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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공하후패(2001-01-06 15:22:16, Hit : 2573, Vote : 269
 악진전(퍼왔습니다.)
[제 목] [魏/戰軍司馬/關羽] 正史 악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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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五胡大將 豹子頭 林沖 > --> 關雲長

조조의...후...(이거 쓰기두...) 오대장 중 악문겸의 일생기예여...

게임에서의 능력치로 평가하지마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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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진전(樂進傳)



악진은 자가 문겸(文謙)이고 양평군(陽平郡) 위국현(衛國縣) 사람이다.

키가 작고 몸이 왜소하지만, 담력으로 해서 조조를 따라다녀 막하(幕下)의

리(吏:기록계)가 되었다.

조조는 출신 군(郡)으로 돌아가 병사를 소집하도록 하였으나 천여 명만 얻었고,

돌아온 후, 군가사마(軍假司馬)?함진도위(陷陳都慰)를 역임했다. 그는 조조를

따라 복양에서는 여포를, 몽구에서는 장초(張超)를, 고(苦)에서는 교유의 공격에

참가했는데, 모두 먼저 올라가 전공을 세워 광창정후(廣昌亭侯)로 봉해졌다.

조조를 따라 안중(安衆)에서 장수(張繡)를 정벌하고, 합비에서 여포를 포위하여

공격하였는데 별장(別將)을 격파하였고, 사견(射犬)에서 쉬고를 공격하였고,

패(沛) 땅에서 유비를 공격하였는데, 이런 전투에서 모두 승리하였으므로

토구교위(討寇校尉)의 관직을 받았다. 황하를 건너 획가(獲嘉)를 공격하고,

또 군사를 돌려 조조를 따라가 관도(官度)에서 원소를 공격하여 용맹하게

싸웠으며, 원소의 대장 순우경을 죽였다. 조조를 따라 여양에서 원담과 원상을

공격하여 그들의 대장 엄경(嚴敬)을 죽이고 유계장군(遊繫將軍)을 대행했다.

또 따로 황권군(黃巾軍)을 공격하여 그들을 무찌르고, 악안군을 평정했다.

조조를 따라 업성을 포위하여 공격하였고, 업이 평정된 후 조조를 따라 남피로

가서 원담을 공격하였는데, 먼저 올라가 원담의 동문(東門)을 들어갔다.

원담이 패한 후, 또 옹권(雍權)을 공격하여 승리를 얻었다.

건안 11년(206)에 조조는 한 헌제(獻帝)에게 표(表)를 올려 악진과 우금?장료를

칭찬하였다.

?? 그들은 무예가 뛰어나고 계략이 치밀하여, 충의가 전일하고 절개와 의리를

지키며, 매번 적군을 공격할 때마다 공을 세우고 항상 병사들을 지휘하여

강성하고 견고한 적을 좌충우돌하며 싸웠습니다. 설사 견고하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으며 스스로 전쟁용 북을 가슴에 끌어안고 지칠 줄을 모릅니다. 또 그들을

보내 단독으로 병사를 인솔하여 정벌하게 하면, 군대를 지휘하여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안정되게 하고, 명령을 존중하여 받들고 군기를 어기지 않고,

적을 만나면 과단성있게 행동하는데 어떠한 실수도 없습니다. 그들의 공적을

논하여 기록하고 응당 각기 포상과 은총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금이 호위장군(虎威將軍)이 되었고, 악진은 절충장군(折衝將軍)이

되었으며 장료는 탕구장군이 되었다.

악진은 단독으로 병사를 인솔하여 고간(高幹)을 정벌하려고, 북도(北道)를 지나

상당(上黨)으로 들어가서 우회하여 적군의 배후에 나타났다. 고간 등 은 물러나

호관(壺關)을 지켰고, 악진은 연속적으로 나와 공격하여 적군을 괴멸시켰다.

고간은 굳게 지키며 항복하지 않으려 했지만, 조조가 친히 그를 정벌하러 가서

함락시켰다. 조조는 관승(菅承)을 정벌하고 순우(淳于)에 진을 치고,

악진과 이전을 보내 공격하도록 했다. 관승이 패하여 달아나 바닷길로 도망쳐

들어갔으므로 해안지대는 평정되었다. 형주는 아직 귀순하지 않았으므로 악진을

보내 양작(襄翟)에 주둔하도록 했다. 후에 조조를 따라 형주를 평정하고

양양(襄陽)에 남아 주둔하여 관우?유비 등을 공격하였는데, 모두 그들을 무찔러

달아나게 했다. 남군의 여러 군의 산과 계곡에 있는 소수 민족은 모두 악진에게로

가서 귀순을 했다. 또 유비, 임저현(臨沮縣)의 장(長) 두진(杜晋),

정양현(旌陽縣)의 우두머리 양대(梁大)를 토벌하여 모두 크게 무찔렀다.

후에 조조를 따라 손권을 정벌할 때는 악진에게 절을 갖게 했다. 조조가

귀한하였을 때, 악진을 남겨 장료?이전과 합비에서 주둔하여 지키도록 하고

식읍을 5백 호 증가시켜 이전 것과 합쳐 총 1천 2백 호가 되게 했다.

악진은 여러 번 전공을 세웠으므로 5백 호를 분할하여 한 아들을 열후로 봉했고,

악진을 우장군(右將軍)으로 승진시켰다.

건안 23년(218)에 세상을 떠났고, 시호를 위후(威侯)라고 했다.

아들 악침이 작위를 이었다. 악침은 과단성이 있고 강직하여 그의 부친의 풍모가

있었으며, 관직은 양주자사(楊州刺史)까지 이르렀다. 제갈탄(諸葛誕)이 모반하여

몰래 급습하여 악침을 살해하였는데, 황제는 조서를 내려 그를 애도하고 애석해

했으며, 위위(衛慰)로 추증하고 시호를 민후(愍侯)라고 했다.

아들 악조가 작위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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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조조가 이와 같은 위대한 무공을 세웠지만, 당시의 훌륭한 장수 중에서는

이 다섯 사람(장?악?우?장?서)가 가장 우수했다.

우금은 가장 강인하고 위엄이 있었지만, 그가 죽을 때까지 지킬 수 없었다.

장합은 변화에 교묘하게 대쳐하여 이름을 날렸고,

악진은 용감성과 과단성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간혹 설명이나 기록이 누락된 곳이 없어서 장료와 서황처럼 상세하게 갖추어지지

못했다.





소설 대삼국지 제 1부 <헌제의 등장.>
서황전(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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