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연 :: 동호회


정삼연 로그인
아이디
비밀번호
 아이디, 비밀번호 찾기
 회원가입
자유게시판
 치기 어린 시절에 남겨...
 sbs 야구병법
 EBS 세계견문록 삼국지...
  EBS 세계견문록 아틀...
 정원기 소장와 함께 떠...
공지사항
 중화TV 삼국지 덕후 콘...
 sbs 야구병법
 EBS 세계견문록 삼국지...
  EBS 세계견문록 아틀...
 정원기 소장과 함께 떠...


  천공하후패(2001-01-06 15:19:50, Hit : 2493, Vote : 199
 방덕전(퍼왔습니다.)
방덕전(龐悳傳)

방덕은 자가 영명(令明)이고 남안군(南安郡) 훤도현 사람이다. 젊었을 때

군리(郡吏)와 주(州)의 종사(從事)가 되었다.

초평 연간, 마등(馬騰)을 따라 모한반 강족(羌簇)과 저족을 공격하여

여러 차례 공을 세웠으므로 교위까지 승진했다.

건안 연간, 조 가 여양에서 원담과 원상을 토벌하였을 때, 원담은

곽원(郭援)?고간(高幹) 등을 보내 하동을 공격해 점거하였고, 조조는

종요로 하여금 관중(關中)의 여러 장수들을 통솔하게 하여 그들을 토벌했다.

방덕은 마등의 아들 마초(馬超)를 따라 평양에서 곽원과 고간을 방어했는데,

방덕이 선봉에 서서 곽원과 고간을 공격하여 그들을 크게 무찔렀으면,

직접 곽원의 머리를 베었다. 중랑장에 임명되고, 도정후(都亭侯)로 봉해졌다.

후에 황건군의 일당인 장백기(張白騎)가 홍농(弘農)에게 반란을 일으키자,

방덕은 또 마등을 따라 장백기를 토벌하러 갔는데, 두 효산 사이에서

그를 무찔렀다.

매번 전투 때마다 항상 선봉에 서서 적의 진영을 함락시켜 적군을

퇴각시켰으므로, 마등의 군중에서 가장 용맹스러웠다. 나중에 마등이 조정의

부름을 받아 위위(衛尉)로 임명되자, 방덕은 남아 마초에게 귀속되었다.

조조가 위남(渭南)에서 마초를 공격하자, 방덕은 마초를 따라 한양(漢陽)으로

달아나서 기성(冀城)을 지켰다. 후에 또 다시 마초를 따라 한중으로 달아나

장로(張魯)를 따랐다. 조조가 한중을 평정하자, 방덕은 사람들을 따라 투항했다.

조조는 평소 방덕의 용맹함과 위엄있는 무예를 들었으므로,

입의장군(立義將軍)으로 임명하고 관문정후(關門亭侯)에 봉했으며,

식읍을 3백 호 주었다.

후음(侯音)과 위개(衛開) 등이 완성을 점거하고 조조에게 모반하자,

방덕은 부하를 인솔해 조인과 함께 완성을 공격하여 후음과 위개를 참수했다.

남하하여 번성(樊城)에 주둔하여 관우를 토벌했다. 번현의 여러 장수들은

방덕의 당형(堂兄)이 한중에서 유비를 받들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방덕을 의심했다. 방덕이 항상 말하길,

"나는 나라의 은혜를 깊이 입었었으므로, 뜻을 세워 나라를 위해 죽겠소.

나는 몸소 병사를 이끌고 관우를 공격할 것이오. 올해 내가 관우를 죽이지

못하면, 그가 나를 죽일 것이오."

후에 친히 관우와 교전하였고, 화살로 관우의 이마를 맞추었다.

그 당시 방덕은 항상 백마를 탔으므로, 관우가 있는 번성의 군사들은 그를

백마장군(白馬將軍)이라고 부르며 모두 두려워했다. 조인은 방덕을 보내

번성 북쪽으로 10리 쯤 되는 곳에 주둔하도록 했는데, 마침 10여 일 간

비를 만나 한수가 범람하고, 번현의 물이 땅 위로 5,6척이나 올라왔으므로,

방덕은 여러 장수들과 물을 피해 제방으로 올라갔다. 관우가 배를 타고

그들을 공격하였는데, 큰 배의 사면에서 제방 위로 화살을 쏘았다.

방덕은 몸소 갑옷을 입고 활을 갖고 화살을 쏘았는데 빗나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장군 동형(童衡), 부곡장(部曲將) 동초(童超) 등이

투항하려하자, 방덕은 그들을 죽였다. 날이 밝을 무렵부터 해가 질 때까지

힘을 다해 싸웠지만, 관우는 더욱 급속도로 공격하였고, 화살을 모두

사용하자 짧은 병기로 싸웠다.

방덕은 독장(督將) 성하(成何)에게 말했다.

"내가 듣건대, 훌륭한 장수는 죽음을 두려워하여 구차하게 삶을

살려하지 않고, 열사는 절개를 훼손시켜 생존을 구하지 않는다고 하오.

오늘이 내가 죽는 날이오."

싸움은 더욱 격렬해졌고, 기세는 더욱 웅장해졌다. 물이 점점

불어났으므로 관리와 병사들은 모두 투항했다. 방덕은 휘하 장수 한 명,

오백(五伯) 두 명과 함께 작은 배를 타고 조인의 진영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물살이 급하여 배가 전복되고, 활과 화살이 모두 떨어지고 오직 배만

껴안고 물 위에 떠 있었으므로 관우에게 붙잡혔으나, 서 있을 뿐

무릎도 꿇지 않았다. 관우가 그에게 말했다.

"당신 형이 한중에 있으니, 나는 당신을 장수로 삼으려 했는데

무엇때문에 일찍 투항하지 않았소?"

방덕은 관우에게 심하게 욕하며 말했다.

"이놈, 무슨 투항을 말하는가! 위왕은 병사 백만을 거느리고 천하에

위엄을 떨치고 있다. 당신의 유비는 용렬한 인물에 불과한데,

어떻게 위왕과 필적할 수 있겠는가! 내가 어찌 국가의 귀신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적의 장수가 되겠는가."

마침내 관우에게 살해되었다. 조조는 이 소식을 듣고 매우 비통해하며

눈물을 흘리고, 그의 두 아들을 열후로 삼았다. 문제가 왕의 자리에

즉위한 후, 사자를 방덕의 묘로 보내 시호를 하사했는데,

책(策:왕의 조서)에 이렇게 말했다.

?? 옛날에 선진(先軫)이 머리를 잘리고, 춘추시대의 왕촉이 다리를

잘린 것은 몸을 훼손시켜 절개를 지킨 것으로 이전 조대에서는

그들을 찬미했다. 오직 그대만이 과감하고 강인함을 나타내고, 어려움에

직면하여 몸을 던져 공명을 성취했다. 명성은 그 당시에 가득 찼으며,

의로움은 옛날 사람보다 높으니, 과인은 그대를 안타까이 여겨,

시호를 장후(壯侯)라고 하노라.

또 방덕의 마등 방회(龐會) 등 네 명에게 관내후라는 작위를 주고, 식읍을

각 백 호씩 주었다. 방회의 용맹함과 강인함에는 부친의 풍모가 있었으며,

관직은 중위장군(中尉將軍)까지 으르렀고, 열후에 봉해졌다.





서황전(퍼왔습니다.)
도겸전(퍼왔습니다.)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sigi
연구소 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이메일 무단수집 거부  |  고객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