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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공하후패(2001-01-12 18:50:21, Hit : 2449, Vote : 175
 <공명의 선택> 13장 강동으로 건너간 공명
공명의 선택 (159)…제13장 강동으로 건너간 공명 (1)
하구에 당도한 공명은, 그러나, 곧장 강동으로 건너가지 않았다.

“유기 공자는 강하성으로 돌아가 전함을 수리하고 병기를 가다듬으시오.”

“번구는 강하와 하구 사이에 있는 곳으로 수군을 훈련시키기에 아주 적합한 장소입니다.

조자룡께서는 3천 군사를 거느리고 번구에 머물면서 이 곳 장강의 물길을 익혀두십시오.”

“관공과 장익덕 장군은 주공을 모시고 하구에 계시되, 육로의 경계를 철저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일일이 장수들과 군사를 배치한 후에야 노숙과 함께 강동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그 무렵, 손권은 오군을 떠나 시상에 머물러 있었다. 현재의 강서성 구강 부근이다. 손권의 관소가 있는 오군과는 서쪽으로 1천여 리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언제 있을지 모를 조조 군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공명과 노숙이 탄 배는 곧장 시상을 향했다. 가는 도중 배 위에서 공명과 노숙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천하의 앞날을 내다보는 두 사람의 안목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손권, 유비, 조조.

노숙이 그리는 ‘삼자구도론(三者構圖論)’이었다. 우연인가. 아니면 시국을 보는 현자의 눈은 다 같은 것일까. 공명이 추진하고 있는 ‘천하삼분의 계’와 별 차이가 없었다. 다만, 노숙은 유비를 이용해 조조의 세력을 견제하려는 속셈이었고, 공명은 손권으로 하여금

조조의 힘을 분산케 하려는 의도만이 달랐을 뿐이었다.

“유황숙은 힘을 기를 땅이 필요합니다.”

“손 장군은 기마병과 보군 양성에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최후의 목표만을 제외하면 두 사람은 완전히 뜻이 맞았다. 공명은 속으로 기쁨을 느꼈고, 노숙은 노골적으로 기쁨을 드러냈다. 앞으로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펼쳐지게 될 삼국시대(三國時代)는 이렇듯 두 사람의 젊은 지략가에 의해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었다.

“선생께서는 우리 주공을 뵙더라도 결코 조조의 군세가 강성하다는 것을 말씀드려서는 안 됩니다.”

혹시라도 조조의 군세에 놀라 손권이 항복할까 염려하고 있는 노숙이었다. 공명은 그런 노숙을 보고 웃음짓지 않을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양(亮)에게도 다 생각해둔 바가 있습니다.”

노숙은 껄껄걸 웃었다. 두 사람을 태운 배가 시상 부둣가에 닿았다. 시상은 공명에게 상처를 안겨준 고장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형 제갈근과 헤어지던 때의 아픔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활력과 생기가 넘쳐흐르는 것을 제외하면 성 안은 그 때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노숙은 공명을 성 안에 마련된 객관으로 안내했다.

“오늘은 이 곳에서 편안히 쉬시고, 내일 우리 주공을 만나뵙도록 하시지요. 나는 지금 곧 주공을 찾아뵈어야겠습니다.”

노숙은 방문을 닫고 조용한 몸놀림으로 객관을 나섰다.

그 무렵, 정청(政廳)에서는 손권이 여러 참모와 장수들을 불러놓고 회의를 하고 있었다. 손권의 손에는 항복을 권유하는 조조의 격문이 쥐어져 있었다.

―함께 사냥을 즐깁시다.

손권은 조조의 느긋한 웃음을 눈앞에 보는 듯했다. 입술을 깨물 일이었으나, 감정만으로 처리할 수 없는 일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손권은 무표정이었다. 아직 서른이 채 안 된 젊은 나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은 그만큼 군웅으로서의 관록이 몸에 배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손견이나 손책과는 다른 신중한 면모였다.

―항복이냐, 전쟁이냐?

오히려 조급해하는 것은 막료들이었다. 장소가 먼저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 동안 우리가 큰 세력으로 조조와 맞설 수 있었던 것은 장강이 북쪽과 서쪽으로 길게 뻗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조조가 형주를 얻었으니 장강의 험한 요새는 우리만의 것이라고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강동의 백성을 위해서라도 전쟁은 피해야 합니다. 조조는 너무 강합니다.”

항복론이었다. 장소라면 손책 시절부터 동오의 내정을 책임져온 실세 중의 실세였다. 서주 팽성 태생이었으나 서주 대학살 때 강동으로 피난 나와 손책의 막료로 발탁된 인물이었다.

―장자포(張子布)는 나의 관중(管仲)이다.

라고 할 정도로 손책은 그를 신임하고 아꼈다. 손권대에 들어와서도 그는 여전히 내정을 책임지며 강동 여섯 고을을 크게 부강시켰다. 영향력도 컸다. 그런 장소가 항복론을 주창했으니 다른 막료들의 의견은 더 들어볼 필요도 없었다.

“장자포의 말씀이 옳습니다. 조조에게 항복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손권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버지 손견과 형 손책이 창업한 강동 땅이었다. 어찌 순리로만 따질 일인가. 언제 들어왔는지 정청 한구석에 노숙의 얼굴이 보였다. 눈만 끔벅거리고 있었다.

“잠시 머리 좀 식히고 오겠소.”

손권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노숙이 슬그머니 손권의 뒤를 따라나갔다. 손권이 후원을 거닐다가 숲으로 들어가 소피를 보는데 노숙이 옆에 와서 섰다.

“언제 돌아왔소?”

손권이 하늘을 쳐다보며 물었다.

“방금 도착하였습니다.”

“자경은 어찌 생각하시오?”

“형주 말씀입니까?”

노숙은 시치미를 뗐다.

“장자포의 말을 어찌 생각하느냐 말이오.”

“장자포의 처지에서 본다면 지극히 옳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자포의 처지라니…… 그게 무슨 뜻이오?”

“저나 장자포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조조에게 항복하여도 크게 손해볼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저희 같은 무리가 조조에게 몸을 굽히면 조조는 반드시 벼슬을 높여 고향으로 돌려보낼 것입니다. 전답도, 재산도, 가족도 잃을 일이 없지요. 여전히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다닐 것이며, 명사들과도 계속 교제할 수 있습니다.”

노숙의 알쏭달쏭한 말에 손권은 옷을 추스릴 생각도 하지 않고 계속 물었다.

“그렇다면 나는 다르단 말이오?”

“당연히 다르겠지요. 형주의 유종을 보지 못했습니까. 조조는 틀림없이 주공을 후(侯)에 봉해 허도에 머물게 할 것이며, 수레 한 대에 말 한 필, 시종이랬자 서넛이 고작일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늘 감시 속에서 지내게 되어 외출 한 번 마음놓고 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찌 저희 같은 무리와 주공이 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나는 어찌해야 좋겠소?”

“주공께서는 조조를 맞이하는 순간부터 돌아갈 곳을 잃게 됩니다. 바라건대, 선공께서 창업하신 뜻을 잊지 마시고 하루빨리 천하의 대계(大計)를 정해 딴 의견이 나오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그제야 노숙의 말뜻을 알아차린 손권은 비로소 얼굴빛을 환하게 바꾸었다.

“모든 사람의 의견이 내 뜻과 맞지 않아 우울했는데, 자경의 말씀을 들으니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것 같소.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조조의 세력이 너무 강맹하여 대항하기 어렵다는 점이오. 자경은 이 점에 대해 가르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손권의 말에 노숙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 일이라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이번에 형주에 다녀오다가 제갈자유의 아우인 제갈량을 이 곳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는 조조 군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를 불러 물으시면 조조 군의 허실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갈량에 관한 소문은 나도 들은 적이 있소. 그는 지금 어디 있소?”

“객관에서 쉬고 있습니다. 내일 주공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하겠소.”

두 사람은 천천히 후원 숲 속을 나왔다. 까마귀 한 마리가 숲 저편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공명의 선택 (160)…제13장 강동으로 건너간 공명 (2)
그 날 밤이었다. 공명이 묵고 있는 객관으로 한 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키가 크고 얼굴이 유난히 붉었다. 예사 눈빛이 아니었다.

“장소라고 합니다.”

그의 이름은 공명도 잘 알고 있었다. 시상으로 오는 배 안에서 노숙은 장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친조조파의 대표적 인물.

그 때 공명은 노숙과 장소의 사이가 상당히 좋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노숙 또한 그 점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선생이 시상으로 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가 바로 장소를 설득하는 일입니다.

장소만 설득한다면 다른 막료들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했다. 내일 아침 손권을 만나기 전 장소와 먼저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던 공명이었다. 그런데 그 장소가 먼저 공명을 찾아온 것이다.

‘만만치 않은 사람이다.’

공명이 시상에 당도한 것은 극비 사항이었다. 노숙이 말하지 않는 한 아무도 알지 못해야 했다. 그런데도 장소는 공명이 도착한 지 채 몇 시간도 안 돼 공명의 객관을 찾아온 것이다. 노숙이 흘렸을 리는 없다. 장소의 정보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 수 있었다.

‘거꾸로 나를 꺾으러 왔군.’

공명은 장소의 얼굴을 보는 순간 대번에 그의 방문 목적을 직감했다. 이를 테면 선제 공격을 당한 셈이었다. 과연 장소는 직선적이었다.

“선생께서 융중에 높이 누워 지내며 스스로 관중에 견주었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장소는 제갈근과도 가깝게 지내는 인물이었다. 공명이 어찌 제갈근의 아우임을 모를 리 있겠는가. 그런데 그는 제갈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첫 대면에 제갈근의 이름부터 거론한 노숙과는 정반대였다. 그러나 공명은 오히려 그것이 더 마음 편했다.

“하하하, 초야에 묻혀 사는 못난 선비의 객기이지요.”

전혀 웃을 상황이 아니었으나 공명은 고개까지 젖혀가며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공명을 장소는 조용한 눈길로 지켜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유황숙의 삼고초려는 실로 감동적인 일이었습니다만, 형주 땅이 조조에게 넘어가버려 그만 빛을 잃고 말았습니다.”

유비를 돕기는커녕 형주에서 쫓겨나온 일을 비꼬고 있음이었다.

“제 생각은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저는 융중에서 내려오자마자 가장 먼저 형주 땅을 취하자고 수없이 권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공께서는 ‘천하보다 중요한 것은 인의(仁義)’라고 하시며 은혜를 베푼 유표 공의 땅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 어찌 만고에 길이 남을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있습니까? 자신이 묻힐 땅 한 조각 때문에 주인을 배신하는 일이 비일비재 일어나고 있는 요즘입니다. 유황숙은 어둠 속에 형형히 빛나는 등대불 같은 존재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일이었습니다.”

‘자신이 묻힐 땅 한 조각’이라는 것은 강동을 말함이요, ‘주인을 배신하는 일’이라는 것은 조조에게 항복하자는 주장을 빗댄 말이었다. 장소가 어찌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겠는가. 공명의 빈정거림에 장소는 눈에 띄게 격동하고 있었다.

“천하는 현실이요, 인의는 명분에 불과합니다. 유황숙께서는 본래 명분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이라지만, 선생의 역할은 현실의 벽을 넘는 게 아니오? 그런데 어떻소? 조조의 북소리 한 번에 선생은 형주 땅을 지키기는커녕 신야를 버리고 번성으로 달아나기에 바빴습니다. 그뿐이라면 보아줄 만합니다. 선생은 조조와 싸울 생각은 하지 않고 또다시 번성을 버리고 달아났으며, 당양에서는 크게 패하기까지 했습니다. 유황숙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겨우 하구에 빌붙어 전전긍긍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선생은 스스로를 관중에 견주고 있다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장소의 방문 목적은 이제 분명하게 드러났다. 공명을 망신주어 도로 하구로 쫓아 보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명은 다시 한바탕 호방한 웃음을 터뜨린 후 장소의 말을 받았다.

“연작이 어찌 홍곡의 뜻을 알겠습니까만, 자포 선생이 물으시니 제가 특별히 대답해드리겠습니다. 사람이 병이 났을 때는 먼저 허약해진 몸을 다스리기 위해 미음부터 먹어야 하는 법입니다. 그런 후에 약을 써야 약기운이 고루 온몸으로 퍼져나갑니다. 병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공은 그 동안 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터전이 미약하고 군세가 미약한데 대군과 맞서 싸우는 것은 미음을 먹지 않고 곧바로 강한 약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당연히 몸이 상할 수밖에 없겠지요. 유황숙께서 신야와 번성을 버린 것은 허약한 몸을 다스리겠다는 처사요, 하구에 몸을 맡기고 있는 것은 그 곳이 약을 쓸 장소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유황숙에게 필요한 것은 약입니다. 제가 할 일은 바로 그 약을 구해드리는 일이지요.”

“선생이 말씀하시는 그 약이라는 것이 무엇이오?”

장소는 빈틈 없은 공명의 답변에 대꾸할 말을 잊은 듯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러나 그 또한 공명이 노리고 있던 바였다.

“그야 당연히 강동의 군사이지요.”

공명은 마침내 자신이 할 말을 내뱉었다.

“선생은 우리 강동이 유황숙을 위해 약을 내어줄 것이라고 생각하오?”

장소는 이제 완전히 공명에게 말려들었다.

“강동은 우리 주공을 위해 군사를 낼 것이 틀림없습니다.”

“무엇을 믿고 그토록 호언장담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소.”

“그 이유는 내일이면 알게 됩니다.”

“그렇게 되는지 어디 두고 봅시다.”

장소는 옷자락을 휘날리며 공명의 방을 나갔다.

공명의 선택 (161)…제13장 강동으로 건너간 공명 (3)
다음 날, 공명은 윤건에 학창의 차림으로 손권과 그 막료들이 기다리고 있는 정청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형 제갈근과 마주쳤다. 제갈근의 집은 시상에 있었다. 제갈근은 전날 공명이 시상으로 온 것을 알지 못했던 듯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아침에야 자경에게서 네 얘기를 들었다.”

일 년 전, 양자 문제로 시상에 와 만났을 때보다 얼굴이 조금 핼쑥해져 있었다. 역시 조조 문제 때문이리라. 원래 친조조론을 주창한 사람은 제갈근이었다. 그 때는 원소가 살아 있을 때였다. 그러나 수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달라졌다. 무엇보다도 조조가 형주를 취한 이후에는 ‘친조조론’의 개념이 ‘항복론’으로 바뀌고 말았다. 제갈근은 ‘항복론’의 장소와 ‘전쟁론’의 노숙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그와는 절친한 사이였다.

“이번에는 공무로 온 것이라 형님께서 불편해하실까 봐 일부러 전갈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공과 사를 구별하자는 뜻이 다분히 담긴 한마디였다.

“알겠다. 저녁에 다시 연락하마.”

공명은 정청 안으로 들어갔다. 푸른 눈, 붉은 수염의 손권이 당하 계단까지 내려와 공명을 맞이했다. 공명보다는 한 살 아래다. 당당한 태도였다. 주군의 풍모가 다분히 엿보였다. 조조 문제로 고심한 흔적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자경이 해냈구나.’

공명은 손권이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것을 직감했다.

‘그렇다면 오늘의 이 자리는…….’

손권이 아니라 손권의 막료들을 상대로 한 자리가 분명했다.

“자, 올라갑시다.”

항복하려는 마음을 지니고 있는 막료들을 거느리고 조조의 80만 대군과 싸울 수는 없었다. 싸움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길 수 있다는 확신과 결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손권은 공명을 이용하여 강동 장수들에게 그 확신을 심어주고 승리에 대한 결의를 다지려는 것이 분명했다.

‘연극을 하자는 것이로군.’

배우는 손권과 공명이었고, 관객은 동오의 막료들이었다. 훌륭한 배우는 관객을 감동시켜야 한다. 막을 내릴 때는 기립 박수가 터져나와야 하는 것이다. 공명은 오히려 마음에 부담감이 더했다. 혼자만의 연극이라면 얼마든지 해낼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연극은 상대역이 있었다. 그것도 오늘 처음 만난 상대였다. 예행연습도 없었다. 즉흥 연극이었다.

‘손중모가 과연 잘 받아줄는지…….’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무대의 막이 올랐다. 정청 안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이목은 온통 손권과 공명에게로 쏠렸다.

“조조의 군세는 어떻습니까?”

첫 대사를 던진 것은 손권이었다. 손권 진영에서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부분이기도 했다. 막료들은 숨을 죽이고 공명의 대답을 기다렸다.

“기마군, 보군, 수군을 합쳐 아마 백만 정도가 될 것입니다.”

전혀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조용하던 정청 안에 술렁거림이 일었다. 가장 놀란 사람은 노숙이었다. 그 물음에 대해서는 사전에 다짐 해두지 않았던가. 가능한 한 조조의 병력을 줄여서 대답하라고. 공명도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공명은 오히려 더 불려서 대답을 한 것이었다. 노숙은 눈을 질끈 감았다. 손권도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었다.

“백만? 그것이 사실이오?”

“제가 알기로는 그렇습니다.”

“장수들은 어떻소?”

“지략이 뛰어난 모사와 경험 많은 장수들만 해도 1, 2천이 넘을 것입니다.”

공명은 여전히 조조 군의 형세를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손권이 그런 공명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다시 물었다.

“조조는 지금 우리 강동을 엿보고 있습니다. 싸워야겠소, 아니면 싸우지 말아야겠소?”

이야기가 빗나가고 있다고 생각했음인지 손권은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공명은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는 듯 즉각 대답했다.

“병력으로 보자면 당연히 항복하여 조조를 섬겨야겠지요.”

공명의 선택 (162)…제13장 강동으로 건너간 공명 (4)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오히려 무대 밑에서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이 혼란에 빠질 지경이었다. 노숙은 아예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손권은 주군다운 관록을 지니고 있었다. 공명의 말에서 빈 틈을 찾아낸 것이다.

“그렇다면 유황숙은 어찌하여 조조에게 항복을 하지 않는 것이오?”

공명이 기다리던 질문이었다.

‘과연…….’

하고 공명은 감탄하며 곧장 대답했다.

“옛날 제나라의 전횡(田橫) 같은 장사도 의를 지키기 위해 몸을 욕되게 하지 않고 죽었습니다. 하물며 한왕실의 종친이요 천하의 선비들이 우러러보는 영웅이신 우리 주공께서 어찌 조조 따위에게 항복하는 욕됨을 행하겠습니까. 우리 주공은 결코 의롭지 않은 사람에게 몸을 굽힐 분이 아닙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유비는 애초에 손권과는 격이 다른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공명의 그러한 대답에 손권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는 증거였다.

“그대는 지금 나를 멸시하는 것이오?”

당장에라도 칼을 뽑아 공명을 벨 기세였다.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하지만 공명은 태연자약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어찌 유황숙에게는 의로움을 권하면서 내게는 욕됨을 권하는 것이오?”

“그것은 명공께서 조조를 깨칠 계책을 묻지 않고 항복할 것인가 아닌가만을 물었기 때문입니다.”

공명은 슬쩍 당겼던 줄을 놓으며 손권에게 암시를 주었다. 손권은 공명의 말뜻을 알아챘다. 이내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듯 말했다.

“듣고 보니 제가 어리석은 질문을 하였소. 나 역시 강동의 여섯 고을과 10만 대군을 가만히 앉아서 조조에게 바치지는 않을 작정이오. 다만, 조조의 군대가 강성하니 그것이 염려될 따름이오. 다시 묻겠소이다. 선생께서는 조조를 깨칠 계책을 지니고 있습니까?”

손권의 물음에 공명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저는 조조의 백만 대군을 개미떼보다도 못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정청 안이 술렁거렸다. 이런 허풍이 또 있을 것인가. 정청 안의 막료들은 한결같이 기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손권만은 기대가 된다는 듯 상체를 내밀며 물었다.

“선생의 높으신 생각을 들려주시오.”

“조조가 평생토록 두려워했던 인물을 꼽으라면 여포와 유표, 원소, 원술, 그리고 유황숙과 명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앞서의 네 영웅은 차례로 조조에게 패망하고 남은 것은 오직 유황숙과 명공뿐입니다. 그것도 유황숙은 쫓기어 궁지에 몰려 있고, 이 곳 강동도 억누름을 당할 지경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맞소.”

공명의 확인에 손권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공명은 빙긋 웃음을 지으며 정청 안을 가득 메운 손권의 막료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각자의 힘으로는 조조의 위세를 감당하기 힘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길은 딱 한 가지―유황숙과 명공이 손을 잡고 조조와 맞서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명공께서 염려하시는 대로, 조조 군의 군세와 이 곳 초·오(楚吳=강남과 강동)의 군세입니다. 먼저 조조 군의 군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조금 전에 제가 조조 군의 병력을 백만이라고 말했습니다만, 싸움은 병력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힘과 사기입니다.”

정청 안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손권도, 그 막료들도 모두 공명의 입으로 눈을 모았다. 말을 잇는 공명의 목소리는 낮으면서도 힘이 넘쳐흘렀다. 당당하면서도 웅장했다.

“‘강한 활에서 쏜 화살일지라도 그 끝에 가서는 부드러운 비단조차 뚫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조조 군은 몇천 리 밖에서 달려온지라 몹시 지쳐 있는 상태입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유황숙을 쫓느라 하룻밤에 3백 리를 행군했습니다. 이런 군사들에게 과연 힘이 남아 있겠습니까? 화살이 백만 개가 있다 한들 비단조차 뚫지 못하는 힘이라면 10개의 화살을 가진 사람에게 어찌 당해낼 수 있겠습니까. 조조 군은 머릿수만 많은 솜덩어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북쪽 사람들이라 수전(水戰)에 익숙지 못합니다. 물에 익숙한 형주 군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조조의 위세에 눌려 따르고 있을 뿐 힘을 다해 싸우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

“반면 초·오의 형세는 어떻습니까? 유황숙이 비록 패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형세에 밀린 전략상의 후퇴였을 뿐 병력의 손실은 전혀 없었습니다. 당양의 장판에서 조조가 사로잡은 것은 피난하던 백성들과 그 짐수레들뿐이었습니다. 유황숙은 지금 하구와 번구에서 2만 병력을 조련하고 있으며, 유기는 강하에 1만 군사를 키우고 있습니다. 또한 명공에게는 수전에 능한 군사들이 10만을 넘고 있으며, 장강의 험한 물길이 강동의 군사들을 돕고 있습니다. 명공이 유황숙과 힘을 합한다면 조조 군은 틀림없이 크게 무너질 것입니다.”

“…….”

“이 자리에서 이 제갈량은 감히 단언합니다. 조조는 반드시 패합니다. 패하면 북쪽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요, 그렇게 되면 형주와 동오의 세력은 전보다 더 강성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곧 천하를 조조와, 유황숙, 그리고 명공께서 셋으로 나누어 가지게 되는 것이니, 이야말로 솥발 셋이 한 솥을 떠받드는 형국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명공께서는 더 이상 망설일 일이 아닙니다. 속히 결단을 내리시어 강동의 땅을 튼튼히 보존하십시오.”

현하(懸河)의 웅변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일까. 공명의 연설은 절벽 아래로 쏟아지는 폭포수처럼 힘에 넘쳤고, 도도하고 웅대했다.

손권의 막료들은 아연히 얼굴빛이 변했다. 특히 손권은 가슴 속이 일시에 탁 트이는 것 같았다. 공명의 역할은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손권이었다. 별안간 손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허리춤의 칼을 뽑아들었다.

“보아라. 나는 이미 조조와 한바탕 혈전을 결심했다. 이후로 조조에게 항복하자는 말을 꺼내는 자는 이 탁자처럼 될 것이다!”

그러고는 손에 든 보검으로 앞의 탁자를 내리쳤다. 탁자는 대번에 두 동강으로 갈라졌다. 하늘을 찌를 듯한 기상이요, 땅을 뒤집을 듯한 결의였다.

“주공을 따르겠습니다!”

“조조 군을 무찌르겠습니다!”

공명의 연설에 넋을 빼앗겼던 정청 안의 막료들은 그제야 제정신을 차리고 두 손을 움켜쥐며 손권의 궐기에 호응하는 결의를 다졌다.

공명의 선택 (163)…제13장 강동으로 건너간 공명 (5)
“잘 하시었소. 선생 덕분에 큰 근심을 덜었소.”

노숙의 입이 귀까지 찢어졌다. 기묘하게 생긴 두상(頭相)이었다. 흡사 메기 같았다. 못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우습게 생겼을 뿐이다. 그런 그가 입을 쩍 벌리고 웃고 있다.

“자경 선생의 도움이 컸습니다.”

공명도 따라 웃었다. 기뻐서가 아니라 노숙의 웃는 모양새가 우스워서 웃었다. 공명이 묵고 있는 시상 성내의 객관이었다. 방 가운데 조촐한 술상이 놓여 있었다.

“회포라도 푸시겠습니까? 강동 여인들의 살결은 몹시 부드럽지요.”

‘씨익’ 웃는 노숙의 얼굴은 더욱 기묘하게 변했다. 공명은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눈가에 미미한 그늘이 스쳐갔다. 노숙이 그것을 놓치지 않고 물었다.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그 때였다. 방문 밖에서 인기척이 일었다.

“나으리.”

노숙의 시종이었다.

“무슨 일이냐?”

“주랑(周郞) 어르신께서 당도하셨습니다.”

강동 사람들은 주유를 주로 ‘주랑’이라고 불렀다. 애칭이었다. 그만큼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는 뜻이었다. ‘잘생긴 사내’, ‘호방한 사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여인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주랑!”

“자경!”

노숙과 주유는 껴안듯 서로의 어깨를 잡았다. 두 사람은 공명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십년지기였다. 주유가 노숙을 천거했다. 몸은 떨어져 있고 하는 일은 달랐어도 마음은 언제나 같았다.

―주전파의 쌍벽.

노숙이 유연하고 부드러운 성품인 데 반해 주유는 머뭇거림이 없는 과감한 성격이었다. 다르다면 그 점이 달랐다. 파양호에서 수군을 훈련시키던 중 조조가 강릉에 진을 치고 강동을 넘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길로 달려온다고 온 것이 이제야 시상에 당도한 것이다.

“이분은 공명, 이쪽은 공근(公瑾=주유의 자)입니다.”

노숙이 공명과 주유를 소개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았다. 눈길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공명은 잔잔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고, 주유는 두 눈에서 뜨거운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과연 잘생긴 사내다.’

‘이 자가 바로 양양의 풋내기로군.’

공명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한 호흡 차이로 주유도 허리를 숙여 인사했으나 눈가에는 깔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럴 만도 했다. 주유는 강동 사람이 자랑하는 기재요, 지략가였다. 자존심이 강했다.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오만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융중 시골에 숨어 살던 무명의 선비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각기 천하의 기재라 일컬어지는 세 명의 지략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웃음 속에서 술잔이 돌았으나 각기 생각은 달랐다.

‘화합이 우선이다.’

노숙의 생각이었다.

‘혓바닥을 잘 놀리는 세객(說客)쯤이야.’

주유는 공명에게 잔을 내밀었다.

“그대의 수고가 많았다고 들었소.”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한 거만함이었다.

“자경 선생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공명은 두 손으로 공손히 잔을 받았다.

‘야심에 찬 인물. 영락없는 강동의 조조로군.’

빙긋 웃었다. 암암리에 흐르는 냉랭한 공기를 노숙이 눈치챘음인가. 그는 화제를 돌렸다. 주유를 향해 물었다.

“주공은 내일 찾아뵐 참인가?”

“지금 뵙고 오는 길이네.”

“벌써?”

노숙의 놀라는 눈길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유는 손권 찾아뵌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들어갔을 때 주공은 장자포와 밀담을 나누고 계시더군. 장자포는 다시 한 번 ‘전쟁불가론’을 주장했던 모양일세. 주공은 상당히 흔들리는 표정이셨네.”

“그럴 리가?”

노숙의 눈에 불안의 빛이 서렸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네.”

“그걸 보고 자네는 가만히 있었단 말인가?”

“내가 그럴 리 있겠나. 당연히 장소의 말을 끊고 주공을 향해 내 뜻을 밝혔지.”

―조조가 비록 이름은 한(漢)의 승상이나 사실은 한의 흉악한 도적입니다. 그에 비해 주공께서는 영웅의 재질을 갖추신데다가 부형(父兄)께서 남겨주신 강동 땅이 있습니다. 군사는 날래고 양식도 넉넉한데 어찌 흉악한 도적을 없애려 하지 않고, 오히려 역적에게 항복할 마음을 품으시는 것입니까. 조조의 네 가지 불리한 점을 이용하면 능히 조조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조조의 네 가지 불리한 점이라니, 그게 무엇무엇이오?

―조조는 아직 서북쪽을 평정하지 않아 마등과 한수(韓遂)가 근심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도 오랫동안 남쪽에 머물러 있는 것은 병가(兵家)에서도 꺼리는 일이니, 이것이 조조가 불리한 첫번째입니다. 또한 북쪽 군사는 수전에 익숙지 못한데도 말을 버리고 배에 의지해 싸우려 하는 점이 조조에게 불리한 두 번째입니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무엇이오?

―지금은 한창 추운 겨울철이라 군사를 움직이기 어려울 뿐 아니라 군마를 먹이고 재우는 데 필요한 풀이 부족합니다. 이것이 세 번째로 불리한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조조의 군사들은 이 곳 기후와 풍토에 익숙지 않습니다. 반드시 군사들의 대부분이 병을 얻을 것이니, 이것이 조조에게 네 번째 불리한 점입니다. 비록 조조가 거느리고 온 군사가 많다고는 하지만 조조는 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공께서 군사 3만을 제게 내려주시면 주공을 위해 조조의 대군을 일거에 깨뜨려보이겠습니다.

“그랬더니 주공께서는 뭐라고 하시던가?”

노숙은 결과가 궁금했던지 초조한 눈빛으로 물었다.

“다행히도 주공께서는 내 말을 들으시고 장소를 꾸짖어 물리치셨다네. 이제 주공의 마음은 두 번 다시 흔들리지 않으실 것이네.”

“천만다행이로군. 자네의 공이 크네.”

노숙은 비로소 안심하는 표정으로 주유를 칭찬했다. 그 때 공명은 야릇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고 있었다. 주유의 말대로 ‘항복론’의 우두머리인 장소는 손권을 찾아갔을 것이고, 손권은 조조의 80만 대군이라는 말에 다시금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주유가 그런 손권을 설득한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주유가 지금 노숙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의도는 그것을 알려주자는 게 아닐 것이다. 전쟁론을 주창하여 손권을 설득한 것은 노숙이었다. 조조를 물리치면 그 공은 오로지 노숙에게로 돌아간다. ‘강동 제일의 기재’라고 불리는 주유에게 그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노숙이 미워서가 아니었다. 주유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자존심이 그것을 용납하려 하지 않을 뿐이다.

‘노숙의 공을 가로채려 하고 있다.’

공명은 주유의 마음을 이렇게 보고 있었다. 그러한 공명의 야릇한 웃음을 주유가 보았다. 한순간 눈이 매섭게 번뜩였다.

“그대는 왜 웃고 계시오?”

주유의 날카로운 물음에 공명은 주춤했다. 주유의 마음을 사실대로 얘기했다가는 주유 성격에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칼을 뽑아들어 공명의 목을 벨지도 모른다. 주유는 능히 그럴 만한 사람이었다.

“주공근께서 애를 쓰시긴 하셨지만, 제 생각에는 손 장군의 마음이 아직 굳어지지 않은 것 같기에 잠시 궁리를 해보았던 것뿐입니다.”

공명의 그러한 대답에 주유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지만, 또 다른 의미의 불쾌감이 그의 미간에 서렸다.

“우리 주공의 마음이 아직 굳어지지 않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제가 보기에 손 장군은 지금 강동의 적은 군사로 조조의 많은 군사를 깨뜨리지 못할까 의심하고 계십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오?”

“만일 손 장군의 마음이 굳게 섰다면 조조 군과 맞서 싸울 총대장부터 임명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손 장군은 아무런 조치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조조를 당해낼 자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 말이 못 미더우시면 내일이라도 다시 들어가 확인해보십시오.”

이것은 주유가 오기 전부터 공명이 걱정하던 일이기도 했다.

“그것은 그대가 우리 주공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오. 이제 주공의 마음은 확실할 것이외다. 총대장을 임명하지 않는 것은 다른 깊은 뜻이 있어서일 것이오.”

주유는 이렇게 공명의 말을 부정하고 나섰지만, 그 어조는 어쩐지 자신감이 없어보였다. 밤이 깊어 세 사람은 헤어졌다.

공명의 선택 (164)…제13장 강동으로 건너간 공명 (6)
다음 날이었다. 주유는 아침 일찍 손권의 처소로 달려갔다. 전날 들은 공명의 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이른 시각에 웬일이시오?”

손권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조조 군의 침공이 급박한데 주공께서는 어찌하여 아직까지 군사를 낼 생각을 하지 않으십니까?”

주유의 다그치는 듯한 물음에 손권은 잠시 얼굴을 붉히다가 대답했다.

“조조와 싸움을 벌이기로 결심은 했지만, 사실은 조조의 군사가 많아 우리가 당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오. 공근은 이 점에 대해 어찌 생각하오?”

주유는 공명의 예상이 적중한 데 대해 놀랐지만 우선은 손권의 마음부터 달래야 했다.

“주공께서 이러실 것 같아 제가 이렇게 달려온 것입니다. 조조는 격문에 백만 대군이라고 했지만, 가만히 헤아려보면 그것은 허장성세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3, 40만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군사 수가 아닙니다. 저들이 우리들과 싸우려면 천상 수전(水戰)을 벌여야 하는데, 40만인들 백만인들 배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주공께서는 아무 염려 마시고 곧 동원령을 내리십시오.”

이 말에 손권은 기쁜 빛을 띠며 비로소 전군에 출전 명령을 내렸다. 총대장도 임명했다.

“주유를 좌도독에 임명하니 전군을 거느리고 대전(大戰)에 임하도록 하시오.”

뒤이어 우도독에는 백전노장 정보를 지명하고, 노숙에게는 찬군교위(贊軍校尉)의 책임을 맡겼다. 찬군교위는 참모장에 해당하는 직위였다. 총병력은 3만. 조조 군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미미한 수였지만, 수전을 전제로 한 것이라면 그다지 적다고도 볼 수 없었다. 어차피 수전의 승패는 군사 수가 아니라 배의 수로 판가름나기 때문이었다. 주유는 동오군의 총대장인 좌도독에 올랐다. 조조와의 한판 싸움은 이제 주유의 손에 달렸다. 그런데 손권 앞을 물러나오는 그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공명이라…….’

공명의 빙긋 웃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언제나 ‘제일’이라는 소리만 들어온 주유였다. 그런 그가 이번에 보기 좋게 공명이라는 시골뜨기 선비한테 한방 당했다.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우리 주공의 마음을 꿰뚫어보다니…… 예사내기가 아니다.’

군사들과 전함을 정돈하는 중에 주유는 손권이 공명의 재능을 높이 사 제갈근을 보내 공명을 끌어들이려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명은 뭐라고 했다던가?”

주유는 노숙에게 달려가 물었다. 노숙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 어지간히 공명에게 마음을 쓰는구먼.”

“뭐라고 했는지나 말해보게.”

“형님께서 유황숙을 섬기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는 걸세.”

“그 시골뜨기가 오히려 제갈자유를 끌어들이려 했단 말이지?”

“거절의 뜻을 그렇게 표현한 것뿐일 테지.”

“자유의 처지가 어지간히 곤란했겠군. 보지 않아도 눈만 껌뻑거리는 말대가리의 표정이 눈에 선하네.”

제갈근의 얼굴은 말처럼 길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곧잘 그를 마두(馬頭)라고 불렀다. 주유는 쿡쿡 웃음을 삼켰다.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일세. 요즘 성 안에는 자유가 한 말이 유행일세.”

“자유가 주공에게 뭐라고 했는데?”

“제 동생 공명이 주공에게 오지 않는 까닭은 제가 유황숙에게로 건너가지 않으려는 것과 꼭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더군.”

“마두가 제법이군.”

“그 형에 그 동생이지.”

이번에는 노숙이 웃음을 지었다. 그런 노숙을 주유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엉뚱한 물음을 던졌다.

“자네 공명이란 자를 어떻게 생각하나?”

노숙이 주유의 속을 알지 못하고 느끼는 대로 대답했다.

“보기 드문 천하의 기재라고 생각하네.”

“그렇다면 자네가 한 번 공명을 우리 동오로 끌어들여보게나. 자네 말이라면 공명이 들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좋은 생각이군. 공명이 동오로만 온다면 이보다 더 다행한 일은 없을 테지.”

노숙은 주유의 말에 찬성하고 그 날 저녁 공명이 묵고 있는 객관으로 갔다.

“자주 뵙는군요.”

공명이 웃으며 노숙을 반겼다.

“오늘은 조용히 선생과 의논할 게 있어서 왔습니다.”

노숙이 목소리를 은밀히 낮췄다. 그러한 노숙의 태도에 공명은 대뜸 그의 방문 목적을 눈치챘다.

“자경 선생께서도 저를 회유하러 왔습니까?”

“아니, 그것을 어찌 아셨습니까?”

“선생의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공명이 빙그레 웃었다.

“공명 선생의 눈은 귀신이라도 속일 수가 없겠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묻기나 합시다. 선생은 어찌하여 동오를 섬기려 하지 않으시는 게요?”

“꼭 대답을 들어야 하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말씀드리지요. 하지만 비밀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아무에게도 제 말을 전하지 마십시오.”

“약속하겠습니다.”

“손 장군께서는 훌륭한 주군입니다. 손 장군은 저의 재능을 잘 알고 계십니다. 아끼기도 하지요. 하지만 손 장군은 결코 저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동오를 섬기지 않으려는 이유입니다.”

공명의 대답에 노숙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주랑이 아쉬워하겠군.”

공명이 놀라는 빛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자경 선생은 주공근의 권유를 받고 온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주랑은 공명 선생과 함께 일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허허, 내가 공연히 입을 놀려 주공근의 핍박을 받게 생겼구나.”

공명의 탄식에 노숙은 의아해서 물었다.

“그것이 무슨 소리입니까?”

“주공근은 진정으로 나를 원해서 자경 선생을 보낸 것이 아닙니다. 그는 내 마음을 떠보기 위해 자경 선생을 이용한 것뿐입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동오를 섬기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주공근은 반드시 나를 해치려 들 것입니다. 자경 선생은 오늘의 이 일을 절대로 주공근에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노숙은 공명의 말에 공감할 수 없었다. 발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나왔지만 주유가 과연 공명을 해칠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여간 궁금하지 않았다. 그는 객관을 나오자마자 다시 주유에게로 달려갔다.

“공명이 무어라고 대답하던가?”

주유의 물음에 노숙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역시 거절하였네. 우리 주공은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기는 하지만 발휘하게 하지는 못할 거라고 하더군.”

그러고는 가만히 주유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과연 주유는 그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기라도한 듯 지체 없이 말했다.

“공명이란 자는 반드시 우리 강동의 후환거리가 될 것이네. 그 자가 우리 주공을 섬기지 않는다면 해치우는 수밖에 없네.”

노숙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한편으로는 공명의 말이 맞아떨어진 데 놀랐음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주유가 정말로 공명을 죽일 마음을 품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었다.

‘정녕 천 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한 기재로다!’

아끼는 마음이 더욱 일었다. 노숙은 공명의 말을 전부 전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주유를 향해 엄하게 말했다.

“공명은 제갈자유의 친동생이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돕기 위해 온 상빈이네. 조조를 깨뜨리기도 전에 그같이 어진 선비를 죽일 생각부터 하다니 군자의 도리가 아닐세. 그를 해칠 생각은 하지도 말게. 오히려 공명의 재능을 이용하여 조조를 견제하는 것이 강동을 위한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자네는 어찌 모르는가?”

주유는 뜻밖으로 노숙의 반대가 거세자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으나 눈빛만은 여전히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공명의 선택 (165)…제13장 강동으로 건너간 공명 (7)
―유비와 손권의 동맹.

이 소식은 즉각 강릉에 머물러 있는 조조의 귀에 들어갔다. 이제나 저제나 손권의 항복 사자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조조는 크게 흥분했다.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전군은 강동으로 향하라!”

둥둥둥…… 둥둥! 출병을 알리는 북소리가 동정호 일대까지 울려퍼졌다.

“좀더 기다리심이…….”

모사 순유가 뱃머리에 서 있는 조조의 뒤에 섰다. 3천 리가 넘는 먼 길을 달려온 군사들이었다. 유비를 쫓느라 당양까지는 하룻밤에 3백 리를 달리기도 했다. 군사들은 지쳐 있었다. 휴식이 필요했다. 그런데 조조는 또 급하게 움직이려 하고 있다. 조조의 막료 중에는 지략이 뛰어난 모사들이 많았다. 순욱의 사촌동생 순유도 1급 참모의 반열에 올라 있는 사람이다. 서둘러서 될 싸움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조조는 미동도 하지 않고 동쪽으로 길게 이어진 장강의 물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10월의 강바람은 차가웠다. 날이 저물면서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으나 조조의 눈에는 더할 나위 없이 쓸쓸하게 비쳤다.

‘싸우지 않으려 했는데…… 기어이 가야 하는가.’

조조는 군사를 내지 않고 강동의 땅을 다스리려 했다.

―함께 사냥을 즐깁시다.

싸움에 승산이 없어서 전쟁을 피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전력이라면 북쪽 군사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다만 조조 군은 휴식이 필요했다. 순유가 지적하고 있는 대로 너무 지쳐 있는 것이다. 손권과 유비가 동맹을 맺었다고 해서 분노한 것은 아니다. 조조 역시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군사를 내리라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예상치도 않은 복병이 나타났다. 풍토병이었다. 휴식을 취하던 병사들이 힘을 되찾기는 커녕 맥없이 쓰러져갔다. 음식을 토하고 설사를 했다. 모두들 고열에 시달렸다. 유종에게서 건네받은 형주 군사들만 멀쩡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허도로 돌아가야 할 판이다.’

희망은 손권의 항복 사자였다. 그런데 날아든 소식은 손권과 유비의 동맹이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했다. 싸우려면 하루라도 빨리 싸우는 것이 조조에게 유리했다. 병사들이 더 쓰러지기 전에.

‘공명이란 자의 말재주에 넘어간 것일 테지.’

조조는 처음으로 공명의 이름을 곱씹으며 이를 갈았다.

“속전속결이다.”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며 조조는 중얼거렸다.

“하지만…….”

순유는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었다. 조조가 그 말을 끊었다.

“시상(詩想)이 떠올랐다.”

시상이 떠오르면 그 누구의 방해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순유는 잘 알고 있었다. 입을 다물었다. 귀를 기울이는 수밖에 없었다.

조조의 입에서 낮은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술에는 노래가 따라야 하리

인생살이 얼마나 살 것인가.

아침이슬과 다를 바 없건만

지나간 날들이 훨씬 많구나.

하염없는 상념에 젖어보지만

근심 걱정은 지워지지 않는구나.

무엇으로 이 시름 떨쳐버릴까

오직 술뿐이로구나.

그대의 푸른 옷깃

아득히 그리운 이 마음.

오직 그대 때문에

생각에 잠겨 시를 읊노라.

어린 사슴 슬피 울며

들판의 쑥을 뜯는구나.

귀한 손님 오시면

거문고와 피리로 반길 뿐이네.

밝기도 하여라, 저 달빛

어느 날에야 비춤이 그칠까.

달빛 따라 오는 이 시름

끊을 수가 없구나.

몸은 비록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곁에 있구나.

오랜만에 술자리 하여

옛정을 떠올린다.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 남으로 나네.

나무를 세 번 돌며 둘러보나

의지할 가지 하나 없네.

산은 높아도 높은 것을 싫다 않고

바다는 깊어도 깊은 것을 마다 않네.

주공(周公)은 밥을 먹다 말고 세 번 일어나니

천하의 인심이 그에게로 돌아갔네.

조조의 시를 다 듣고 난 순유는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그 곳을 물러났다.





<공명의 선택> 14장 폭풍전야
<공명의 선택> 12장 쫓는 자와 쫓기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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