겪어야 했던 청년 공명의 상처입은 마음을 치유해주기에 아주 적합했다.

그러나 처음 한동안은 역시 힘들었다. 고향 양도의 마을이 수시로 눈앞에 아른거렸고, 어머니와 아버지, 숙부와의 생활들이 생생히 뇌리를 스쳐갔다. 제환공 때의 명재상 관중에 매료되어 한껏 꿈을 키우던 소년 시절이 그리웠다.

초려를 짓고 살던 와룡강 서쪽으로 낙산(樂山)이라 불리는 산이 있었다. 갈건야복(葛巾野服) 차림의 공명은 그 낙산에 자주 올랐다. 낙산은 그 생김새가 태산과 흡사했다. 그 곳에 오르면 태산군 승을 지내던 아버지 제갈규의 모습이 저절로 눈앞에 떠올랐다.

‘그 때가 아버지에게는 가장 좋았던 때였을 것이다.’

낙산 중턱에 정자 하나가 세워져 있다. 공명은 자주 그 정자에 올라 무릎을 끌어안고 휘파람을 불었다. 어릴 적부터 즐겨 부르던 ‘양보음’가락이었다.

제나라 성문을 걸어나오니

아득히 탕음 마을이 바라다보이네.

마을에 무덤 셋이 있는데

이것이 저것 같고, 저것이 이것 같구나.

묻노니 이것이 누구의 무덤인가,

전강과 고야자의 무덤이로다.

힘은 능히 남산을 밀어낼 만하고

또한 땅마저 끊어버릴 수가 있었도다.

그런데도 하루아침에 참언을 당해

복숭아 두 개로 세 용사가 죽음을 당했네.

누가 그런 꾀를 내었는가,

제나라 재상 안자(晏子)이어라.

그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았다. 슬픔도 아픔도 모두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마치 오랜 방랑 끝에 고향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어떤 날은 하루종일 그 정자에 앉아 노래를 부른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여기던 융중 마을 사람들도 나중에는 이러한 공명의 모습에 익숙해져갔다. 아예 정자의 이름을 포슬정(抱膝亭)이라 붙여주었다.

그렇게 공명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나갔다.

공명의 선택 (80)…제7장 융중의 누운 용 (2)
세월이 흘렀다. 사람들은 그 세월을 유수(流水)와 같다고 한다. 참으로 절묘한 비유다.
한 생명이 태어나고 다른 생명이 사라지고, 한편에서는 밭을 갈고 다른 한편에서는 전쟁을 하고, 어떤 이는 권좌에 올라 향음에 빠지고 또 어떤 이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세상을 원망한다. 그래도 세월은 흐르는 물처럼 쉬임없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 어느 누가 세월의 흐름에 적용받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공명에게도 세월은 흘렀다. 흐르는 물은 언제나 그 물이 아니듯, 흐르는 세월도 언제나 그 시간이 아니었다. 공명은 변해갔다. 그의 모습도 변해갔고, 생활도, 행동도, 정신세계도 변해갔다. 그것을 우리는 성장이라고 하는가.

공명은 8척이 넘는 헌헌장부가 되었다. 당시의 1척은 23cm였으니, 180cm가 넘는 큰 키이다. 세월의 위대함이다. 목소리도 청아했으며, 한마디 한마디 말에 위엄이 서렸다. 눈동자는 깊고 맑았으며 언제나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비록 옷차림은 갈건야복이었으나 그의 전신에서는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풍겨났다.

공명은 융중 생활을 하는 동안 자연을 배웠다. 아니, 자연에게서 자연의 이치를 배웠다. 자연은 그의 엄한 스승이었으며, 그는 자연의 착실한 제자였다. 하늘의 별자리에서 우주의 이치를 깨달았고, 계절의 변화에서 세상의 오묘함을 터득했다. 피어나는 꽃잎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절감했으며, 떨어지는 나뭇잎에서 순환의 이치를 생각했다.

―하늘을 알고, 땅을 알고, 사람을 안다는 것.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늘이 뿌리는 비와 눈만 볼 뿐이며, 땅의 험준함과 평탄함만 볼 뿐이며, 사람의 말과 행동만을 대할 뿐이다. 진정한 하늘과 땅과 사람은 그 너머에 있거늘.

―옛 사람들의 경전에 적혀 있는 글귀는 수백 개의 가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요체는 뿌리와 줄기를 볼 줄 아는 안목이다.

자연의 이치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계절이 아닐까. 공명은 계절의 변화에서 하늘과 땅과 사람의 본질을 깨달으려고 애썼다.

일 년의 첫 시작인 정월을 맹춘(孟春)이라 한다. 맹춘에는 하늘의 기운이 아래로 내려오고 땅의 기운이 위로 솟구쳐 올라가기 때문에 천지가 잘 어울리고 초목이 바쁘게 움직여 소생한다. 동풍이 불어 언 땅을 녹이며,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은 바야흐로 기지개를 켠다. 이 계절이 되면 천자(天子)는 교화를 베풀고, 은택이 모든 백성에게 고루 미치도록 한다. 농자(農者)들은 좋은 날을 택하여 풍년을 기원하고, 한 해의 농사일을 계획한다.

자연은 공명의 마음을 넓게 해주었으며, 계절의 변화는 그의 마음을 깊게 해주었다.

공명의 선택 (81)…제7장 융중의 누운 용 (3)
공명이 두 동생을 데리고 융중의 와룡강에 초려를 지었다는 것은 곧 현실에서 벗어나, 날씨가 갠 날이면 밭에 나가 일하고 비가 오는 날에는 낭랑히 책을 읽는 청경우독의 생활을 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런 만큼 그는 일체 바깥의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알아보고 교유하는 것 또한 세상사의 어쩔 수 없는 이치이다.

융중 생활을 하기 시작한 지 여러 해가 바뀌는 동안, 공명은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그 중 몇 명과는 매우 절친한 사이로까지 발전해나갔다. 사마휘(司馬徽), 방덕공(龐德公), 방산민(龐山民), 서서(徐庶), 석도(石韜), 최주평(崔州平), 방통(龐統), 맹건(盟建), 황승언(黃承彦) 등이 그들이었다.

유유상종이라고 했던가. 이들 역시 공명과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삼아 조용히 살아가기를 바라는 일민(逸民)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한 일민들이 아니었다. 세상에 나가면 능히 사람들 위에 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당대의 재사들이요, 지식인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양양 근교의 한적한 산수를 택하여 수림 속에 묻혀 사는 것은 오로지 권세와 재물과 명예를 위해 투쟁과도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현실이 싫어서였기 때문이었다.

공명이 이들과 알고 교유하게 된 것은 그가 사마휘의 문하생으로 입문하면서 부터 였다.

사마휘는 예주 영천(潁川) 땅 사람으로 자를 덕조(德操)라 했다. 그는 일찍부터 높은 학문에 이르렀고, 인격 또한 고매하고 청아하였으나 번잡하고 소란스러움을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환로에 오르지 않고 초야에 묻혀 지냈다.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언제나 조용하여 사람들은 그를 '수경(水鏡) 선생'이라고 부르며 존경하였다.

특히 인물을 감별할 줄 아는 안목이 높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았으나 그는 좀처럼 인물평을 해주지 않았다.

사마휘가 영천 땅을 떠나 양양의 단계(壇溪) 근처 수림에 자리를 잡은 것은 불과 이삼 년 전의 일이었다. 군웅들의 다툼의 장이 되어버린 영천의 어지러움을 피해서였다. 당시 중원의 대부분이 전화에 휩싸였지만 형주목 유표가 다스리는 양양 땅만은 전운에서 비껴나 평화롭고 조용했다. 그런 이유로 그 무렵, 많은 명사들이 난리를 피해 양양 땅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사마휘가 양양을 택한 것은 반드시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양양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아직 영천에 머물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양양 땅의 청년 선비 방통이 사마휘의 높은 명성을 흠모하여 2천 리 길을 멀다 않고 영천으로 찾아왔다. 그 때 방통의 나이 불과 15세.

공명의 선택 (82)…제7장 융중의 누운 용 (4)
사마휘는 뽕나무 위에 올라가 뽕잎을 따던 중 방통의 방문을 받았다.
―어디서 온 누구인고?

―양양 땅에서 온 방통이라고 합니다.

―누구에게서 배웠는고?

―당백부 방덕공에게서 배웠습니다.

―무슨 일로 왔는고?

―선생님의 높으신 이름을 흠모하여 이야기를 나누고자 찾아왔습니다.

가르침을 받자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자는 것이다. 뽕잎을 따던 사마휘의 손이 멈췄다. 생기기도 못생긴 어린 놈이 여간 당돌하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마휘는 곧 자신이 사람을 잘못 보았음을 깨달았다. 시험삼아 던진 질문에 방통은 막힘없이 대답할 뿐 아니라 자신이 생각지 못했던 여러 가지 견해와 생각을 술술 토해내는 것이 아닌가.

사마휘는 방통의 이야기에 끌린 나머지 뽕나무 위에서 내려올 생각도 하지 않았고, 방통은 방통대로 뽕나무 아래 앉아 사마휘와의 대화에 빠져들었다.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 새 한밤중이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열두 시간을 넘게 꼬박 이야기를 나눈 것이었다.

사마휘는 탄복하며 말했다.

―양양에 인재가 많이 난다더니 과연 헛소문이 아니로구나. 약관의 방통이 이 정도이니, 그를 가르친 방덕공은 말해 무엇하랴.

그뒤 영천에도 풍운의 회오리가 불어닥치자 사마휘는 짐을 싸면서 말했다.

―내가 머물 곳은 오로지 양양뿐이다.

그는 양양에 도착하자 수림이 우거진 단계에 집을 마련했다.

사마휘가 양양으로 왔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일대의 명사들과 청년 선비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가장 먼저 방통이 달려왔고, 이어 최주평·석도·맹건 등이 사마휘를 찾았다. 자연스럽게 사숙(私塾)이 형성되었다.

형주목 유표는 젊은 시절 「당고의 옥」을 겪은 청류파 지식인 출신이었다. 그는 인재를 아꼈고, 인품이 고결한 선비를 존경했다. 환란을 피해 양양으로 온 재사들을 초빙하여 자신의 밑에서 일하게 했다.

그런 유표가 학식과 명망이 높은 사마휘를 모른 척할 리 없었다. 그는 사마휘에게 사람을 보내 출사할 것을 권했다.

"죽림에서 나오시어 저와 함께 천하를 보존하는 일에 힘쓰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사마휘는 한마디로 유표의 권유를 거절했다.

"이 한 몸도 제대로 보존할 줄 모르는 내가 어찌 감히 천하 운운할 자격이 있겠소이까. 조용히 산야에 묻혀 후학들을 가르치는 것이 내 분수에 맞는 일인 듯하오."

"그렇다면 제자들 중에서라도 쓸 만한 인재를 천거해 주신다면 중용하겠습니다."

"아직 유경승의 눈에 찰 만한 제자를 양성하지 못했습니다. 차후 뛰어난 제자가 배출되면 추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사마휘는 그 어떤 제자에게도 유표에게 나가 일할 것을 권유하지 않았다.

이러한 소문은 융중에서 혼자 조용히 지내던 공명의 귀에도 들어갔다.

공명의 선택 (83)…제7장 융중의 누운 용 (5)
‘사마휘라는 사람은 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유표의 초빙도 거절한 것일까?' 공명은 사마휘라는 인물에 대해 호기심과 궁금증을 느꼈다. 와룡강에 은거한 이후 처음으로 외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하루는 융중을 나와 단계로 가 사마휘의 정사(精舍)를 찾았다. 사숙이라고 했지만,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었다. 공부는 각자가 집에서 따로 했고, 그 곳에서는 주 로 토론과 대화를 나누었다. 요즘으로 치면 대학원 수업 방식이다.

주제도 일정하지 않았다. 경전에 관한 대화도 무방했고, 세상사에 대한 토론도 상관하지 않았다. 많 은 청년 지식인들이 그 곳에 모여 자신의 의견을 발표했고, 남의 이야기를 경청했 다. 사마휘 역시 조용히 앉아 귀를 기울였으며, 이따금씩 자신의 견해를 들려주기도 했다.

공명은 수줍은 아가씨처럼 한구석에 조용히 앉아 그들의 수업을 참관했다. 그는 거기에서 깊은 인상과 감명을 받았다. ‘아직도 이런 세계가 있었구나.'

그도 한때 학당을 다닌 적이 있었다. 태산에서였다. 그의 애창곡 ‘양보음'도 그 시 절에 배운 것이었다. 그 때의 학우들이 그리움처럼 밀려왔다. 태산을 떠나면서부터 그의 평온함은 깨졌다. 그 이후로는 슬픔과 아픔과 불우함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지 금 모처럼 ‘사람에 대한 따스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만 가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공명이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그 때 한 문하 생이 사마휘에게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께서 형주목 유경승에게 제자의 천거를 약속하셨으면서도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제자도 천거하지 않으신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두들 궁금하게 여기고 있던 바였다. 약속이나 한 듯 눈을 모아 사마휘의 입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사마휘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지극히 짧았다. "아직도 그것을 모르는가?"

실망스런 표정으로 제자들을 둘러보던 사마휘의 눈길이 낯선 청년의 얼굴에 가 멎었다. 그런데 그 청년만은 다른 문하생들과 달리 잔잔한 웃음을 입가에 숨기고 있는 것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사마휘는 그 청년이 궁금했다. "자네는 누군가?" "융중에 사는 제갈량이라 합니다." "이 곳은 처음인가?" "예, 오늘 처음 들러보았습니다."

"자네가 한 번 답을 말해보게." 그러나 공명은 수줍게 미소만 머금었다. 그런 공명을 사마휘가 다시 한 번 재촉했 다. "나는 이미 자네의 답을 들었네만…… 여기 있는 문하생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어 서 그러네."

그제야 공명은 입을 열어 낭랑히 말했다. "밝음 속에 싸인 어둠은 몰아내기가 어려운 법이지요."

모든 문하생들이 어리둥절하는 중에 사마휘는 감탄의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면 서 말했다. "제갈량이라고 했던가? 내일부터 이 곳에 나와 공부를 하게."

이렇게 해서 공명은 사마휘의 문하생으로 입문하게 되었고, 이 때 알게 된 사람들 이 사마휘의 문하생인 서서, 최주평, 방통, 맹건, 석도, 방산민 등이었다.

―밝음 속에 싸인 어둠은 몰아내기 어렵다. 유표는 형주 사람들 사이에 명군(明君)으로 알려져 있었다. 백성을 사랑하고 능력 있는 선비를 아꼈다. 큰 야심도 없는 것처럼 보여 군사를 내는 데 매우 신중하여 웬만한 싸움에는 휘말려들지 않았다. 그래서 중원 전체가 전화에 휩싸일 때에도 양양을 중심으로 한 형주 일대만은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었 다.

공명의 선택 (84)…제7장 융중의 누운 용 (6)
한번은 동탁의 부하 장수였던 장제가 형주의 경계를 넘어 침공한 적이 있었다. 그 싸움에서 장제는 화살을 맞고 전사했다. 형주 관원들이 축하하자 유표가 말했다.
―장제가 형주로 내려온 것은 궁해서였다. 주인이 손님을 맞아 예를 다하지 않았 기 때문에 서로 전쟁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내가 진정으로 바라던 바가 아니었 다. 나는 장제의 죽음에 대한 조의는 받겠지만, 결코 축하의 말은 받지 않겠다.

이후로 사람들은 더욱 유표를 명군이라 칭송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만 본 유표의 모습이다.' 공명이 사람을 감별하는 능력이 탁월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는 유표에 대해서만은 나름대로 확실한 인물관을 가지고 있었다.

‘명군(明君)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암군(暗君)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명군으로 가장한 암군이라고 공명은 단정 짓고 있었다. 암군 이라면 어리석은 군주라는 뜻이다. 폭군(暴君)과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유표가 암군이라는 것은 사람을 쓰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능력 있는 인재 를 아끼기는 했지만 전혀 부릴 줄을 몰랐다. 또한 일을 맡겨도 완전히 믿지 않았다. 일찍이 헌제가 이각과 곽사의 시달림에 벗어나기 위해 장안을 탈출하여 낙양으로 향한 적이 있었다.

이 때 유표도 그 소식을 들었다. 유표의 보좌관이라고 할 수 있 는 치중(治中) 등희(鄧羲)가 간했다. ―빨리 북으로 올라가 헌제를 맞이하여 형주로 모셔오십시오.

그러나 유표는 등희의 말을 듣지 않았다. 조조가 헌제를 맞이하여 도읍을 허창으 로 옮기자 기껏 공물을 바쳤을 뿐이었다. 그 뒤로 등희는 병을 핑계삼아 관직에서 물러나 유표 시대에는 결코 벼슬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예장 태수 제갈현의 죽음도 유표의 인색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형주 땅을 넓히려는 의욕에 예장으로 가겠다고 자원한 제갈현에게 그는 고작 2천 명의 군사를 딸려보냈다. 희생을 줄이겠다는 의도였지만 결국은 아끼는 심복 부하 만 죽이고 말았다. 이것이 공명이 유표에게 마음을 두지 않은 결정적인 원인이었을 것이다.

당시의 역사서는 유표의 사람됨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유표는 겉으로는 자태가 의젓했지만, 속으로는 시기와 의심이 많았다.

또 이렇게 적혀 있다. 유표는 겉으로는 관대했지만 속으로는 질시하고, 모략을 좋아했으며, 결단력 이 없고, 인재가 있어도 등용하지 않았고, 좋은 말을 들어도 받아들이지 않았으 며, 적자를 내쫓고 서자를 세웠으며, 예의를 버리고 편애를 숭상했다. 그러므로 후계자 시대에 이르러 고통을 당하고 사직이 엎어졌어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 니었다.

잘 통치하는 것 같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더할 나위없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 이 유표이다―라는 것이다. 차라리 애초 어리석은 군주라면 기대조차 하지 않을 것 이고, 주위 인재들이 잘 보좌하면 된다. 그러나 유표는 총명한 군주인 것처럼 보였 다.

그것이 더 큰 문제점이라고 사마휘는 판단했다. 그런 군주에게 몸을 맡기면 일생 을 그르치기 쉽다. ‘사마휘 선생은 유표를 암군으로 보고 있다.' 유표의 초빙에 대한 사마휘의 거절을 공명은 이렇게 해석했다. 제자들을 유표에게 천거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리라. 그리하여 사마휘의 질문을 받았을 때 그 대 답으로, ―밝음 속에 싸인 어둠은 몰아내기 어렵다. 라고 비유한 것이었다.

이 비유를 알아들은 사람 역시 사마휘뿐이었고, 문하생들은 어느 누구도 그 말뜻 을 깨닫지 못했다.

공명의 선택 (85)…제7장 융중의 누운 용 (7)
공명의 사마휘 사숙 생활은 행복했다. 아마도 그의 일생 중 가장 평온하고 즐거웠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스승도 있고,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공명은 별로 말이 없었다. 언제나 잔잔한 미소로 지냈다.

"밝음 속에 싸인 어둠은 몰아내기 어렵다, 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사마휘 사숙의 동문 서서가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공명의 대답은 역시 잔잔한 웃음이었다.

서서는 사마휘와 같은 고향인 영천 태생이었다. 사마휘가 양양으로 내려올 때 함께 따라온 영천 시절의 제자이기도 했다. 그가 사마휘 정사(精舍)에 입문하게 된 경위는 매우 흥미롭다.

서서의 본래 이름은 서복(徐福)으로, 자를 원직(元直)이라 했다. 그는 미천한 가문의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유협(遊俠)을 좋아했다. 유협이 무엇인가. 요즘으로 치면 깡패짓이다. 아마도 그는 고향 마을 일대에서 이름난 불량배였음에 틀림없다. 서서는 특히 칼을 잘 썼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검술에 능했다.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물론 인근의 다른 불량배들도 그런 그를 한결같이 꺼리고 무서워했다. 요즘 깡패도 마찬가지지만 옛날 깡패도 자신들끼리의 의리(義理)는 매우 중요시 여겼다.

어느 날, 그를 따르던 졸개 하나가 이웃 마을 불량배의 칼에 맞아 심한 상처를 입었다. 서서는 졸개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이웃 마을로 쳐들어가 그 곳 불량배들을 모조리 소탕했다. 그 와중에 사람도 두어 명 죽었다. 그는 살인자가 된 것이다. 그 날로 얼굴에 회를 칠하고 머리를 길게 풀어뜨려 변장한 후 도망쳤지만, 이내 검문하던 관리들에게 체포당했다.

―네놈이 서복 맞지?

―아니오, 나는 서복이 아니오.

―그렇다면 이름이 무엇이냐?

―….

서서는 입을 굳게 다물고 결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심증은 갔으나 물증이 없었다. 그래서 관리들은 서서를 수레 위의 나무기둥에 묶고 시장으로 끌고 다니며 그를 아는 사람이 있으면 나오라고 외쳤다. 하지만 아무도 서서를 안다고 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보복이 두려워서였으리라.

그 날 밤, 서서의 졸개들이 급습하여 옥을 깨고 서서를 구해냈다. 겨우 목숨을 건진 서서는 밤을 도와 이웃 고을로 도망쳤다. 밤이슬을 맞으며 칼 한 자루에 의지하여 이곳 저곳 몸을 피해 다니던 서서는 문득 자신의 인생이 더없이 초라하고 가련하게 여겨졌다. 그리하여 그는 들고 있던 칼을 버리고 허름한 두건에 홑옷 차림으로 사마휘의 정사를 찾아갔다.

―학문을 배우고 싶습니다.

사마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서를 받아주었다. 서복이었던 그가 이름을 서서로 바꾼 것도 이 때의 일이었다.

서서는 사마휘 정사의 문하생들과 함께 학문에 정진하려 했으나, 학생들이 서서의 전력을 알고는 그를 거부했다. 이에 서서는 매일 아침 동트기 전에 일어나 학당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책장도 정리하는 등 자신이 예전의 서복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던 문하생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의 정성에 감동하여 마침내 그를 동문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서서는 사마휘 학당에서 제일가는 경학의 실력자가 되었다. 같은 고향 친구인 석도와 각별하게 지내다가 스승인 사마휘가 남쪽으로 내려간다고 하자 석도와 함께 스승을 모시고 양양으로 옮겨왔던 것이다.

공명의 선택 (86)…제7장 융중의 누운 용 (8)
서서는 처음에는 공명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 ‘건방진 놈이다.' 별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서서의 눈에는 건방지게 비친 것이다. 그런데 날이 갈 수록 그 침묵 속에 깊은 뜻이 숨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의혹 이 있으면 참지 못하는 것이 서서의 성격이었다.
하루는 스승 사마휘를 찾아가 물었다. "공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명은 와룡(臥龍)이다." 사마휘는 단 한 마디로 대답했다. 세상의 유명하다는 인물 비평가들도 그의 앞에 만 서면 허리를 숙인다는 사마휘 안목이다. 그 안목이 공명을 ‘와룡'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서서는 내심 질투심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공명에게 끌리는 호감과 매력이 더 강했다. 서서는 공명을 계 속 지켜보았고, 마침내는 그의 가슴 속에 흐릿하게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발견하게 되었다. 서서는 공명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읽었다. 그것은 공명을 이해하 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이해는 서서와 공명 사이에 뜨거운 우정을 불 타오르게 했다.

공명은 서서를 비롯해 석도, 최주평, 방통, 맹건 등과 가깝게 지내면서부터 그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들은 함께 몰려다니며 술을 마시기도 했고, 강에 나가 낚시를 즐기기도 했다. 대화와 토론은 기본이었다.

한번은 단계 개울가에 모여앉아 탁족을 하던 중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토론을 벌 인 적이 있었다. 모두들 경전의 자구(字句)를 해석하고 난 후 대요(大要)를 파악하 는 방법이 좋다고 말하는 중에 공명만이 다른 의견을 내세웠다.

"나는 대요만을 파악할 뿐 결코 글자 하나하나의 뜻에는 얽매이지 않네." 공명의 그 말에 맹건이 반박했다.

"글자의 뜻을 모르고 어찌 대요를 파악할 수 있단 말인가? 자네의 그 방법은 결 코 옳지 않네."

그러자 공명이 엉뚱한 말을 했다. "만일 자네들이 관직에 나간다면 주(州)의 자사나 군(郡)의 태수 정도까지는 무난 히 오를 수 있을 것이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달리 표현하면 자사나 태수 위의 자리는 더 이상 오르지 못 할 것이라는 뜻이다. 맹건은 반격하듯 물었다. "그렇다면 자네 자신은 어느 자리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공명은 빙그레 웃을 뿐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공명의 친구들은 공명이 자신들에 비해 별로 특출난 인물도 아니고, 비범한 재능 을 지닌 기재라고도 생각지 않았다. 그저 머리가 좋고 약간의 재주를 지닌 청년 정 도쯤으로 여겼다.

"공명을 와룡이라고 한 사마휘 선생의 안목은 정확하지 않다." 공명이 듣지 않는 곳에서는 이렇게 숙덕거리곤 했다. "오히려 재능은 봉추(鳳雛)다."

봉추는 방통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일찍이 뽕나무 밭에서 방통의 비범함을 알아본 사마휘가, ―방사원(士元=방통의 자)은 가히 봉황에 견줄 만하다. 라고 칭찬한 데서 유래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서·석도·최주평·맹건 이렇게 네 사람이 융중에 있는 공명 집으로 놀러 왔다. 마을로 들어서 와룡강을 오르던 중 그들은 밭에서 일하고 있는 농부들의 노래 소리를 들었다.

푸른 하늘은 둥그런 덮개 같고 넓은 땅은 바둑판이로구나.

세상 사람들은 검은 돌 흰 돌 갈라 서로 싸우며 영욕을 다투네.

영화로움은 무엇이고 욕됨은 또 무엇인가.

남양 땅에 숨어사는 사람들은 베개 베고 누워 잠만 청할 뿐이로다.

공명의 선택 (87)…제7장 융중의 누운 용 (9)
처음 듣는 노래일 뿐 아니라, 노래 가사 또한 농부들이 부를 만큼 예사 노래말이 아니었다. 궁금하게 여긴 서서가 길을 가다 말고 농부들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지금 부르는 노래는 누가 지은 노래입니까?"
"와룡 선생이 지은 노래이외다." 와룡 선생이라면 공명을 말함이었다. 사마휘가 "공명은 와룡이다." 라고 말한 것 과는 별도로 융중 마을 사람들은 공명의 초려가 와룡강에 있다 하여 그를 ‘와룡 선 생'이라 불렀던 것이다. 우연치고는 묘한 우연이었다.

"공명이 노래도 지었다는 말입니까?" 서서는 놀랐다. 금시초문이었다. 공명이 노래를 잘 부르고 거문고를 즐겨 탄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노래 가락과 가사까지 짓는 줄은 몰랐다.

"무엇을 그리 놀라시오? 이 일대 농부들은 모두 와룡 선생이 지은 노래를 부르며 일을 하지요. 와룡 선생이 지은 노래를 부르면서 일을 하면 힘든 줄을 모른다오. 하 루 해가 짧기만 하답니다."

공명의 초려에 당도한 그들은 곧 뒤뜰 정자에 모여앉아 술을 마시며 고담준론을 나누기 시작했다. 서서가 공명을 바라보며 궁금한 점을 물었다. "자네가 노래 가락까지 짓는 줄은 몰랐네그려. 선비로서 취할 행동이 아닌 듯한 데, 까닭이라도 있는가?"

공명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음악은 곧 사람의 마음이라네. 본시 음악은 소리의 도량(度量=높이와 길이)에서 생겨났네. 그렇다면 그 도량은 어디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인가? 바로 우주의 운행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우주의 운행은 곧 도(道). 도는 천지를 낳 고, 천지는 음양을 낳았지. 그 음양이 또 변화를 일으켜 하나는 위로 올라가고 하나 는 아래로 내려가니 그것이 혼돈이요, 혼돈이 다시 모여 형체를 이루니 그것이 곧 자연의 영원한 규칙일세."

천지는 수레바퀴처럼 굴러 끝에 이르면 다시 새로 시작하고, 다시 시작했는가 싶 으면 어느 새 끝이다. 결코 시작과 끝을 구별하지 않는다. 해와 달과 별의 운행은 느리기도 하고 빠르기도 하다. 해와 달은 궤도는 다르지만 한 바퀴 돌면 다시 시작 하여 결코 멈춤이 없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차례대로 나타나며, 덥기도 하고 춥 기도 하다. 낮이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며, 부드러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세상에 나타나는 만물은 커다란 하나의 원리, 즉 도에 서 비롯되고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진다.

양(陽)으로 인해 싹이 돋아 움트고 음(陰)으로 인해 안으로 엉켜들어 형체를 이룬 다. 만물의 형체는 제각기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없 다. 소리는 조화에서 생겨나고, 조화는 적절함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음악은 바로 그 적절함에서 출발하고 있다네." "그것이 자네가 농부들에게 노래를 지어준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번에는 석도가 물었다.

공명은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고 대답했다. "음악이 만들어지려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이 있네. 바로 욕망의 절제이지. 욕망이 난무하면 그 음악은 이미 음악이라고 할 수가 없네. 그렇다면 욕망은 어디 서 나오는 것인가. 바로 사람의 마음이네."

즉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표출하는 것이요, 바꾸어 말하면 음악으로써 사람의 마 음을 다스릴 수가 있는 것이다.

"옛날 제환공 때의 명재상 관중은 노래를 지어 자신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는데, 바로 음악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린 덕분이라고 할 수 있지." 관중이 제환공에게 발탁되기 전의 일이었다. 관중은 제환공이 임금에 오르기 전에 그를 죽이려고 활을 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노(魯)나라에 피신해 있었다. 관 중의 능력을 알고 있는 포숙이 그를 제나라로 데려오기 위한 계책으로 노나라에 사 신을 보냈다.

―관중은 우리 주공을 죽이려 한 역적입니다. 직접 우리 손으로 목을 베려고 하니 관중을 제나라로 보내주십시오.

이에 노장공(魯壯公)은 관중을 함거에 태워 제나라로 돌려보냈다. 뒤늦게 이 사실 을 안 노나라 재상이 노장공에게 말했다.

―관중은 천하의 기재입니다. 주공께서 그를 등용할 요량이면 모를까, 그렇지 않 다면 그를 죽여버리십시오.

노장공은 후회하고 급히 추격대를 보냈다. 이 사실을 안 관중은 곧 노래를 지어 함거를 모는 군사들에게 가르쳐주었다. 제나라 군사들은 관중이 지어준 노래를 부 르자 피곤한 줄을 몰랐다. 힘이 샘솟듯 솟았다. 그들은 신명이 나서 달렸다. 삼일 거리를 하루 만에 돌파했다. 이 덕분에 관중은 노나라 추격에서 벗어나 무사히 제 나라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관중은 음악을 알고 사람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었네. 내가 밭 가는 농 부들에게 노래를 지어준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치라네. 노래를 부르며 일을 하면 몸과 마음이 고단한 줄을 모르며, 세상의 영욕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저절로 깨닫 게 되는 것이지."

공명의 선택 (88)…제7장 융중의 누운 용 (10)
공명의 대답에 이번에는 박릉(博陵) 출신의 최주평이 비꼬듯 한마디했다. "그렇다면 자네는 고작 관중의 흉내를 내었을 뿐이로군그래." "그거야 자네들 마음대로 생각할 일이네만, 나는 관중의 흉내를 낸 것이 아니라 관중이 터득한 바를 나 또한 터득한 것뿐일세."
"그 말은 자네가 관중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인가?" "모름지기 장부로 태어나 세상에 나가려면 관중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공명의 그 말에는 서서도, 맹건도 놀랐다. 이런 자부심이 어디에 있는가. 아니, 이 것은 자부심이 아니라 오만이었다. 감히 자신을 관중에 비교하다니. 더욱이 평소에 는 별로 말이 없던 공명이 아닌가. 여간해서는 자신의 의중을 드러내지 않는 그가 오늘 이 자리에서는, ―나 제갈량은 관중에 버금가는 천하의 기재다! 라고 당당하고 호기 있게 선언하고 있질 않는가.

석도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공명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 오늘 취했군." 그러나 공명의 집을 나서면서 서서는 속으로 생각했다. ‘범상치 않은 친구다. 어쩌면 공명은 자신의 말대로 관중에 버금가는 천하의 기재 일지도 모른다.' 공명을 가리켜 ‘와룡'이라고 한 사마휘의 안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현실의 어지러움을 피해 수림에 묻혀 산다고는 했지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역시 그들에게 큰 관심사요, 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더욱이 도처에서 영웅을 자처 하는 군웅들이 일어나 호시탐탐 천하패권을 노리고 있는 때였다. 그들의 동향에 따 라 천하국가의 운명이 달라진다. 관심이 없다면 오히려 그것이 거짓이리라.

"허도에는 천자를 등에 업은 조조가 버티고 있고, 황하 이북과 회남에는 사세오공 (四世五公)의 명문가 출신 원소와 원술이 도사리고 있다."

"그뿐인가. 북쪽의 요동 땅에서는 공손찬이 오랑캐를 평정하고 수시로 중원을 노 리고 있고, 강동에는 손책이 욱일승천의 기세로 세력을 펴고 있지 않은가. 이 곳 남 쪽의 형주 땅을 지배하는 유표 또한 영웅의 반열에서 뺄 수는 없겠지?"

"서주의 여포에게 희망을 거는 것은 무리일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지. 지금으로선 여포도 주목해야 할 인물 중 하나임에 분 명하네." "그뿐인가?"

"서쪽에 웅크리고 있는 익주의 유장(劉璋)도 일단은 올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서량(西凉) 땅의 마등(馬騰)과 한중(漢中) 땅의 장로(張魯)도 빠지면 섭섭해하겠 지?"

공명의 선택 (89)…제7장 융중의 누운 용 (11)
공명은 말하기보다는 주로 듣는 쪽이었다. 여남(汝南) 출신의 맹건이 그런 공명에 게 물었다. "자네는 이들 외에 또 누가 영웅이라고 생각하는가?"
공명은 빙그레 웃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맹건은 그 침묵을 더 이상 거 론할 만한 영웅이 없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공명은 속으로 또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고 있었다.

‘유비……를 주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고향인 양도 땅을 떠나 형주로 향할 때 그는 서주성 근처를 지난 적이 있었다. 그 때 공명은 소패성에 머물던 유비가 군사들을 시켜 여행자를 보호해주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그것은 어린 공명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유비 같은 사람이 천하를 잡으면 살기 좋은 세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그런 어린아이 같은 희망과 바람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어 쩐지 그 이름만은 머리에서 선뜻 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기에는 유비는 현재 너무나 초라한 처지였다. 그는 조조에게 빌붙어 겨우 예주목이라는 관직을 얻고 있을 뿐이다. 거느린 군세도 여간 보잘 것 없다. 그를 천하 다툼의 영웅 중 한 사람으로 지목했다가는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 뻔했다.

아니, 어쩌면 유비라는 사람은 애초부터 난세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좀더 지켜보는 수밖에…….' 공명은 씁쓸히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원술은 자신의 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커다란 야심을 품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황제를 참칭한 것만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천하쟁패의 무대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인물은 원술일 것이다."

맹건은 군웅들이 벌이는 다툼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였다. 정세를 보는 안목도 다 른 문하생들보다 뛰어난 편이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맹건의 예측이 틀렸다.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원술에 앞서 여포가 먼저 천하쟁패의 장(場)에서 탈락하고 만 것이다.

여러 군웅 중 항우에 버금가는 천하 맹장 여포가 가장 먼저 무대 뒤로 사라지게 된 것은 조조가 거느리고 있는 모사들의 탁월한 정세 분석과 전략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조조에게는 순욱을 비롯한 곽가, 순유, 정욱 등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로 구성된 전략가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천하 다툼에 끼여든 여러 군웅을 놓고 면밀히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조조에게 올렸다.

―원술이 비록 황제를 참칭하고 있으나 그 세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반면에 서주 의 여포는 형세가 외로울 뿐 아니라 배신을 밥 먹듯하는 표리부동한 자로서, 세상 사람들에게서 인심을 잃었습니다. 천하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인심을 잃은 자부터 제거해야 합니다. 그를 도와줄 자는 원술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강동의 손책과 손을 잡아 수춘성의 배후를 노리게 하면 원술은 결코 여포를 도와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 다음이 원술입니다.

―우리가 여포를 치는 동안 동북의 원소가 허도를 공략하면 속수무책이 아닌가? 이 같은 조조의 우려에 곽가가 대답했다.

―원소는 뒤에 공손찬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허도를 공략할 수 없습니 다. 그러나 정히 걱정되신다면 여포를 치기 전에 황제께 상주하여 원소에게 대장군 의 직위를 내리게 하십시오. 원소는 주공께서 자기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알고, 오히 려 마음놓고 북쪽의 공손찬을 도모할 것입니다.

공명의 선택 (90)…제7장 융중의 누운 용 (12)
조조는 곽가가 일러준 대로 헌제에게 상주하여 원소를 대장군(大將軍)에 임명하 는 한편, 손책에게도 토역장군(討逆將軍)의 칭호를 내려주었다. 그러고는 즉시 여포 를 토벌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마침 여포가 부하 장수 고순(高順)과 장료(張遼)를 시켜 소패성의 유비를 공격했 다. 유비에게도 결의형제를 맺은 관우와 장비 같은 맹장이 있었으나 워낙 느닷없는 공격이었다. 유비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가솔까지 소패성에 팽개친 채 단신 으로 성을 빠져나와 조조에게로 달아났다.

그 무렵, 유비는 조조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조조로서는 여포를 토벌할 좋은 명분 이 생긴 것이었다. 그는 곧 하후돈·하후연·허저 등 용맹스런 장수들을 이끌고 여 포 토벌군을 발진시켰다.

조조는 유비와 허저를 앞세워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도적 출신의 손관(孫關)· 오돈(吳敦)의 무리를 일거에 격파한 후 호호탕탕 서주성으로 진격했다. 여포 역시 군사를 내 조조와 맞섰다. 그러나 첫 싸움에서 여포는 크게 패하여 소패성과 서주 성을 내주고는 부하 장수들과 함께 하비로 달아났다. 부하였던 진규와 진등이 배신 하여 조조 군과 내응했기 때문이었다.

"배신을 즐겨 했던 여포가 오히려 배신을 당한 것이로구먼." 최주평이 나름대로 패인을 분석했다.

"그런 셈이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다른 데 있다고 봐야 하네." 맹건은 신바람이 났다. "다른 데라니?"

"처음부터 이 싸움은 조조와 여포의 두뇌 싸움이었다고 봐야 하네. 그런데 그 두 뇌 싸움에서 여포는 조조의 상대가 되질 않았던 거지."

여포는 조조를 과소평가했을 뿐 아니라 눈앞의 이득만을 취하는 데 도취되어 있 었다. 여포에게도 물론 뛰어난 전략가가 있었다. 진궁이 바로 그였다. 그런데 싸움 이 전개되면서 여포는 진궁의 전술책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의 용맹을 너 무 과신한 탓이었다.

반면에 조조의 모사들은 이미 여포에 대해 철저한 분석과 전략을 마친 뒤였다. 소 패성과 서주성을 함락한 조조에게 모사 정욱이 권했다.

―이제 여포에게는 하비성 하나만 남았습니다. 너무 급하게 몰면 반드시 원술에게 투항할 것입니다. 여포가 원술과 손잡으면 그 때는 도모하기가 어렵습니다. 주공께 서는 여포가 원술과 통하는 길부터 끊으십시오.

조조는 그 말을 옳게 여기고 유비로 하여금 회남의 수춘성으로 향하는 길목을 끊 게 했다. 조조가 이런 전략을 꾸미는 동안, 하비성의 여포는 오히려 느긋했다. 하비는 식량 이 넉넉한데다가 성을 둘러싸고 있는 사수(泗水)가 깊어 좀처럼 적병이 성을 오르 기 힘들었다. 가만히 앉아서도 성을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모사 진궁이 그런 여포에게 간했다.

―조조는 이제 막 다다라 아직 진채도 제대로 세우지 못했습니다. 장군께서는 기 마병을 이끌고 성 밖으로 나가 진세를 벌이십시오. 나는 다른 장수들과 함께 남아 성을 지키겠습니다. 조조가 장군을 공격하면 내가 조조의 등을 칠 것이요, 반대로 조조가 성을 공격하면 그 때는 장군께서 조조의 등을 치십시오. 이렇게 되면 보름 이 넘지 않아 조조는 식량이 다할 것이니, 그 때는 북소리 한 번으로 조조의 대군 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조조가 들었더라면 기겁을 할 전술이었으나, 여포는 진궁의 그 책략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 번 진규·진등 부자의 배신을 경험했던 터라, 자신이 성을 비운 사이 부 하 장수들이 조조와 내통할 것을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진궁은 자신의 계책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 앞을 물러나오며 탄식했다. ―우리들은 이제 죽어도 묻힐 땅마저 없겠구나!

대신 여포는 사자를 수춘성의 원술에게 보내 구원군을 청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 찍이 원술이 여포의 딸을 원했을 때 여포는 두 번이나 원술의 소망을 묵살한 바 있 었다. 때문에 두 사람 사이는 그다지 원만하다고 할 수 없었다.

―여포는 신용이 없는 자다. 도와줄 수 없다. 원술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사자로 갔던 자는 꽤 똑똑했던 모양이었다. ―여포가 패하면 그 다음은 수춘성입니다. 이와 잇몸은 싫어도 서로 보호해야 합 니다. 사자의 설득에 원술은 조건부 허락을 내렸다.

―여포의 딸을 데려오라. 그러면 구원군을 보내주겠다. 그 말에 여포는 딸을 원술에게 보내기 위해 수레에 태웠다. 그러나 이미 수춘성으 로 가는 길목은 유비와 관우, 장비가 굳게 지키고 있었다. 친히 포위망을 뚫으려 했 으나 실패하고 도로 하비성 안으로 쫓겨들어왔다.

조조의 일급 참모인 순욱, 곽가, 정욱 등은 다음 단계로 돌입했다. ―성을 감싸고 있는 기수와 사수의 물을 이용하십시오.

이른바 수공(水攻)이었다. 조조는 곧 기수와 사수의 물길을 막아 하비성 쪽으로 돌렸다. 하비성은 삽시간에 물바다로 변했다. 여포는 물론 성 안의 모든 사람들은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에 빠져들었다. 그래도 조조는 총공세를 취하지 않았다. 여포 의 강맹함이 워낙 빼어났기 때문이었다.

공명의 선택 (91)…제7장 융중의 누운 용 (13)
하비성의 균열은 역시 내부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그것은 조조의 모사들이 기다리 던 것이기도 했다. 여포의 심복 중에 후성(侯成)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후성은 말(馬)을 무척 아끼고 사랑했는데, 어느 날 아끼던 말 한 마리를 잃어버렸다. 애처로울 정도로 풀이 죽어 지내던 중 그 애마(愛馬)가 돌아왔다. 후성의 기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컸다. 그 는 동료 장수들과 축하연을 벌이던 중 주공인 여포를 빼놓은 것이 미안해 술과 안 주를 들고 여포를 찾아갔다. 그 무렵, 여포는 조조 군을 물리칠 일로 고심하느라 술 을 끊고 있었다.

극도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였으리라. 여포는 자기도 마시지 않는 술을 부하 장수들이 마셨다는 것을 알고는 무척 화가 났다. 다짜고짜 후성을 붙잡 아 형틀에 매달고 등에 매질을 하였다. 화가 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한 후성은, 그 날 밤, 동료 장수인 위속과 송헌을 집으로 불러 선동했다.

―여포는 의롭지도, 어질지도 못한 무식한 장수에 지나지 않소. 그런 자를 위해 일생을 바치기에는 우리가 너무 아깝소. 내일 밤 내가 조조에게로 달아나 총공세를 취하게 할 테니 그대들은 안에서 호응하시오.

―바라던 바외다. 송헌과 위속도 동조했다. 다음 날 저녁이 되자 과연 후성은 여포가 아끼던 적토마를 훔쳐 성 밖으로 달아 났다. 조조는 마침내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이튿날 동이 틀 무렵, 조조는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여포는 급히 성루로 올라갔 다. 조조의 군사들이 개미떼처럼 몰려들고 있었다. ―적토마를 가져와라!

그러나 후성이 훔쳐 조조에게 갖다바친 적토마가 달려나올 리 없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여포는 자신의 무기인 방천화극을 찾았다. 그러나 화극 역 시 송헌이 숨겨둔 뒤였다. 말과 무기가 없는 장수를 어찌 장수라 하겠는가. 위속이 밧줄을 들고 있다가 여포에게 덤벼들어 꽁꽁 묶었다.

조조는 힘들이지 않고 하비성을 함락한 후 백문루(白門樓) 위에 높이 자리잡고 앉았다. 그 옆으로 관우·장비의 시립을 받은 유비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았다. 그 두 사람 앞으로 밧줄에 묶인 여포가 끌려나왔다.

"볼 만했겠군. 역발산 기개세의 여포가 결국 난세의 간웅 조조 앞에 무릎을 꿇은 모습이." 서서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천하에 이름을 떨친 영웅호걸이었는데, 의연했겠지?" 최주평이 말했다. "아니. 그 반대였다네. 조조 앞에 끌려나와 던진 첫 말이 무엇이었는 줄 아는가? 밧줄을 너무 꽉 조여 아프니 헐겁게 해달라는 거였다네."

맹건의 그 말에 모두는 아연했다. 전혀 예상 밖의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허허……, 아프니 밧줄을 헐겁게 해달라고 애원했단 말이지, 여포가?" "그에 대한 조조의 대답은 더 가관이었네. ‘큰 호랑이를 잡았는데, 어찌 느슨히 묶 을 수 있단 말인가. 더 세게 조여라!' 이랬다는 거야. 하하하. 조조라는 사람, 어지간 히도 여포를 두려워했던 모양이네."

잠시 방 안에 웃음소리가 일었다. "여포는 그 때까지도 상당히 자신만만했던 모양이군." 공명만이 쓴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게 무슨 말인가?" 서서가 물었다. "여포는 조조가 자기를 살려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는 얘기네. 그렇지 않고서 야 밧줄에 조인 아픔을 하소연할 리가 없지. 앞날에 희망을 가진 자만이 아픔을 느 끼는 법 아니던가." "설마……."

서서가 맹건을 돌아보며 대답을 구했다. 맹건은 새삼스런 눈길로 공명을 쳐다본 후 대답했다. "공명 말이 맞네. 여포는 이어 조조에게 외쳤다고 하더군." "뭐라고?" "‘이제 천하는 평정되었다!' 라고 말일세."

"그 일성(一聲)이야말로 여포다운 말이로군. 조조의 가장 큰 적은 원소나 원술이 아니라 여포였다. 그런데 그 여포가 이제 사라질 것이니 조조 당신은 천하 패업을 달성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략 이런 뜻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여포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각오했음에 틀림없네."

최주평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아마도 그는 영웅다운 최후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맹건은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여포는 그런 뜻에서 외친 것이 아니었네."

―조공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나 여포를 두려워하였소. 그런데 이제 내가 조공께 항복했으니 천하에 근심거리가 어디에 또 있겠소? 조공께서 보병을 거느리고 나 여 포가 기마병을 거느리게 된다면, 천하는 평정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소. 그리고 여포는 껄껄 웃었다는 것이었다.

"대단한 자신감이긴 하지만, 뒤집어보면 조조를 깔보는 말도 되지. 조조가 꽤나 화를 냈겠군." "아니. 조조는 마음이 흔들렸던 모양이네. 여포 말대로, 자신은 보병을 인솔하고 여포가 기마병을 지휘하면 그야말로 천하무적의 군대가 될 테니까 말일세. 여포의 그 한 마디는 천하를 꿈꾸는 조조에게 이만저만 달콤한 유혹이요, 매력이 아닐 수 없었을 걸세."

"그런데 어째서 조조의 마음이 변해 여포를 죽이게 된 거지?" "조조가 끌리는 마음을 어쩔 수 없어 마지막 결정을 내리려고 옆에 앉아 있던 유 비를 돌아보았다더군. 그런데 유비가 조조에게 한마디한 것이 결정적이었지."

공명의 선택 (92)…제7장 융중의 누운 용 (14)
―조공께서는 여포가 정원과 동탁 섬기는 것을 잊으셨습니까? 정원과 동탁은 모두 여포의 옛 주인이었다. 부자의 연까지 맺었다고 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여포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그런 사람을 부하로 두어서 과연 당신의 목이 온전하겠는가, 라는 의미였다.
여포는 유비의 그 말에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소란을 피웠다. ―내가 저놈을 구해주었거늘, 저 귀 큰 놈이야말로 가장 믿지 못할 놈이다! 원술이 수하 장수 기령(紀靈)을 시켜 소패에 머물고 있던 유비를 침공했을 때의 일이었다. 군세가 약한 유비는 여포에게 구원을 청했다. 모든 부하들이 원술이 유비 를 치도록 내버려두자고 했으나 여포가 고집을 세워 군사를 거느리고 소패로 달려 갔다. 그러나 여포는 원술과 동맹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기령과 싸울 수도 없었다.

여포는 꾀를 내어 유비와 기령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푼 후 말했다. ―현덕은 나의 동생이요, 원공로는 나의 동맹자이오. 나는 싸움을 중재하기 위해 이 곳에 왔소. 그러고는 화극 하나를 백 보 밖에 세워두었다. ―만일 내가 활을 쏘아 저 화극의 끝을 맞히면 그대들은 화해를 하고 돌아가고, 맞히지 못하면 남아서 싸워도 좋소.

여포가 활을 들어 화극을 쏘았는데, 화살은 정확히 화극의 끝에 가서 맞았다. 이 에 기령이 놀라 군사를 거두어 돌아간 적이 있었다. 여포는 그 일을 큰 베풂으로 생각하고 있었던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그 때의 일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포는 잊고 있었다. 자신을 빈객으로 후대 하던 유비를 소패성으로 내쫓고 자신이 서주성을 차지한 사실을. 유비는 웃기만 하였다. 이윽고 조조가 차갑게 명했다. ―여포를 끌어내어 목을 매어 죽이도록 하라! 결국 여포는 그렇게 무대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서서는 사숙을 나오면서 공명에게 물었다. "자네는 유비라는 사람을 어찌 생각하는가?" "글쎄…… 적절한 대답이 아니었을까." 공명은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이제부터는 유비라는 사람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 서서의 말에 공명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세상 속으로 나가고 싶어함인가?'

여포의 죽음은 시작에 불과했다. 새로운 소식들이 계속 양양 일대에 날아들었다. 조조가 여포를 공격하는 동안, 원소도 요동 땅의 공손찬을 공격했다. 공손찬의 세 력은 원소에 못지않게 강성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만에 빠져 있었다. 그는 원소의 집요한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한 명의 영웅이 무 대 위에서 사라져갔다. 같은 해 6월에는 원술이 죽었다. 한때 황제를 자칭했던 원술의 말로는 더욱 초라 하고 비참했다.

공명의 선택 (93)…제7장 융중의 누운 용 (15)
조조 군에게 패한 원술은 강정(江亭)이란 궁벽한 곳으로 달아났다. 그는 황제 칭 호를 사촌형 원소에게 넘겨주기 위해 기주 땅으로 향했다. 그 때 그를 따른 군사는 천 명 남짓, 그나마도 모두 늙고 병든 자들뿐이었다. 한창 더운 철에 양식마저 바닥 났다.
끼니라고 나오는 것이 까슬까슬한 잡곡밥이었다. 이제까지 호사스럽고 기름진 음식만 먹어오던 그의 목구멍으로 그런 밥이 넘어갈 리 없었다. 목은 마르고 배는 고프고, 배겨날 수 없었다. 백정 일을 보던 자에게 영을 내렸다. ―목이 몹시 마르구나. 꿀물 한 대접 가져오너라. 그러자 백정이 픽 웃으며 대답했다. ―푸줏간에 꿀물이 어디 있소? 핏물이라면 모를까. 그러고는 돼지피를 한 사발 가져다주었다. 원술은 기가 막혔다. 부아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

―네 이놈! 밥상을 차고 일어나다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입에서 피를 한 말이나 토해냈 다.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이었음을 원술은 알았을까, 몰랐을까.

서서는 유독 유비의 행적에 관심을 가졌다. "조조와 유비 간에 오갔다는 영웅론을 들어보았는가?" "말해보게."

공명은 이렇게 말했으나, 사실은 서서보다 천하 정세에 대해 더 많은 일들을 알고 있었다. 예장 시절에 사귀었던 수운업자 황풍이 그 후에도 수시로 공명을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그는 융중의 초려에 누워서도 천하 패권을 다투고 있는 군 웅들의 움직임을 누구보다도 빠르고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서서는 양양 성내로 들어가 수집해온 갖가지 이야기들을 신바 람 나서 공명에게 들려주곤 했다.

……여포가 죽은 이후, 유비는 조조를 따라 허도에 들어가 빈객 대우를 받으며 편 안히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말이 빈객일 뿐 사실은 감금이나 다름없었다. 어느 때 부터인가 조조는 유비를 예사 인물로 보지 않고 있었던 것이리라.

그러던 어느 날, 조조가 유비를 승상부의 후원으로 초청해 술을 마셨다. 술잔을 서너 잔 나누었을 때 홀연 먹장 같은 구름이 하늘 저편에서 꿈틀거리며 일었다. 옆 에서 시중을 들던 시종 하나가 그 구름을 보고 중얼거렸다.

―용이 하늘로 올라가려나 봅니다. 그 말에 문득 조조가 유비를 쳐다보며 물었다. ―유공은 용의 변화를 아시오?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유비의 대답에 조조는 새롭게 흥이 일었다. ―용이란 능대능소(能大能小)하여 커지고 싶으면 커지고 작아지고 싶으면 작아집 니다. 때로는 하늘로 솟아오르기도 하고, 또 때로는 몸을 숨겨 보이지 않는 수도 있 습니다. 크면 구름을 일으켜 안개를 토하고, 작으면 비늘을 숨기고 형상을 감추기도 합니다. 용이 한 번 하늘을 오르면 우주를 날고, 몸을 숨길 때는 바다의 파도 속으 로 잠겨버리지요. 세상 사람들이 용을 영웅호걸에 비유하여 말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유공께서는 사방을 두루 돌아다니셨으니 당세의 영웅호걸을 많이 아실 것입니다. 누구누구가 영웅인지 유공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화제가 용에서 느닷없이 영웅론으로 번졌다. 유비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회남에 있는 원술은 군사도 많고 양식도 풍부하니, 가히 영웅이라 하겠습니다. 이 때는 아직 원술이 황제로 자칭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유비의 입에서는 원술 이란 이름이 가장 먼저 튀어나왔다. 유비의 말에 조조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원술은 무덤 속의 말라빠진 뼈다귀일 뿐이오. 조만간 나에게 사로잡힐 위인이외 다. 유비가 다시 대답했다.

―하북의 원소는 사세오공의 후예입니다. 그는 호랑이처럼 기주에 근거지를 두고 수많은 인재를 부하로 거느리고 있습니다. 영웅이라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조조는 또 껄껄 웃어댔다.

―겉으로는 위풍이 당당해보이나 실제로는 담이 작고 꾀를 좋아하여 결단성이 없 는 사람이 바로 원소이외다. 큰일을 하려 하면서도 몸을 사리고, 작은 이익만 보아 도 죽을 힘을 다해 덤벼드니, 이 어찌 영웅이라 할 수 있겠소? 원소는 아니오.

―또 한 사람 있습니다. 강하팔준의 한 사람으로 그 명성이 구주를 진동시킨다는 유경승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 아닐까요? 조조는 고개를 저었다.

―유표는 허명무실이오. 헛된 이름만 남기었을 뿐 속이 없소이다. ―손견의 아들 손책은 지금 강동에서 욱일승천의 기세입니다. ―손책은 제 아비의 이름을 빌린 자일 뿐이오. ―익주의 유장은 어떻습니까?

―유장이 비록 종실이라고는 하지만, 집 지키는 개 정도에 불과하오. 계속되는 문답에 지쳤는지 유비가 조조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저는 진정 누가 영웅인지 모르겠습니다. 승상께서 한 번 말씀해보시지요.

그러자 조조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무릇 영웅이란 큰 뜻을 가슴에 품고 무한한 지모를 뱃속에 숨겨둔 사람으로, 천 지의 오묘한 이치를 삼키기도 하고 뱉을 줄도 알아야 가히 참 영웅이라 할 수 있을 것이외다. ―당세에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자 조조가 손가락을 들어 유비와 자신을 가리켰다. ―지금 천하 영웅이라면 오직 유공과 나 조조가 있을 뿐이외다. 그 때 마침 먹장 구름이 드리운 하늘에서 번개가 치고 천둥이 일었다. 그 우레소 리에 놀라 유비가 들고 있던 수저를 떨어뜨렸다.

―천둥소리가 무섭기도 하구나.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줄 알았습니다. 유비가 떨어진 수저를 주우며 중얼거렸다. 그 모양을 보고 있던 조조가 껄껄대며 비웃었다. ―사내 대장부가 그까짓 천둥소리에 놀라 수저를 떨어뜨리다니!

―옛날 성인들도 번개와 매서운 바람이 일면 변괴가 생긴다 하여 두려워했습니다. 놀라는 것이 당연합니다. 유비의 대답이었다.

공명의 선택 (94)…제7장 융중의 누운 용 (16)
"천둥소리에 놀라 수저를 떨어뜨렸다? 유비의 그 행동, 참으로 놀라운 연기(演技) 라고 생각지 않는가?" 조조는 유비를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자신의 품안에 잡아두려 하고, 유비는 평범한 인물처럼 보여 조조의 품안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다. 그런 중에 조조가 유비를 불러 시험했다.
유비는 조조의 시험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자신을 영웅 이라고 지칭한 조조의 말에, 이제는 끝장이다―라는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그 때 마 침 뇌성벽력이 일었다. 마지막 수단으로 수저를 떨어뜨림으로써 자신이 보잘 것 없 는 범부임을 보여주었다. 풀려나느냐 갇혀 있느냐의 기로였다. 그 마지막 연기에 조 조는 속아넘어갔고, 유비는 멋드러지게 위기를 넘겼다.

이것이 유비의 행동에 대한 서서의 풀이였다. 그는 그것을 '놀라운 연기'라고 극찬 하며 공명의 동조를 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명의 입에서는 전혀 다른 대답이 나왔다.

"나는 수저를 떨어뜨린 유비의 행동을 결코 연기라고 생각지 않네." "으응? 그것이 무슨 소리인가?" 서서의 반문에 공명은 조용히 대답했다. "나는 유비가 실제로 천둥소리에 놀라 수저를 떨어뜨렸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네." "그렇다면 자네는 유비가 보잘것없는 평범한 인물이라고 보는 것인가?" "반은 그렇고, 반은 아니네."

"자네 말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네." "내 생각은 이러하네. 자네가 본 바대로 유비라는 사람은 결코 예사로운 인물은 아니네. 조조도 그렇게 생각하고 유비를 불러 영웅론을 꺼낸 것이겠지. 하지만 유비 가 다른 군웅과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조조는 전혀 몰랐지. 유비는 한편으로는 영 웅의 기질을 타고 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범상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기질도 지니고 있다는 것이지. 어찌 보면 겁쟁이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아둔하기도 한 그 런 범부의 기질들 말일세."

범부라면 느닷없는 천둥소리에 수저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아마도 지극히 자연스 러운 행동일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 행동이 범부의 행동을 가장한 것이라면 어딘 지 모르게 어색했을 것이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데 일가견을 가진 조조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2천 리나 떨어져 있는 자네가 눈치챌 수 있는 일을 지척의 조조가 눈치채지 못 했다고 보는가? 그렇다면 자네는 조조를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일세. 아니면 자신을 너무 과신하고 있든지."

"그러면 자네는 조조가 그것을 눈치채고도 그냥 넘어갔다고 보는가?" "아니지. 실제로 유비는 천둥소리에 놀라 수저를 떨어뜨렸고, 조조는 그런 유비를 범부로 단정했을 것이네. 적어도 그 순간만은 말일세. 다만, 한 가지 실수가 있다면 그는 사람에게 범부의 기질과 영웅의 기질이 동시에 존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 던 것뿐이네. 범부 아니면 영웅―. 조조의 이런 논리가 불행히도 유비에게는 통하지 않았던 것이지."

공명의 견해에 서서는 놀랐다. 듣고 보니 그의 해석이 더 옳은 것 같았다. 서서는 한참 동안 공명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자네 언제 그렇게 유비에 대해 알아보았는가?"

공명이 특유의 잔잔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유비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이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 이것을 알지 못하고 어찌 천하 운운할 수 있겠는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서서는 공명이 더욱 거대한 모습으로 커가고 있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천공하후패 (2001-01-09 18:25:59)
헉! 또... 융중의 누운 용입니다.. 뒤의 공명의 선택은 잘못된것입니다....ㅠ.ㅠ 죄송

원검일생록-1 [1]
<공명의 선택> 6장 예장별곡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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