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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공하후패(2001-01-20 20:05:16, Hit : 2785, Vote : 230
 <공명의 선택> 21장 아아, 봉추여
공명의 선택 (239)…제21장 아아, 봉추여 (1)
  

대승이었다. 방통의 계책대로 유비는 위연과 황충의 뒤를 따르다가 냉포와 등현이 진채를 비운 틈을 타서 일거에 그들의 진채를 점령해버린 것이었다. 일단 기선은 제압했다. 이제 남은 것은 낙성을 공략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었다. 방통이 유비에게 말했다.

“장수들간의 지나친 공 다툼은 돌이킬 수 없는 화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이 점을 먼저 일깨워주셔야 할 것입니다.”

유비는 방통의 말을 알아들었다.

황충이 먼저 군사들을 정돈하여 유비의 진채에 이르렀다. 그는 비록 위연을 위급함에서 구해내고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위연 때문에 자신이 냉포의 진채를 빼앗지 못한 것이 몹시 분했다. 그는 말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유비에게로 달려가 말했다.

“위연은 군령을 어겼습니다. 마땅히 목을 베어 군기를 바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위연은 어디 있는가?”

유비가 좌우 군사들에게 물었다.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군사들이 이렇게 대답하는데, 마침 막사 밖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위 장군이 돌아오십니다.”

위연이 유비 앞에 대령하였다. 그런데 뜻밖이었다. 적장 냉포를 사로잡아온 것이었다.

본시 위연은 황충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군령을 어긴 자신의 죄가 너무 크다는 것을 알았다. 큰 공을 세우지 않는 한 군법에 의해 처단될 것이 뻔했다. 그는 모험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산길로 들어가 낙성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을 차단했다. 모험은 성공했다. 바라던 대로 냉포가 그 길로 도망쳐왔다. 위연은 길목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냉포를 덮쳐 사로잡아 뒤늦게 유비 앞으로 끌고 온 것이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소장이 지나치게 공을 탐한 나머지 군령을 어겼습니다. 하오나 냉포를 사로잡은 공이 있으니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유비가 그런 위연을 향해 엄하게 꾸짖었다.

“위연은 들어라! 그대의 죄는 목을 베어야 마땅하나, 특별히 황 장군께서 그대를 위해 변호하시니 이번만은 용서해주겠다. 차후 다시 군령을 어길 시는 가차없이 목을 베리라. 아울러 그대는 황 장군에게 사죄하라. 만일 황 장군이 그대를 구해주지 않았던들 그대가 어찌 냉포를 사로잡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황충에게 용서를 빌려고 마음먹었던 위연이었다. 아직도 그는 자신의 가슴을 찌르려던 등현의 살기등등한 눈길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감격하여 물러난 후 황충에게 머리를 조아려 사죄했다.

황충은 황충대로 감격했다. 위연을 참수해야 한다고 주장한 자신의 옹졸함이 부끄럽기도 하였다. 두 장수는 서로 손을 잡고 화해했다.

이번에는 사로잡힌 촉장 냉포가 유비 앞에 끌려나왔다. 유비는 잠시 그런 냉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하로 내려가 몸소 냉포의 몸에 묶인 밧줄을 풀어주었다. 따뜻한 술을 건네며 부드럽게 물었다.

“내게 항복하는 것이 어떤가?”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절망에 사로잡혀 있던 냉포였다. 그는 유비의 말에 삶의 희망을 가졌다.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어찌 항복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낙성을 지키고 있는 장임과 유괴는 저와 생사를 함께할 것을 맹세한 사람들입니다. 만일 저를 놓아주신다면 두 사람에게 권하여 낙성을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소?”

유비는 그 말을 그대로 믿는 듯 냉포에게 말과 안장을 내주어 낙성으로 돌려보냈다. 위연은 자신이 기껏 잡아온 냉포가 쉽게 풀려나는 것을 보고 유비에게 불만스런 어조로 말했다.

“냉포는 믿을 만한 자가 못 됩니다. 그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위연을 향해 유비가 빙긋 웃으며 물었다.

“장군은 냉포가 두렵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런 자들은 열 명이 몰려와도 능히 감당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염려하시오? 장군 말대로 우리가 저들을 취하는 것은 쉬운 일이오. 하지만 저들의 마음을 얻는 것은 어렵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천 땅이 아니라 서천의 백성들이오. 인과 덕이 아니고서는 결코 저들의 마음을 얻을 수가 없소. 냉포가 돌아오고 아니 돌아오는 것은 상관없소. 다만, 나는 서천 백성들의 마음이 내게로 돌아오기만을 고대하고 있을 뿐이오.”

비로소 위연은 유비의 깊은 뜻을 알고 고개를 숙였다.

공명의 선택 (240)…제21장 아아, 봉추여 (2)
  

냉포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낙성을 지키는 서천 군의 전력만 한결 강화되었다. 성도의 유장이 구원병을 파견한 것이었다.

―유장의 아들 유순(劉循)과 장수 오의(吳懿), 오란(吳蘭), 뇌동(雷同) 등이 군사 2만을 거느리고 낙성을 도우러 왔다고 합니다.

장기전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유비는 일단 부성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진채에는 황충과 위연을 남겨놓았다.

그 무렵, 낙성 안에서는 유비 측으로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책략이 꾸며지고 있었다. 거짓 항복으로 목숨을 구해 빠져나온 냉포에 의해서였다.

서천의 지형은 산이 험하고 물살이 빠른 것이 특징이었다. 특히 부강의 물살은 더욱 거셌다.

“이 물살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냉포는 지도를 펴놓고 설명했다. 황충과 위연이 진채를 세운 곳은 부강에서 동쪽으로 약간 떨어진 낮은 지대였다. 부강의 상류를 막아 물길을 바꾸어놓으면 황충과 위연의 진채는 삽시간에 물바다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제게 군사 5천 명만 내주신다면 수일내에 저들을 물귀신으로 만들어버리겠습니다.”

“좋은 계교요!”

오의는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유장의 아들 유순은 아직 나이가 젊었다. 전투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다. 실질적인 군사 지휘는 모두 오의가 맡았다. 총대장인 셈이다. 그는 유장과는 사돈간이었다. 그의 딸이 유장의 동생에게 시집을 간 것이다.

오의의 허락이 떨어지자 냉포는 곧 군사 5천을 거느리고 낙성을 나섰다.



서천 군과의 공식적인 첫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방통은, 그러나, 우울했다. 낙성에 구원군이 당도하면서 일이 매우 어렵게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속전속결!

이런 전략으로 가맹관을 출발한 방통이었다. 부성까지는 잘 들어맞았다. 등현과 냉포와의 싸움도 예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유장 군의 저항도 만만치가 않았다. 무엇보다도 험한 서천의 지형이 큰 장벽이었다.

‘어느 세월에 성도에 이를 것인가?’

방통은 초조해하고 있었다.

법정과 함께 유비의 막료가 되기를 자원했던 맹달이 그런 방통의 마음을 짐작하고 지나가는 말로 속삭였다.

“금병산(錦屛山)에 자허상인(紫虛上人)이라는 이인(異人)이 살고 있는데, 사람의 앞날은 물론 생사까지도 기가 막히게 알아맞힌다 합니다. 한 번 찾아가 물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실없는 소리 마시오. 일의 성취 여부는 모두 그 사람이 하기에 따라 달려 있는 것이오. 어찌 산 속에 숨어 사는 사람이 나의 앞일과 죽고 사는 문제를 알아맞힐 수가 있겠소?”

방통은 코방귀를 뀌며 맹달에게 퉁을 주었다. 그러나 맹달은 그런 방통의 얼굴에서 솔깃함을 보았는가. 다시 한 번 금병산으로 가볼 것을 권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옛 성인(聖人)들도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점을 쳐서 길흉화복을 미리 알아본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군사께서 서천 정벌을 앞두고 고명한 사람에게 앞일의 길흉을 묻는 것이 어찌 실없는 일이 될 수 있겠습니까?”

맹달의 거듭되는 권고에 방통은 슬며시 마음이 움직였다.

“자허상인이란 이는 어떤 사람이오?”

“태생도, 나이도 전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금병산에 든 지 40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한 번도 속세로 내려온 적이 없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저는 우연히 친구에게서 자허상인에 대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금병산이 여기서 머오?”

“이틀 길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습니다.”

“좋소이다. 한 번 다녀오지요. 맹 장군께서 길을 안내해주시겠소?”

방통은 그 날로 맹달을 앞세우고 금병산으로 향했다. 호위병으로 기마병 20기만을 거느린 채였다. 그들 일행은 어렵지 않게 금병산 아래에 도착했다. 군사 하나가 그 곳 토민에게 물었다.

“자허상인의 거처가 어딘지 알고 있으면 가르쳐주시오.”

토민은 지체 없이 손가락으로 금병산 꼭대기를 가리켜보이며 대답했다.

“저기 산마루 위의 집이 자허상인께서 사시는 집입니다.”

방통과 맹달은 곧 말에서 내려 토민이 알려준 산등성 꼭대기를 향해 올라갔다. 과연 그 곳에는 정갈한 암자 하나가 있었다. 청의(靑依) 동자가 마당을 쓸고 있었다.

맹달이 청의 동자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이 곳이 자허상인께서 사시는 집이냐?”

“어디서 오신 손님이십니까?”

청의 동자는 눈을 들어 오히려 물었다. 유난히 눈동자가 맑았다.

“우리는 유황숙의 부하 장수들이다. 선생께 앞날을 묻고자 특별히 찾아온 것이니라.”

청의 동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방통과 맹달을 암자 안으로 안내해 들어갔다.

방 안에는 백발노인이 단정히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방통과 맹달이 절을 올리자 읽고 있던 책을 덮고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얼굴이 발갛고 깨끗했다. 노인답지 않은 해맑음이다. 눈빛 또한 투명했다.

이인의 존재를 믿지 않는 방통이었지만, 자허상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는 공경하는 마음이 일었다. 흡사 옛 스승인 사마휘를 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귀하신 분들이 이 산골 누추한 곳까지 웬일들이시오?”

목소리 또한 목탁을 울리는 듯 깨끗하고 맑았다.

“선생의 높으신 이름을 우러러 찾아뵈었습니다.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방통의 어조는 지극히 공손했다. 남병산을 찾기 전의 태도와는 완전히 달랐다.

“가르침이라니 당치 않소. 나는 그저 산 속에 묻혀 사는 폐인일 뿐이외다. 사람을 잘못 찾아온 게 아닌지 모르겠소.”

“저희들은 천하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서 이 작은 몸을 바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많은 것을 바라고 온 것은 아닙니다. 그저 눈앞의 일만이라도 잠시 밝혀주셨으면 합니다.”

거듭되는 방통의 간청에 자허상인은 물끄러미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눈을 감으며 청의 동자에게 명했다.

“붓과 종이를 가져오너라.”

청의 동자가 곧 연상을 내놓고 먹을 갈았다. 잠깐 사이 방 안 가득 묵향이 퍼져나갔다. 이윽고 자허상인은 종이를 펼쳐놓고 붓을 들었다.



왼편엔 용이요, 오른편엔 봉황일세.

훨훨 날아

서천으로 들어오는구나.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은

하늘의 당연한 이치.

움직임에도 때가 있으니

구천 길을 피할 수 없도다.



방통은 그 글을 받아들고 여러 번 읽어보았으나 얼른 내용을 해석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좋지 않은 일이 닥칠 거라는 분위기만은 짐작할 수 있었다. 기분이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다는 말씀이신지요?”

방통은 보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자허상인의 대답은 냉랭했다.

“하늘의 일을 내가 어찌 알겠소?”

그러고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으려는 듯 덮어놓았던 책을 다시 펴서 읽기 시작했다. 방통과 맹달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린 듯한 태도였다. 방통은 더 이상 채근해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았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암자를 나왔다.

‘오지 않은 것만 못하구나.’

후회하는 마음이 일었다. 산을 오르기 전보다 더욱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다. 맹달이 그러한 마음을 짐작하고 위로하듯 말했다.

“자허상인의 마지막 말씀이 옳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늘의 일을 미리 알 수 있겠습니까? 움직임에도 때가 있다고 하였으니, 군사께서는 그 ‘때’를 잘 정하시기만 하면 모든 게 잘 풀릴 것입니다.”

그러나 방통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병산 골짜기 아래로 짙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글자 그대로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그 곳은 방통이 지나가야 할 길이기도 했다.



공명의 선택 (241)…제21장 아아, 봉추여 (3)
  

남병산을 다녀오고 나서도 방통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했다. 모든 것이 막힌 듯 답답하고 암담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은 하늘의 당연한 이치. 움직임에도 때가 있으니 구천(九泉) 길을 피할 수 없도다.

자허상인의 음성이 계속 귓전을 때렸다.

서천 정벌―. 그는 눈앞의 낙성을 돌파할 묘수를 찾지 못해서 고뇌하고 있는 것이었다.

‘공명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방통은 공명의 시원스런 얼굴을 떠올렸다. 서정군이 강릉성을 떠나기 전 공명은 방통의 손을 붙잡고 당부한 말이 있었다.

―물에서 우리는 완전함을 배울 필요가 있네. 물은 막히면 차고, 차면 넘쳐흐르게 마련이지.
그것을 알고 행한다면 완전함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일을 물처럼 행하게나. 자네라면 잘 해낼 것으로 믿네.

‘물처럼……?’

무슨 뜻일까. 방통은 솔직히 공명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저 서정군에 대한 염려의 말이려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즘 와서는 자꾸 공명의 그 말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침상에 드러누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을 지키는 군사가 들어와 아뢰었다.

“웬 이상한 사람이 와서 군사님을 꼭 뵈어야겠다고 떼를 쓰고 있습니다.”

“이름이 뭐라고 하더냐?”

“아무리 물어도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무조건 군사님을 만나보겠다고 합니다.”

혹 자허상인이 무슨 할 말이 있어 찾아왔나 싶어 방통은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갔다.

뜰 한가운데 한 사나이가 서 있었다. 젊었다. 자허상인은 아니었다. 키는 8척쯤 될까. 엄청나게 컸다. 키가 작은 방통으로서는 고개를 쳐들고 한참 올려다보아야 할 정도였다. 그것만으로도 그 사나이는 방통에게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더더욱 방통의 눈길을 끈 것은 그 사나이의 외모와 복장이었다.

우선 머리는 풀어헤친 산발이었다. 나이 열다섯 살이 넘으면 관을 써야 하기 때문에 산발은 좀처럼 보기가 드문 시대였다. 죄수들이라면 모를까, 초야에 묻혀 사는 야인들도 결코 머리를 푸는 법이 없었다. 게다가 옷차림까지 너저분했다. 끈이 풀리고 구멍이 숭숭 뚫렸다. 더럽기 짝이 없었다. 언뜻 보면 동냥을 다니는 걸인이었다.

그런데 방통의 입에서는 짧은 탄성이 터져나왔다.

“아―!”

풀어헤친 머리카락 사이로 빛나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호랑이 눈빛 같았다.
이것을 안광(眼光)이라고 하는 것인가. 불덩어리 같은 것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문 지키는 군사가 기겁을 하여 달려와 보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방통은 사람을 감별하는 눈이 뛰어났다.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직감했다. 얼른 두 손을 모으고 공경하는 태도를 취했다.

“선생은 뉘십니까?”

그러나 그 사나이는 형형한 눈빛으로 방통을 흘깃 쳐다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방통의 곁을 지나 대청 위로 올랐다. 마치 자신의 집 마루 위로 올라가는 듯한 행동이었다. 아무리 방통이라지만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더욱 기가 막힌 일은 그 다음이었다.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방금 전까지 방통이 누워 있던 침상에 벌렁 드러눕는 것이었다.

‘혹시 미친 놈은 아닐까?’

의심이 버럭 일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리 이인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해괴한 짓을 서슴
없이 할 리가 없는 것이다.

사나이는 침상에 누운 채로 방통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방통이 그런 사나이를 향해 다시 한 번 물었다.

“선생은 누구십니까?”

그러자 사나이가 두 눈을 부릅떴다.

“웬 잔소리가 그리 많은가? 나는 너에게 천하의 중대사를 가르쳐주러 온 사람이다.”

미친 사람의 언행은 아니었다. 완전히 방통을 눈 아래 두고 있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사마휘의 괴팍함으로 단련된 방통이었다. 출사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자신 역시 파격의 행동으로 일관해오지 않았던가.



공명의 선택 (242)…제21장 아아, 봉추여 (4)
군자(君子)는 군자를 알아보고, 각자(覺者=사물의 이치를 터득한 사람)는 각자를 알아본다. 방통은 적어도 그 사나이가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찾아온 사람이라는 것만은 짐작했다. 방통은 대뜸 좌우 시종들을 돌아보며 영을 내렸다.

“무엇을 하는가? 어서 주안상을 내오도록 하라!”

잠시 후 상다리가 휘도록 푸짐한 술상이 들어왔다. 그것을 보자 사나이는 벌떡 일어나 인사 한마디 없이 상으로 달려들어 술과 안주와 밥을 먹어대기 시작했다. 엄청난 식성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음식상을 깨끗이 비웠다.

“어허, 좋구나.”

만족한 듯 길게 트림을 한 후 다시 침상 위로 올라가 벌러덩 누웠다. 눈을 감자마자 코 고는 소리가 방 안을 진동했다.

방통의 의심과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무엇보다도 그 사람의 신분을 알지 못했다. 곰곰이 궁리해보던 방통은 문득 한 생각에 미쳤다.

“법효직을 모셔오너라.”

효직이라면 법정의 자(字)다. 법정은 파촉 토박이는 아니었으나 오랫동안 이 곳에서 생활해왔다. 어쩌면 이 이인을 알아볼지도 몰랐다.

방통의 부름을 받은 법정이 무슨 일인가 하여 급하게 달려왔다. 뜰을 서성이고 있던 방통이 법정을 보자마자 물었다.

“이러이러한 사람이 지금 내 방에서 자고 있는데, 효직께서 혹시 아는 사람이오?”

생김새며 행동거지를 다 듣고 난 법정은 두 눈을 빛냈다.

“혹시 팽양(彭樣)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사나이가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법정이 침상 위의 사나이를 막 살펴보려는데, 별안간 그의 두 눈이 번쩍 뜨이면서 상체를 일으켰다.

“효직은 그간 별고 없었는가? 하하하……!”

집이 떠나갈 듯이 우렁우렁한 목소리였다. 법정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스쳐갔다.

“과연 짐작대로였구먼. 그런데 자네가 갑자기 여기는 웬일인가?”
두 사람은 얼싸안다시피 서로 손을 잡고 기뻐했다.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방통이 법정에게 물었다.

“두 분이 잘 아는 사이로구려.”

“그렇습니다. 이 친구는 광한 사람으로, 이름은 팽양이라고 합니다.”

자는 영년(永年)이다. 스스로 서천 제일의 기재라고 자칭하는 사람이었다. 광한군 면죽현에 숨어 살면서 큰뜻을 숨겨왔다. 그래서 일반 사람들은 그의 뛰어난 재능을 알아보지 못했다. 다만 진자래(秦子崍)라는 사람만이 그의 높은 재주와 식견을 알아보고 유장에게 천거했다.

―팽양은 천하의 재사입니다. 그는 대지 같은 덕을 품고 청죽 같은 정직함을 실행하면서, 돌을 베개삼아 잠을 자고 흐르는 물을 마시며, 허름한 옷을 입고 노래하며, 길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넓은 우주 속에 담담히 머물러 있으며, 고상한 기개와 바른 품행이 있으며, 자연의 본성을 지킬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옛날의 은둔지사라 하더라도 그를 뛰어넘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일 주공께서 팽양을 초빙하여 일을 맡기신다면 성대한 공업과 후한 이익을 얻으실 것입니다.

대단한 극찬이었다. 유장은 곧 팽양을 초빙하였다.

그러나 팽양은 자존심이 강하고 교만했다. 재주가 부족한 사람들을 멸시
하고 홀대하는 경향이 짙었다. 유장 앞에서도 그러했다. 유장은 그를 미관말직인 서기에 임명했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암군(暗君)이다.

팽양은 만나는 사람마다 유장을 비방했다. 이 소문이 유장의 귀에 들어갔다.

유장은 분노하여 그를 붙잡아 머리를 깎고 칼을 씌우는 곤겸(  鉗)이라는 형벌에 처했다. 그러고는 산 속으로 보내 강제노역을 시켰다.

“지금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지요.”

법정의 말을 들은 방통은 크게 기뻐했다. 이 괴팍한 사나이가 서천 제일의 기재 팽양일 줄이야. 더욱이 그는 유장에게는 원한을 품고 있었다. 이제 방통은 그가 찾아온 목적을 알게 되었다.

―주공에게 출사하려는 것이다.

방통은 팽양을 향해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선생께서는 어떤 가르침을 내리려 하십니까?”

팽양은 서기를 지낸 일개 죄수에 불과했다. 결코 그냥 적(籍)을 옮기려는 것은 아닐 것이었다. 뭔가 커다란 선물을 마련했음에 틀림없다. 공명도 ‘천하삼분의 계’를 바쳤고, 방통 역시 ‘연환계’를 선물로 바쳤다. 그래야 이 쪽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는 것이다.
팽양도 이제는 신비스런 이인의 흉내를 낼 필요가 없어졌다. 그는 일단 유비의 실세인 방통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이제부터는 실제적인 타협만 남았다.

“나는 당신들 수만 군사의 목숨을 구해주러 특별히 찾아왔소이다.”
팽양은 선물 보따리만 보였을 뿐 그 내용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었다. 나름대로 치밀한 계산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수만 군사의 목숨이라니요?”

“자세한 내용은 유황숙을 뵙고 직접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방통은 팽양의 뜻을 짐작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선물을 전달하겠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인가. 방통은 잠시 팽양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지금 곧 주공을 뵈러 가지요.”

방통과 법정은 팽양을 데리고 유비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방통의 얘기를 다 듣고 난 유비는 이내 팽양을 향해 물었다.

“나의 수만 군사가 위태롭다는 게 무슨 뜻이오?”

그런 유비에게 팽양이 오히려 되물었다.

“황숙께서는 진채에 얼마나 많은 군사를 배치했습니까?”

“오른편에는 황충, 왼편에는 위연을 배치했소이다. 각각 1만 군사를 거느리고 있소이다.”

군사 기밀이었다. 팽양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서임인가. 유비는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대답했다.

팽양이 빙긋 웃더니 나무라듯 다음 말을 이었다.

“장수 된 이로서 가장 먼저 살펴야 하는 것은 지리(地理)입니다. 황숙께서는 큰 우를 범하셨습니다. 어찌 이 곳 지리를 살피지도 않고 군사를 배치하셨습니까? 대관절 누가 그렇게 했는지 참으로 한심한 일입니다.”

“지리라니요?”

“황충과 위연 장군이 진채를 내리고 있는 곳은 부강(  江) 근처입니다. 만일 적병이 부강의 물길을 끊어 방향을 돌린다면 유황숙의 수만 대군은 칼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그대로 물귀신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지리를 살피지 않고 군사를 배치한 게 아니고 무엇입니까? 지금이라도 곧 수시로 부강 상류를 순찰하여 적병의 접근을 막으십시오.”

그러고는 곧 지도를 펼쳐놓고 서천 군의 수공에 대비한 방어 전략을 상세히 들려주었다. 유비는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가를 깨달았다.

“선생이 아니었더라면 돌이킬 수 없는 화를 당할 뻔했소이다.”

일어나서 공손히 절을 올린 후 팽양에게 치중종사의 벼슬을 내리었다. 군량을 담당하는 중요한 직책이었다.

그러나 방통은 불쾌감을 느꼈다. 군사 배치를 지시한 것이 방통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팽양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유독 그 점을 강조했다. 팽양이 지적한 바는 수긍이 갔으나 말하는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을 깎아내리고 자신을 돋보이려 하고 있다.’
방통은 말없이 그 곳을 물러났다.

낙성에서 60리 떨어진 곳에 진채를 세우고 있던 황충과 위연에게 새로운 명령이 떨어졌다.

―부강 상류를 순찰하여 서천 군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방비하라.
황충과 위연의 불화는 이제 말끔히 가셨다. 두 장수는 서로 의논했다.

“하루 낮 하루 밤씩 서로 교대하면서 순찰을 돌되 적병이 나타났을 시에는 불화살을 쏘아 연락을 하기로 합시다.”

한편 냉포는 낙성을 나와 부강 근처의 골짜기에 머물며 부강을 끊을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비바람이 일기만을 기다렸다. 바람소리에 자기 편의 움직임이라든가 삽질, 괭이질 소리가 묻혀야 유비 군이 눈치채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바람이 몹시 몰아쳤다. 빗방울도 간간이 뿌렸다.

“일제히 삽과 괭이를 들고 부강으로 내려가 물길을 끊어라!”

냉포는 5천 군사에게 영을 내리고 직접 앞장서서 달렸다. 그들이 강가에 도착하여 막 강물을 끊으려 할 때였다.

“이놈들, 우리가 여기서 기다린 지 오래다. 그 따위 얕은 수가 통할 줄 알았더냐?”

호통소리와 함께 유비 군이 그들의 뒤를 덮쳤다. 앞장선 장수를 보니 위연이었다.

냉포는 기겁을 했다. 위연에게 한 번 사로잡힌 바 있는 그는 감히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얼른 말에 올라탔다. 그러나 위연이 더 빨랐다. 막 말고삐를 잡으려는 냉포의 허리를 위연의 굵은 팔뚝이 날쌔게 휘감았다. 마치 매가 병아리를 채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느 틈에 달려왔는지 황충의 군사가 남은 서천 군을 짓밟고 있었다. 낙성에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뇌동과 오란이 냉포를 구하러 달려왔다. 그들이 부강 상류에 당도했을 때는, 그러나 황충과 위연은 이미 강 하류의 진채로 돌아가고 난 뒤였다.

또다시 냉포를 사로잡은 위연은 그 길로 부성으로 달려가 유비에게 보고했다. 냉포를 본 유비는 전에 없이 성을 내며 꾸짖었다.

“내가 너를 인의로써 대했는데, 너는 어찌하여 나를 배반한 것이냐!”
이렇게 소리치고는 좌우 군사들에게 명하여 냉포의 목을 베어버렸다. 전
혀 망설임이 없는 냉혹함이었다.

  
공명의 선택 (243)…제21장 아아, 봉추여 (5)
―크나큰 위험을 미연에 방지했다.

유비는 팽양의 공을 높이 평가했다. 냉포를 사로잡아온 위연에게 상을 내리는 한편 따로이 연회를 크게 베풀어 팽양을 대접했다.

그러나 방통의 마음은 여전히 우울했다. 황충과 위연의 진채를 서천 군의 수공으로부터 막아낸 것은 다행한 일이었지만, 더 시급한 문제는 낙성 점령이었다. 유비 군은 지키는 군대가 아니라 공격하는 군대였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 묘계를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유비도 역시 그 점을 답답하게 생각하고 있었음인가. 술잔이 서너 순배 돌자 문득 팽양을 돌아보며 물었다.

“선생은 낙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오?”

깨뜨릴 묘책을 묻는 질문이었으나 팽양의 대답은 전연 엉뚱했다.

“낙성은 요새입니다. 주공의 지금 군세로는 도저히 함락시킬 수가 없습니다. 잠시 물러가든가 아니면 형주에서 군사들을 더 충원하든가 해야 합니다. 더욱이 별자리를 보니 북두성이 서쪽에 자리잡고 있고, 태백성(太白星=금성)이 낙성 위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이는 주공의 우두머리 장수 신상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조짐입니다. 마음을 조급히 먹지 말고 느긋하게 때를 기다리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팽양은 언뜻 방통을 훔쳐보았다. 유비는 낙심했다.

“아아, 서천 땅을 취하기가 이렇게도 어렵단 말인가?”

방통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앞날에 대한 계책을 세우지 못해 우울해하고 있던 그는 낙성이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팽양의 말에 엉뚱한 오기가 생겼다. 그는 반박하듯 유비에게 말했다.

“팽양의 말은 옳지 않습니다. 아무리 서천의 지형이 험준하다고는 하지만 군대를 몰아 공격하면 능히 낙성을 깨뜨릴 수가 있습니다. 언제까지 여기서 이렇게 앉아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군사께는 비책이 있습니까?”

유비는 낙성을 깨뜨릴 수 있다는 방통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주공께서는 아무 염려 하지 마십시오. 수일내에 진격하여 낙성을 주공께 바치겠습니다.”

유비가 기뻐서 고개를 끄덕거리는데 별안간 문 지키는 군사가 들어와 아뢰었다.

“형주에서 마량이 이제 막 당도했습니다.”

유비는 형주라는 말을 듣자 반가움부터 일었다. 마량이 들어오자 급히 물었다.

“제갈 군사께서는 잘 계시느냐?”

“예, 별일 없습니다.”

“형주 땅도 아무런 소란이 없겠지?”

“예, 모든 장수들이 잘 지키고 계시니 주공께서는 과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가?”

유비는 비로소 마량이 온 까닭을 물었다.

“제갈 군사께서 글 한 통을 보냈습니다.”

마량은 곧 품안에서 공명이 써준 편지를 꺼내 바쳤다. 유비는 얼른 봉함을 뜯어 내용을 읽어보았다.

……양(亮)이 간밤에 천문을 보니 북두성이 서쪽에서 빛나고, 태백성이 낙성 근처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는 서천에 유리하고 주공께 불리한 조짐입니다. 또한 장수의 신상에 위험이 닥칠지 모릅니다. 조심하고 조심하십시오. 결코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우연인가. 아니면 현자(賢者)는 별자리를 보고 앞일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인가. 조금 전에 팽양이 했던 말과 너무나 똑같았다.

공명에 대한 유비의 신뢰도는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유비의 마음이 슬며시 회군 쪽으로 기울어졌다.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기까지에는 무려 2백 가지의 조짐과 원인이 알게 모르게 그 과정 속에서 드러난다고 한다. 이 때가 바로 그러한 경우라고 하면 너무 지나친 억측일까.

그 첫째가 남병산에 은둔하고 있는 자허상인의 예언이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은 하늘의 당연한 이치. 움직임에도 때가 있으니 구천 길을 피할 수 없도다.

구천은 곧 죽음을 말한다. 방통은 좀더 깊이 자허상인이 한 말의 의미를 파헤쳐보았어야 했다.

두 번째가 팽양의 점성술이었다. 그런데 그 이전에 이미 방통은 팽양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당연히 그의 예언을 무시했다. 아니, 오히려 오기만 발동시킨 결과를 낳았다.

세 번째로, 공명의 우려와 충고였다. 하지만 이것 역시 방통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조짐이랄까 원인은 방통의 유별난 조급함과 고집이었다. 여느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유비가 공명의 편지를 보고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눈치챘다.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쉬운 일은 누구든지 다 잘 할 수 있다. 남들이 어렵다고 하는 일을 해내는 것이 정말 뛰어난 재사가 아니겠는가.’

나름대로 결의를 다지고 다시 한 번 유비에게 말했다.

“저 역시 천문을 볼 줄 압니다. 북두성이 서쪽에서 빛나고 있음은 주공께서 서천을 얻게 되리라는 것을 나타내보이는 것이며, 태백성이 낙성 위에서 빛나고 있음은 이 지역 장수 중 하나가 흉한 일을 당할 거라는 예언입니다. 그런데 이제 적장 냉포가 사로잡혀 참수당했으니, 그 흉조는 이미 풀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쓸데없는 걱정으로 서천 정벌의 중대사를 포기하셔서는 안 됩니다. 하루라도 빨리 군사를 몰아 낙성을 깨뜨리십시오.”

여느 때 같으면 공명의 말을 따를 유비였다. 그러나 이 때는 그렇지가 않았다. 방통의 말이 그럴 듯하게 들렸다. 유비는 다시 마음이 바뀌었다.



공명의 선택 (244)…제21장 아아, 봉추여 (6)
“방 군사의 말이 옳다!”

며칠 후, 유비는 방통의 말에 따라 대군을 이끌고 황충과 위연이 머물고 있는 진채로 들어갔다. 총공격을 감행할 참이었다. 방통은 먼저 법정을 불러 물었다.

“낙성으로 이어지는 길은 몇이나 있소?”

“군사를 몰고 갈 만한 길은 두 군데가 있습니다.”

법정은 종이에 지도를 그리면서 설명했다. 유비가 전에 장송에게서 받았던 서촉 지도를 꺼내 맞춰보았다. 법정의 말과 일치했다.

방통이 기쁜 표정으로 유비에게 말했다.

“산 북쪽의 큰 길은 낙성 동문에 이르게 됩니다. 주공께서는 황충을 선봉으로 삼아 이 길을 취해 나아가십시오. 저는 위연과 더불어 산 남쪽의 소롯길을 통해 낙성 서문을 들이치겠습니다. 양쪽에서 성을 공격하면 적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유비는 찬성했다. 그런데 문득 어떤 예감이 스쳐갔는지 고개를 저으며 다른 방법을 제안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전장(戰場)에 익숙한 몸이오. 산 속 작은 길은 복병을 숨기기가 맞춤한 곳이오. 전투 경험이 부족한 방 군사께서 위험한 길을 가는 것은 별로 바람직스럽지 못하오. 내가 남쪽 소롯길로 가서 서쪽 문을 취할 테니 군사께서는 북쪽 큰 길로 가서 동문을 공격하시오.”

“아닙니다. 적은 오히려 큰 길에 많은 군사를 내어 우리의 진격을 막으려 들 것입니다. 역시 경험이 부족한 제가 소롯길을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방통은 자신의 뜻을 계속 우겼다. 유비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날 밤이었다. 유비는 꿈을 꾸었다. 하늘에서 신장(神將) 하나가 내려오더니 쇠막대기로 다짜고짜 유비의 오른팔을 후려쳤다. 놀라서 깨어났는데도 계속 오른팔이 아플 정도였다.

불길한 예감이 든 유비는 날이 새기가 무섭게 방통을 불러 다시 말했다.

“어젯밤 꿈을 꾸었는데, 몹시 마음이 불안하오. 낙성 공격을 다음으로 미루는 것이 어떻겠소?”

방통이 껄껄껄 웃어대며 대답했다.

“꿈 속 일까지 걱정하면서 어찌 전쟁을 치를 수가 있겠습니까? 주공께서는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이번 싸움은 반드시 우리가 이깁니다.”


방통이 이렇게까지 나오자 유비도 더는 우길 수가 없었다.

출격 명령을 내렸다. 말을 타고 막 진채를 나서려는데, 문득 방통의 말이 크게 놀라 날뛰었다. 그 바람에 방통이 말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유비는 깜짝 놀라 급히 말에서 내려 방통을 부축해 일으키며 물었다.

“다친 곳은 없소이까?”

“괜찮습니다.”

“군사께서는 하필이면 어째서 이런 보잘것없는 말을 타고 다니십니까?”
“이 말은 제가 오래도록 타고 다닌 말입니다. 전에는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방통이 변명하듯 대답했다.

“큰 싸움을 앞두고 말이 이같이 사나우면 말 주인이 다칩니다. 내가 타는 백마는 성질이 온순합니다. 군사께서 내 말을 타시오. 나는 다른 말을 타겠소이다.”

방통은 자신을 아끼는 유비의 마음에 감격했다. 새삼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주공의 두터운 은혜는 만 번 죽어도 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 말에 유비는 마음이 불안했다. 굳이 죽음까지 들먹이는 방통의 인사가 께름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유비와 방통은 북쪽 길과 남쪽 길로 각각 헤어졌다.

공명의 선택 (245)…제21장 아아, 봉추여 (7)
냉포의 죽음으로 낙성은 분위기가 침울했다. 총사령관 오의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의 수하 장수 중 장임은 병법에 밝은 지장(智將)이었다. 그는 유순과 오의에게 말했다.

“저들이 비록 냉포를 잡아 죽였지만 마음 속으로는 몹시 초조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조만간에 대군을 이끌고 낙성으로 쳐들어올 것이 틀림없습니다. 성 서편 남산 기슭에 작은 소롯길이 있습니다. 요로인 만큼 저들은 반드시 그 길을 통해 이 곳으로 쳐들어올 것입니다. 제가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그 곳을 지킬 터이니, 여러 장수들께서는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있다가 상황을 보아 유비 군을 들이치시오.”

그 때 정탐꾼이 달려와 유비 군이 진채를 떠났다는 소식을 알렸다. 장임은 급히 3천 군사를 거느리고 낙성 서북편 소롯길로 달려가 골짜기 주변에 숨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유비 군의 선봉장 위연이 그 곳에 나타났다. 장임이 영을 내렸다.

“꼼짝 말고 그대로 있어라. 우리의 목표는 중군이다.”

위연의 선봉 부대를 그대로 통과시켰다. 잠시 후 중군이 소롯길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앞장 선 대장은 눈처럼 흰 백마를 타고 있었다.

“백마를 탄 자가 유비임에 틀림없습니다.”

전에 유비의 말을 본 적이 있는 군사 하나가 장임에게 말했다. 장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군사들에게 가만히 명령했다.

“신호가 나거든 일제히 유비를 향해 활을 쏘아라! 다른 자는 필요없다.”

7월―. 맹추(孟秋)라고는 하지만 남쪽 지역이었다. 한여름철이나 다름없었다.

양쪽 산은 붙은 듯 마주 보고 있었고, 골짜기는 유독 깊었다. 나무와 풀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잎들과 가지가 무성해 그 안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을 정도였다.

‘과연 서천의 산세로다.’

방통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주변 경관에 대한 한가로운 감상이 아니었다. 매복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척후를 보내 일일이 확인해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선봉 위연이 별탈 없이 지나간 것만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서늘한 기운이 솟아올랐다. 가슴이 뛰고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몹시 기분이 나쁘다.

‘이런 곳에서 복병을 만나면 꼼짝없이 죽겠구나.’

방통은 다시 한 번 좌우 골짜기를 둘러보았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골짜기를 덮은 나무 숲 위로 새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인적이 없는 산중이었다. 대군의 행군에 새들이 놀라 날아올라야 했다. 그런데도 날아오르는 새 한 마리 없다. 그 전에 이미 날아올랐다는 의미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방통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뒤를 돌아보며 급히 영을 내렸다.

“회군(回軍)이다. 모두 물러나라!”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방통의 군령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일성포향이 천지를 진동하면서 수천 개의 화살이 일시에 쏟아졌다. 메뚜기떼 같았다. 하늘이 어두워질 정도였다. 그 화살들은 모두 백마를 타고 있는 방통을 향해 날아들었다.

아무리 신출귀몰한 재주를 지닌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찌 그 화살을 피할 수 있겠는가. 그의 몸에는 이미 수십 개의 화살이 박혀 있었다. 버티려 했으나 버틸 수가 없었다. 말이 먼저 다리를 꿇었다. 그 말과 함께 방통도 땅바닥으로 무너져내렸다.

“아, 봉추가 여기서 떨어지는구나!”

방통의 입에서 튀어나온 마지막 말이었다. 이 곳 지명이 낙봉파(落鳳坡)라고 했던가. 방통이 죽은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인지도 몰랐다.
어찌되었건 한 번 무너져내린 방통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화살들은 계속해서 그의 몸 위로 쏟아졌다.

아아, 방통이여!

어찌할까. 끝내 뜻도 펴보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고 말았으니, 아깝고도 아깝구나.

방통의 나이 36세―.

당시 그 지방 사람들 사이에서는 다음과 같은 노래가 유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봉황새 한 마리와 용 한 마리
나란히 파촉으로 날아드네.
겨우 반 길쯤 가서
봉황새는 언덕 동편에 떨어지네.
바람은 비를 부르고
비는 바람을 보내는구나.
한나라 일어나니 촉도(蜀道)는 열리고
촉도가 통할 때
오직 용 한 마리 남아 있을 뿐이네.

“방 군사께서 전사하셨습니다!”

앞서 낙봉파를 통과했던 위연은 낙성 30리 전방에서 방통의 죽음 소식을 들었다.

“그럴 리가……!”

위연은 자신의 귀를 믿지 못했다. 복병에 쫓기는 중군 군사들이 계속해서 그가 있는 곳으로 쫓겨오고 있었다.

“중군을 구원하라!”

말머리를 돌리라는 영을 내렸다. 그러나 길이 너무 좁았다. 군사를 돌릴 수가 없었다. 한동안 혼란이 일었다.

그들이 겨우 낙봉파로 달려가려는데 촉장 장임이 먼저 그 곳으로 달려와 화살과 쇠뇌를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골짜기 위편 숲 속에서였다.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가 없었다. 위연의 군사들은 아우성을 치며 죽음을 피하여 서로 달아나려 했다.

“아무래도 낙성 앞으로 나가 큰 길을 취하는 것이 상책일 듯싶습니다.”
항복한 촉병 출신이 위연에게 아뢰었다. 그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위연은 중군을 포기하고 다시 말머리를 돌려 낙성을 향해 달렸다. 그러나 이미 낙성에서도 장임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줄을 알았다. 서둘러 성문을 열고 달려나왔다. 오란과 뇌동이었다.

위연은 앞뒤로 적을 맞아 싸웠다. 이길 승산은 전혀 없었다. 절망적이었다. 오로지 싸우다 죽을 뿐이다,라는 각오로 창을 휘둘렀다.

별안간 오란과 뇌동의 후미가 크게 어지러워졌다. 위연은 희망을 갖고 그 쪽을 향해 밀고 나갔다. 졸개들은 상대하지 않고 오로지 오란과 뇌동만 바라보고 말을 달렸다.

그 때 건너편에서 한 장수가 칼춤을 추며 달려나오고 있었다.

“위연아, 내가 특별히 너를 구하러 왔다!”

노장 황충이었다. 위연은 반가움을 이길 수가 없었다. 천군만마를 보는 듯했다. 힘이 솟았다. 그들은 곧 군사를 합세하여 오란과 뇌동의 군사들을 시살해나갔다.

혼전이었다. 낙성의 성문이 다시 열리며 오의와 유괴가 그 싸움에 가세했다. 촉군에게 유리한 쪽으로 전개되었다. 잠시 후 그 곳에 유비의 군사들이 도착했다. 전세는 다시 팽팽해졌다.

또 한 번의 변화가 생겼다. 방통을 죽인 장임의 군사들이 낙봉파를 나와 그 곳에 당도한 것이었다.

“반도들을 몰살하라!”

이제 국면은 서촉 군사들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들은 갈수록 기운이 나고 사기가 높아지는 반면, 유비의 군사들은 사람과 말이 다 피곤했다.

싸움을 지휘하던 유비는 결국 징을 쳐서 군사들을 물리기 시작했다. 황충과 위연이 뒤를 맡았다. 그 덕분에 겨우 부성으로 도망쳐올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피해는 적지 않았다.

유비는 부성 안에 들어서서야 방통의 죽음 소식을 들었다.

“아아―!”

말을 잊었다. 통곡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너무나 기가 막힌 일이었다. 둥그렇게 뜬 두 눈에서 눈물만 소리 없이 쏟아져내렸다. 그러다가 별안간 자리에서 쓰러졌다. 혼절이었다.

반나절쯤 지나 유비는 다시 깨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외쳤다.

“하늘도 무심하구나. 아직 갈 길은 먼데, 어찌하여 봉추를 나에게서 뺏어간단 말인가.”

그러고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와룡과 봉추 중 한 사람만 얻어도 천하를 도모할 수 있다.

그런 기재 중 한 사람을 잃은 것이었다. 어찌 안타깝고 통탄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유비는 사흘간 슬피 울었다. 단을 지어 초혼제를 올렸다.

“저 세상에서나마 부디 천하의 안녕을 도모하시오. 잘 가시오, 봉추여!”
모든 사람들이 다 통곡했다.

  
공명의 선택 (246)…제21장 아아, 봉추여 (8)
강릉성―.

그 날의 밤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별들이 바람에 쓸려 금방이라도 머리 위로 쏟아질 것 같았다.

공명은 밤늦게야 회의를 마치고 관원들과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 화제는 주로 서촉에 관한 일이었다. 회군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고,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는 관리들도 있었다. 팽양에 관한 이야기는 그들에게 좋은 화젯거리였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동안 더욱 신비스럽게 부풀려졌다.

공명은 가만히 앉아 주로 듣기만 했다. 아니,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가슴이 떨리는 것이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불길한 예감이 스쳐갔다. 전날 아내 황용이 들려준 꿈 이야기도 께름했다. 작은 새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가고 있었다. 깃털이 영롱하고 예쁘게 생긴 새였다. 황용은 돌멩이 하나를 주워들고 새를 향해 던졌다. 맞추려는 생각은 없었다. 무심코 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 돌멩이가 새의 머리에 가서 맞았다. 새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놀란 황용이 달려가 새를 주워들려는데, 별안간 새가 사람의 형상으로 변하였다. 그 얼굴을 들여다보니 방통이라는 것이었다.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고 하였다.

―어찌나 생생하던지 지금도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공명은 아내의 꿈 이야기를 심상히 들어 넘기는 척했으나, 사실은 내내 마음이 편칠 못했다.

이제는 전신에 오한이 나고 살이 마구 떨렸다. 어금니를 깨물며 참았으나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 때였다. 누군가가 밤하늘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 별을 보아라. 참으로 밝기도 하구나!”

공명도 그 곳을 쳐다보았다. 깜짝 놀랐다. 그 별은 방통이 융중 시절부터 늘 자기 별이라며 자랑하던 별이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도 크고 밝은 별이었다. 그런데 그 날 밤은 유독 더 밝았다.

“앗!”

공명의 입에서 낮은 외침소리가 터져나왔다. 별이 흔들렸기 때문이었다. 아니, 흔들렸는가 싶자 더욱 강한 빛을 발하더니 쏜살같이 아래로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떨어지면서 별은 더욱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장관으로 비쳤다. 그만큼 그 별똥별은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아―!”

모두들 탄성을 내지르는 중에 공명만은 별안간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슬프구나, 방통이여. 아프구나, 방통이여!”

“무슨 일이십니까?”

곁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공명에게 물었다. 공명이 흐느끼는 어조로 대답했다.

“저 별은 방통의 별이오. 그런데 오늘 저렇듯 강한 빛을 내뿜으며
서쪽 땅으로 떨어진 것을 보니, 이것은 반드시 방통이 세상을 떠난 것이 분명하오. 어찌 놀라고 슬프지 않은 일이겠소. 우리 주공께서는 이제 한 팔을 잃으셨소이다.”

그러고는 다시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놀라운 말이었으나 선뜻 믿기지가 않았다. 아무리 공명이 천문에 통달했다고는 하지만 별을 보고 사람의 앞일까지 알아맞힐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너무 속단하신 것은 아닌지요?”

간옹이 물었다.

“수일 안에 반드시 서천에서 사람이 올 것이외다. 아아,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며칠 뒤였다. 공명이 관우와 함께 당상에 앉아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는데 수문장이 와서 아뢰었다.

“서촉에서 관평 장군이 왔습니다.”

당하에 모여 앉아 있던 모든 관원들은 깜짝 놀랐다. 공명의 예언이 꼭 들어맞았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관평이 들어와 공명에게 군례를 올린 후 말했다.

“방통 군사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러고는 그 날의 전투 상황을 자세히 보고했다.

“아아, 내가 일부러 조심하라는 편지까지 보냈거늘…… 하늘의 뜻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인가.”

공명은 또 한바탕 통곡을 터뜨렸다. 모든 관원들도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비 오듯 흘렸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앞으로의 일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관우의 깨우침에 공명은 눈물을 씻었다.

“관운장의 말씀이 맞습니다. 지금 주공께서는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빠져 있을 것입니다. 내가 여기서 편안히 앉아 있을 수가 없소. 서천으로 가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곳 형주도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군사께서 서천으로 가신다면 형주는 누가 지킵니까? 가벼이 생각하실 일이 아닙니다.”

관우의 지적에 공명이 좌우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주공께서 관평을 보내신 것은 다 뜻이 있어서입니다. 형주는 관운장께서 맡아 지켜주셔야 하겠습니다. 미염공이라면 능히 이 곳을 지켜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관우는 공명의 말을 듣자 얼굴빛을 바꾸며 각오를 새로이 다짐했다.

“군사께서 형주의 중요한 책임을 제게 맡기시니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 곳을 지키겠습니다.”

전에 없이 비장한 각오였다. 공명은 언뜻 어두운 예감이 스쳤으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곧 형주의 인수를 끌러 관우에게 내주었다. 잠시 침묵한 채 관우를 쳐다보다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다시 말문을 열었다.

“만일 조조가 쳐들어온다면 장군께서는 어찌하시렵니까?”

“힘을 다하여 싸우겠습니다.”

“그렇다면 조조와 손권이 동시에 쳐들어오면 어찌하실 텝니까?”

“군사를 나누어 막겠습니다.”

관우의 결의어린 대답에 공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하시면 형주는 위태로워집니다. 제가 여덟 글자를 써드릴 터이니 장군께서는 늘 머릿속에 담아두고 그대로 시행하십시오. 그 점만 지켜주신다면 형주는 안전할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 공명은 붓을 들어 글을 써내려갔다.

북거조조(北拒曹操), 동화손권(東和孫權).
북으로 조조를 막고, 동쪽으로는 손권과 친하라―이런 뜻이었다.

  
공명의 선택 (247)…제21장 아아, 봉추여 (9)
―제2차 서정군.

일찍이 융중의 초려에서 설파한 바 있는 ‘천하삼분의 계’ 중 마지막 순서였다. 여기서 실패하면 모든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공명은 신중했다. 장고 끝에 서정(西征)에 참여할 장수들을 선정했다. 장비와 조운을 낙점했다. 그들을 불러 각기 명령을 내렸다.

“장익덕은 좌군이 되어 정병 1만 명을 거느리고 큰 길로 달려가 파군을 비롯한 낙성의 서편을 공략하십시오.”

“조자룡은 우군이 되어 정병 1만 명을 거느리되, 뱃길을 취해 장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 의도, 서릉, 신릉을 거쳐 낙성으로 나아가십시오.”

공명 자신은 중군이 되어 간옹, 장완(蔣琬)과 함께 군사 1만 5천 명을 거느리고 그 뒤를 따르기로 했다.

장비와 조운은 사기가 충천했다. 제1차 서정군에 선발되지 못했을 때는 몹시 분해했던 두 사람이었다.

―장군들께서도 공을 세울 기회가 올 것이니 너무 조급히 생각하지 말고 기다리시오.

그들을 달래느라 공명은 꽤나 애를 먹었었다. 예언 같은 말이었다. 2년여가 흘러 공명의 말대로 그 기회가 왔다. 두 주먹을 불끈 쥘 만도 하였다.

“서촉 촌뜨기들쯤이야. 단숨에 박살내 버리겠다.”

장비는 장팔사모를 휘두르며 호언장담했다. 그런 장비의 모습이 공명의 눈에는 불안하게 비쳤다. 특별히 그를 불러 당부의 말을 했다.

“서천에는 영웅호걸이 많습니다. 가볍게 보시면 안 됩니다. 특히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마십시오. 주공께서 오랜 시일 동안 그 곳에 머무는 까닭도 민심을 얻기 위해서임을 장군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을 점령하지 않아도 되니, 가능하면 빠르게 주공에게로 달려가십시오.”

“군사께서는 염려를 접어두십시오. 질풍처럼 달려가겠습니다.”

그렇게 장비는 떠났다. 같은 날 조운도 배를 타고 강릉성을 출발했다.
공명은 그들보다 이틀 늦게 서촉으로 향했다. 그 이틀 사이에 형주 지키는 일을 관우와 의논했다. 문관으로는 마량, 이적, 향랑(向朗), 미축을 남겨놓았고, 무장으로는 관평, 미방, 요화(寥化), 주창(周倉) 등을 남겨두기로 했다.

공명의 측근에 새 얼굴이 보였다. 장완이었다. 장완은 유비가 서촉으로 들어가고 난 후 형주에서 새로이 찾아낸 인재였다. 자를 공염(公琰)이라 했다. 영릉군 상향현(湘鄕縣) 사람이다. 약관(弱冠=20세)의 나이에 이미 그의 능력이 주군에 널리 알려졌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공명은 그를 서좌(書佐=서기)로 임명했다. 군사중랑장의 비서실장인 셈이다.

장비와 조운의 출발에 비해 공명의 출발은 조용했다. 전투부대라기보다는 총사령부의 이동이었다. 참모진들이 바삐 움직였다. 수시로 정탐병들이 앞서간 두 장수의 동향을 보고해왔다.

―민심의 태반은 이미 아군에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성문을 열고 맞아들이고 있습니다.

장비도, 조운도 싸움 한 번 하지 않고 서천 깊숙이 들어갔다고 했다.
“주공의 힘이다!”

2년여를 끈기 있게 기다리며 쌓아놓은 유비의 덕망이 그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라고 공명은 단언했다. 공명이 이르는 곳마다 서천 백성들의 환호하는 소리가 높았다. 윤건에 학창의를 입은 공명은 수레 위에 높이 앉아 백우선을 흔들며 그 환호에 답했다.

무인지경을 달리듯 하던 장비가 첫 장벽에 부딪쳤다. 한천(漢川)을 건너 파군(巴郡)에 이르렀을 때였다.

파군은 강주(江州)라고도 했다. 성도, 낙성과 더불어 삼각형을 이루는 지점이었다. 교통의 요충지였다. 당시 파군 태수는 엄안(嚴顔)이라는 장수였다. 서촉이 자랑하는 명장 중의 한 사람이었다. 나이가 많았으나 기력과 기백은 청년 장수 못지않았다. 경궁(硬弓)을 잘 쏘고 검술에도 능했다. 용맹 또한 남에게 뒤지지 않았다. 고지식하고 강직하기로 소문난 인물이었다.

“항복 사자를 보내라.”

장비는 여느 고을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당연히 성문을 열고 맞아들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엄안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항복을 권고하러 갔던 사자가 코와 귀를 떼인 채 돌아왔던 것이다.

―장비는 빨리 형주로 돌아가라. 그렇지 않고 계속 여기에 머물면 그대 또한 머지않아 이와 같이 되리라.

엄안의 대답이었다. 장비는 불같이 노했다. 고리눈을 부릅뜨고 말 위에 올랐다. 호랑이 수염이 쭈뼛 섰다.

“당장에 박살을 내주리라!”

총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엄안에게도 방어 전략은 서 있었다.

―굳게 지켜라!

원정군의 약점은 식량에 있게 마련이다. 한 달만 버티면 식량이 떨어져 철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결코 성문을 열고 맞서 싸우지 않았다.


공명의 선택 (248)…제21장 아아, 봉추여 (10)
장비는 실체가 없는 그림자와 싸우는 느낌이었다. 도무지 반응이라곤 없었다. 강주성은 평지가 아니라 산성(山城)이었다. 주변 지세가 몹시 험하고 가팔랐다. 성벽을 타고 오른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열흘간을 형체 없는 그림자와 싸우며 헛힘만 뺀 장비는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냈다. 공격을 중단했다.

“강주성을 우회하는 샛길을 찾아라.”

군사들은 싸움 대신 제각기 흩어져 산 속을 뒤졌다.

강주성 안의 엄안은 별안간 공격이 중단되자 의혹이 일었다. 염탐꾼을 풀어 장비의 속셈을 알아오게 했다.

―장비가 이 곳을 포기하고 샛길로 빠져 낙성으로 직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보고를 받은 엄안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야 내가 장비를 사로잡을 수가 있겠다. 이 곳 샛길은 좁고 험하다. 군사들이 길을 뚫고 양식과 치중은 뒤에 둘 것이다. 이것을 들이쳐 빼앗으면 장비는 꼼짝없이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고는 미리 샛길 주변에 복병을 숨기고, 그 또한 숲 속에 숨어 장비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이러한 엄안의 움직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비는 예정대로 군사들을 거느리고 낙성으로 빠지는 샛길로 들어섰다. 밤길이었다. 말에 재갈까지 물린 은밀한 행군이었다. 장비가 맨 앞에 섰다.

산 속에 매복해 있던 엄안과 군사들은 그 장비를 그대로 통과시켰다. 오래지 않아 양곡을 실은 치중 행렬이 뒤를 이었다. 엄안이 노리던 것이었다.

“북을 울려라!”

동시에 산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복병들이 일시에 치중대를 덮쳤다. 엄안도 길가로 나와 싸움을 지휘했다. 그 때였다. 산길 아래편에서 별안간 한 떼의 군마가 쏟아져 나오며 엄안의 군사들을 덮쳤다.

“늙은 도적은 달아나지 마라. 내가 너를 기다린 지 오래다!”

앞장서서 달려오는 장수가 있었다. 그 장수를 본 엄안은 기겁을 하였다. 고리눈에 호랑이 수염―틀림없는 장비였다. 그가 지나가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그런데 어찌 또 장비가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두 눈을 씻으며 의혹에 잠겨 있는 사이, 장비가 어느 틈에 눈앞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칼을 들어 휘둘렀으나 손발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열 합이 채 안 돼 여기저기 빈 틈이 드러났다. 장비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엄안의 허리춤을 나꾸어채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동시에 군사들이 달려들어 밧줄로 꽁꽁 묶었다. 그 때 앞서 지나쳐갔던 군사들이 다시 돌아와 엄안의 군사들을 들이쳤다. 또 하나의 장비도 그 틈에 섞여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는 수염과 외모만 비슷한 가짜 장비였다. 그제야 엄안은 자신이 속은 것을 깨달았다.

엄안이 사로잡힌 것을 안 강주성 군사들은 앞을 다투어 칼과 창을 버리고 항복했다. 성 안의 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성벽 위에 흰 기가 나부끼었다. 성문이 열렸다. 장비는 기세 좋게 그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대청 높은 곳에 앉았다. 엄안이 끌려들어왔다. 무릎을 꿇으라 했으나 꿇지 않았다. 뻣뻣이 섰다. 장비는 그런 엄안을 내려다보며 크게 호통쳤다.

“너는 어찌하여 항복하지 않고 맞섰느냐?”

그러나 엄안은 기개가 늠름했다. 조금도 두려워하는 빛이 없었다. 오히려 장비를 향해 꾸짖었다.

“너희들은 우리 땅을 쳐들어온 침략자들이다. 서촉에는 머리가 잘리는 장수는 있을지언정 항복하는 장수는 없다!”

장비의 두 눈에 불꽃이 튀었다. 턱살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좌우를 둘러보며 외쳤다.

“당장 저놈의 목을 베어라!”

“이상한 놈이군. 목을 베려면 빨리 벨 것이지, 화는 왜 내느냐?”

오히려 엄안이 침착하고 차분했다. 전혀 죽음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목소리도 여전히 기개에 차 있었다.

그런 엄안의 모습을 보고 있던 장비는 문득 가슴 속에 뜨거운 불덩어리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참다운 사나이를 만났다는 감동이라고나 할까. 방금 전까지의 분노가 기쁨으로 바뀌었다.

‘아깝다!’

장비는 의기를 중히 여기는 사나이였다. 눈앞에 또 한 사람의 사나이가 서 있었다.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 사나이다. 엄안을 내려다보았다. 엄안도 장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눈길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뜨거운 불꽃이 튀었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있었다.

장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청 아래로 걸어내려갔다. 엄안 앞에 섰다. 칼을 뽑았다.

‘이대로 죽이기는 아까운 인물!’

밧줄을 끊었다.

“아―!”

모두들 놀랐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장비가 엄안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욕보인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노장군이야말로 진정한 호걸이십니다. 더 이상 항복을 권하지 않겠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모두들 경악하고 있는 중에 엄안도 무릎을 꿇었다. 장비의 두 손을 맞잡았다. 그런 그의 두 눈에는 맑은 이슬이 맺혀 있었다.

“항복하오.”

엄안의 뜨거운 숨결이 장비의 얼굴에 와 닿았다.






<공명의 선택> 22장 서천에 뜨는 해
<공명의 선택> 20장 파촉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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