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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공하후패(2001-02-07 23:55:43, Hit : 2574, Vote : 279
 <공명의 선택> 25장 사라져 가는 사람들
공명의 선택 (285)…제25장 사라져가는 사람들(1)


“돗자리를 짜던 놈이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유비가 한중왕에 올랐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조조의 일성(一聲)이었다. 불같이 노했다. 아니 입에 거품을 물고 흥분했다. 그랬다. 조조에게 있어서 유비의 한중왕 즉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재차 서천 정벌론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제 막 한중 쟁탈전에서 패배하고 돌아온 조조였다. 다시 군사를 동원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조조가 이것을 어찌 모를 것인가. 그래서 그는 더욱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러한 조조의 분한 마음을 깨끗이 씻어준 사람이 있었다. 승상부 주부 사마의였다.

“굳이 군사를 이끌고 멀리까지 가시지 않아도 유비를 물리칠 수 있는 계책이 있습니다.”

지난 번 조조의 한중 출병을 반대했던 사마의였다. 조조는 그런 그가 못마땅해 데려가지 않았다.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른 바 있는 조조는 반색을 하며 사마의에게 물었다.

“중달은 그 계책을 말해보라.”

“동오의 손권입니다. 지금 유비와 손권이 동맹을 맺었다고는 하지만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 같은 관계입니다. 마침 관우는 번성을 공략하기 위해 형주의 주력 부대를 양양성에 집결해놓고 있습니다. 손권에게 사신을 보내 그 뒤를 치게 하면 유비는 틀림없이 서천과 한중의 군사를 동원하여 형주를 구하러 올 것입니다. 그 틈을 타서 한 장수를 보내 한중과
서천을 공격하면 유비는 하루아침에 그 기반을 잃어버릴 게 틀림없습니다.”

유비가 들으면 기겁을 할 계책이겠으나, 조조로서는 입이 찢어질 만큼 기막힌 묘책이었다.

한번 마음을 정하면 즉각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조조의 장점 아니던가. 곧 강동으로 보낼 사자를 정하였다. 만총(滿寵)이었다.

/ 제25장 사라져가는 사람들 /

그 해 여름, 관우는 번성을 집요하게 공격하고 있었다.

―번성을 공격하시오.

공명으로부터 밀명을 받은 지 근 일 년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충실히 완수하였다.

조조는 한중 방어군 중 일부를 떼어내어 번성으로 급파하였다. 번성에 대한 경계 때문에 한중 수비에 전념할 수가 없었다. 끝내 조조는 양평관 밖으로 밀려났고, 유비는 한중을 평정하기에 이르렀다. 한중왕에 올랐다. 그러나 관우는 그 즉위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번성 싸움에서 손을 뗄 수가 없는 상황에 이르러 있었던 것이다.

이 때 번성의 수비대장은 조인(曹仁)이었다. 조조의 사촌동생이다. 어릴 적부터 조조를 따라 전쟁에 참가하기를 수백 번. 마침내 정남장군(征南將軍)의 지위에 이르렀다.

유비의 관우에 대한 신임이 대단하듯 조인에 대한 조조의 신임도 거의 절대적이었다. 그런 만큼 용병도 뛰어났지만 번성을 지키겠다는 결의 또한 가히 필사적이었다. 전세가 불리해지는 듯하자 재빨리 조조에게 구원을 청했고, 조조는 기다렸다는 듯이 10만 대병과 함께 맹장 우금(于禁), 방덕(龐德)을 원군으로 보내왔다.

관우로서는 유비의 한중 평정을 돕기 위한 양동작전의 일환으로 번성을 공격했었다. 그런데 조조 진영은 번성 싸움에 전력을 쏟고 있는 것이다. 발을 빼내고 싶어도 빼낼 수가 없게 되었다.

―여기서 손을 떼면 양양성마저 잃게 된다.

상황은 이렇게 흘러갔다.

또 한 가지 심리가 관우를 더욱 번성 공략에 집착하게 했다.

‘누가 감히 나의 용맹과 지모에 맞서겠는가.’

그의 나이 50대. 연륜과 관록이 절정을 이룰 무렵이었다. 천하 제일의 장수라는 자부심이 하늘까지 뻗치고 있던 때였다. 그럴 때 방덕이라는 장수가 관(棺)까지 등에 지고 달려와 관우를 자극했다.

―내가 죽지 않으면 관우의 시체를 넣을 관이요, 관우가 죽지 않으면 내 시체를 넣을 관이다.

번성 싸움에 임하는 방덕의 각오였다. 방덕은 본래 마초의 부하 장수였으나 조조의 한중 평정 때 그의 막하로 들어갔다. 이제 30대 초반의 젊은 장수였다.

그 말을 전해 들은 관우는 삼각수 아름다운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성난 소리로 외쳤다.

―천하의 영웅들도 내 이름을 들으면 두려워 떨지 않는 자가 없는데, 그 더벅머리 아이가 어찌 감히 나를 우습게 본단 말이냐?

한 싸움에서 관우의 30년 명성을 깨뜨려보겠다고 하는 방덕의 젊은 패기―. 그에 맞서 젊은 장수의 도전을 일거에 물리침으로써 천하 제일이라는 명성을 지키려 하는 관우의 드높은 자부심―.

싸움은 이상한 쪽으로 전개되었다.

결과는 일승일패.

첫 싸움은 방덕의 우세승이었다. 관우와 방덕의 일 대 일 대결에서였다. 두 장수는 양쪽 군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불꽃 튀는 싸움을 벌였다. 관우의 팔십 근 청룡언월도와 방덕의 장창이 어지럽게 뒤엉켰다. 50합이 넘으면서 방덕의 몸놀림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방덕은 안 되겠다는 듯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그 뒤를 관우가 쫓았다. 방덕은 달아나면서 활을 꺼내 관우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갑작스런 일이었다. 몸을 피하기엔 너무 늦었다. 관우는 재빨리 왼팔을 들어 화살을 막았다.

화살은 관우의 왼팔에 가서 꽂혔고, 관우는 말에서 떨어졌다. 방덕이 그런 관우를 향해 덮쳐왔다. 위기였다. 그 때 관우의 양아들 관평(關平)이 달려와 얼른 관우를 구해 진채 안으로 들어갔다.

“우하하하…… 보았느냐? 내가 관우를 물리쳤다!”

방덕은 하늘을 향해 웃음을 터뜨리며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진으로 돌아갔다. 진채로 돌아온 관우는 곧 행군의자(行軍醫者=군의관)를 불러 화살촉을 빼게 했다. 그러나 화살촉에는 오독(烏毒)이 발라져 있었고, 그 독이 뼛속까지 스며든 뒤였다. 상처 부위를 치료했지만 왼팔을 쓸 수가 없었다.

모두들 양양성으로 퇴각하자는 의견을 내었으나 관우는 버럭 성을 내며 그들을 물리쳤다.

고개를 돌려 의원에게 물었다.

“독을 제거할 방법이 없는가?”

의원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있긴 있습니다만, 장군께서 견디어내지 못할까 염려될 뿐입니다.”

관우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설마 아픔을 겁내 하겠는가. 내일모레면 내 나이 황천을 고향으로 여긴다는 60일세.

무엇이 두렵겠는가.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가만 말해보게.”

“그러시다면 좋습니다. 먼저 조용한 곳에 든든한 기둥을 세우고 고리를 기둥에 박은 후 장군의 팔을 고리에 끼어 밧줄로 묶어두십시오. 그러면 제가 날카로운 칼로 장군의 살을 찢어 뼛속에 스민 독을 긁어낼 것입니다. 그런 후 다시 살을 꿰매고 약을 발라야 독이 깨끗이 제거됩니다. 견디어내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관우는 한바탕 껄껄껄 웃어댔다.



공명의 선택 (286)…제25장 사라져가는 사람들(2)


“독을 긁어내는데 어찌 그런 요란스런 장치를 한단 말인가. 나는 상관없으니 이대로 긁어내 보게.”

관우는 시종에게 영을 내려 술상을 차려오게 했다. 서너 잔의 술을 마시고는 의원에게 왼팔을 내밀었다.

이 때의 관우의 모습을 역사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관우는 곧 팔을 펴고 의원에게 절개하도록 했다. 그 때 관우는 장수들을 불러 술상을 마주하고 있었다. 팔의 피가 흘러 떨어져 그릇에 가득했지만, 관우는 구운 고기를 자르고 술을 마시며 평상시처럼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대단한 인내심이요 극기가 아닐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을 높이고 지키려는 자부심의 극치가 아닐까. 팔의 상처가 거의 아물어가자 관우는 다시 방덕과의 제2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비가 연일 내리고 있었다. 가을비였다. 장마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양양 지방은 매년 가을이면 양강(襄江)이 범람하여 물난리를 치르곤 했다. 오랫동안 양양에서 살아온 관우가 그것을 모를 리 없다.

관우는 높은 언덕에 올라 방덕·우금의 진채를 내려다보았다. 방덕은 번성에서 북쪽으로 10리쯤 되는 산골짜기에 진채를 세워두고 있었다. 그 곁으로 계곡물이 빠른 물살을 이루며 흘러내리고 있는 게 보였다.

번성 주위로도 역시 한수의 지류인 양강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아직 범람의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우금과 방덕이 산골짜기에다 진채를 내린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었다. 그들은 이 곳의 기후를 전혀 모르고 있음이 분명했다.

―수전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를 바라보며 관우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배와 뗏목을 준비하도록!”

관우의 예측은 맞았다. 며칠 후,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양양 지방 특유의 가을 홍수가 시작된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양강이 넘쳐 평원지대를 뒤덮었다.

골짜기 아래편에 진을 치고 있던 우금과 방덕은 잠자는 중에 땅이 뒤집히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골짜기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소리였다. 산사태까지 일었다. 군막 밖으로 뛰어나와보니 진채는 간 곳이 없고 사방은 온통 물바다였다. 어제 저녁때까지만 해도 평지였던 곳이 한길이 넘는 강이 되어 있었다.

“높은 지대로 올라가라!”

조조 군은 급한 대로 언덕이나 산 위로 올라갔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저 멀리로 배들이 새카맣게 몰려오고 있었다.

“적병이다!”

그랬다. 그것은 관우가 이끄는 전함이었다. 그는 홍수가 일기 전 수백 척의 배과 뗏목을 준비해 우금과 방덕이 고지대로 피신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홍수에 대한 방비가 전혀 없었던 조조 군은 범람한 물을 사이에 두고 서로 떨어져 고립되어 있었다.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가 없었고, 도망가려 해도 도망갈 곳이 없었다. 우금이 먼저 항복했다. 그 부하 군사들도 병장기를 버리고 순순히 관우의 배에 올랐다. 싸움이라기보다는 수재민 구호 작전 같았다.

관우는 방덕을 찾아나섰다. 그 때 방덕은 5백 군사를 거느리고 역시 물난리를 피해 작은 언덕 위에 몰려 있었다. 관우가 탄 배를 보자 활을 일제히 쏘게 했다. 항복할 마음이 전혀 없는 듯했다.

관우는 배를 타고 주변을 돌며 화살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하루 낮 하루 밤이 지났다.

마침내 방덕은 화살이 떨어졌다. 이제 더 이상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부장 동형(董衡)과 동초(董超)가 항복하려 하자 칼을 뽑아 그들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러고는 마침 강물을 따라 내려오는 빈 배에 올라타 조인이 있는 번성으로 탈출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물살이 급했고, 노젓는 솜씨가 미숙했다. 배가 뒤집혔다. 겨우 뱃전에 매달려 떠내려가고 있는데 관우의 배가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끝내 방덕은 관우에게 사로잡혔다. 뭍으로 올라섰다. 방덕은 무릎 꿇기를 거부했다.

“무릎을 꿇고 사느니, 서서 네 칼을 받겠다.”

방덕은 조금도 위축됨 없이 외쳤다. 관우는 그 기개를 가상하게 여겼다. 죽이기가 아까웠다.

조용히 물었다.

“너는 본시 마초의 부하가 아니었더냐? 그 마초도 지금 한중왕의 장수가 되어 있다. 너는 항복할 마음이 없느냐?”

그러자 방덕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 후 대답했다.

“유비는 용렬한 자이다. 내 나라의 귀신이 될지언정 적의 장수는 되지 않으리라!”

이쯤 되면 관우도 어쩔 수 없었다. 군사들에게 명해 목을 베게 했다. 또 한 사람의 맹장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공명의 선택 (287)…제25장 사라져가는 사람들(3)


이제 관우의 최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때가 온 것 같다.

관우가 우금을 사로잡고 방덕을 목 벴다는 소문은 중원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갔다.

―관운장과 맞서서는 안 된다!

조조는 경악했다. 두려움에 떨었다. 도읍을 옮길 생각까지 품었다. 사마의가 그런 조조를 안심시켰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아마도 지금쯤 우리 측의 사자(使者) 만총이 동오의 손권을 만나고 있을 것입니다. 조만간에 동오 군이 형주의 배후를 공격할 게 틀림없습니다.”

그제야 조조는 얼굴빛을 고치며 서황을 불러 명했다.

“군사 5만을 거느리고 양릉파(陽陵坡)로 내려가라.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동오 군이 형주를 공격하거든 관우와 싸우러 나가라. 그 전까지는 절대로 군사를 내어서는 안 된다.”

아울러 부장 여건(呂虔)을 서황에게 딸려보내 그를 돕게 했다.

조조가 이런 물밑 작업을 나누고 있는 동안, 사마의의 말대로 만총은 건업에 도착하여 손권과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오와 위나라는 본래 원수진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공명이란 자의 계교에 휘말려 이처럼 사이가 벌어졌습니다. 이제 우리 위왕께서는 동오와 동맹 맺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형주의 뒤를 치십시오. 위왕께서는 서천으로 군사를 내실 것입니다. 유비를 쳐부순 뒤 그 땅을 나누어가지면 좋지 않겠습니까?

만총은 말재간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손권의 가려운 곳만 긁어댔다. 손권으로서는 만총의 말이 모두 옳게 들렸다. 더욱이 그의 구미를 끈 것은 형주라는 땅이었다.

그러나 손권도 한 지역을 통치하고 있는 패자(覇者)였다. 한순간의 이득을 위해 선뜻 동맹국을 들이칠 만큼 가벼운 인물은 아니었다. 그랬다가는 만천하에 조롱을 받기 십상이다. 명분을 만들어야 했다.

―알겠소. 신중히 검토해보겠소.

만총에게는 이렇게 대답하여 돌려보내놓고 비밀리에 제갈근을 불렀다.

“관운장의 딸을 내 며느리로 삼고 싶은데, 그대가 매파 역할을 해주어야겠소.”

관우에게는 열다섯 살 난 딸이 있었다. 손권의 아들은 열 살이었다. 이 두 아이를 결혼시키자는 것이었다. 뚱딴지 같은 제안일 수도 있겠으나, 손권으로서는 이중 삼중으로 장치해놓은 교묘한 함정을 파고 있음이었다.

―관우가 청혼을 받아들이면 인질이 생기는 것이고, 거절하면 동맹을 깰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제갈근은 과연 이러한 손권의 속마음을 알아챘을까. 그는 곧 양양성으로 향했다. 그 무렵, 관우는 우금을 사로잡고 방덕을 목 벤 바로 직후였다. 그 자부심이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저희 주공께서 장군의 딸을 며느리로 삼고 싶어하십니다.”

제갈근의 말에 관우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화를 내었다.

“무슨 말을 하는 게요? 범의 딸을 어찌 개의 아들에게 시집보낼 수 있으리요! 그대의 아우가 우리 형님의 군사(軍師)가 아니었던들 그대의 목은 온전히 붙어 있지 못했을 것이오. 썩 물러가시오!”

제갈근은 쫓기듯 머리를 싸매쥐고 건업으로 돌아왔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이로써 손권의 마음은 결정되었다. 그의 입가로 싸늘한 웃음이 스쳐갔다. 대도독 여몽을 불렀다.

“관우의 말에 따르면 그대는 개의 졸개이구려.”

여몽은 손권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여몽은 동오 진영에서 주유의 대를 물린 전형적인 반유비파였던 것이다.



공명의 선택 (288)…제25장 사라져가는 사람들(4)


그 무렵, 공명은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궁궐도 짓고 관부와 역관을 마련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조조의 침공에 대비하여 군량과 마초도 확보해 두어야 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일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익 집단이라 할 수 있는 수운업자들의 운조(運漕)와는 별도로 또 하나의 정보 수집망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우정(郵亭)’이었다.

우정은 요즘으로 치면 우체국이었다. 하는 일은 나라 안의 소식을 서로간에 빠르고 손쉽게 연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난 역할일 뿐, 실제 중요한 임무는 나라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피고 분석하는 정보수집망이었다. 공식적인 국가 기관이다.

지금의 비밀정보부라고나 할까. 운조의 조직을 보고 착안했다. 우정 설치의 책임자로 황풍을 임명했다. 황풍은 그 일을 잘 해냈다.

우선 성도에서 백수관까지 4백여 곳에 우정의 조직망을 설치했다. 그 밖에 요해처마다 우정 지부를 설치하고 각 지역의 정보를 수집한 후 비밀 연락망을 통해 성도의 공명에게로 보고하게 되어 있다.

―조조의 밀사가 동오의 손권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 우정 조직을 통해 이러한 보고가 전해졌다.

공명의 서재 한구석에 그림자 하나가 그림처럼 서 있었다. 황풍이었다. 우정의 초대 정장(亭長)이었다.

―업성의 서황이 양릉파로 이동하고, 건업의 여몽이 육구로 군사들을 이동시키고 있습니다. 공명은 눈살을 찌푸렸다.

‘조조와 손권이 밀계를 꾸미고 있다.’ 불길한 예감이 스쳐갔다.

―형주를 노리고 있다. 그것만이라면 불길하다고 할 수가 없다. 얼마든지 대책을 강구할 수가 있다.

―최종 목표는 한중이다. 한중 탈환을 위한 조조의 교묘한 외교 술책이 분명했다. 가장 최악에 해당하는 경우였다.

형주를 돕기 위해 유비가 서촉의 군사를 이동시키면 조조는 그 공백을 이용해 한중을 공략하려는 속셈이 틀림없었다.

“대안이 있소?”

공명의 보고를 받은 유비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공안과 강릉의 방비를 튼튼히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관운장은 번성을 공략하는 척하다가 여몽의 움직임이 수상쩍을 때는 언제든지 강릉으로 돌아가야 하겠지요.”

“서천의 군대를 형주로 파견하는 것은 어떻소?”

관우를 염려하는 유비의 마음이 다분히 담긴 말이었다. 그러나 공명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은 조조가 노리고 있는 수입니다. 말려드는 것입니다. 상용에 있는 맹달과 유봉을 이 동시킬 수는 있겠으나, 시일도 많이 걸릴 뿐더러 역시 모험수입니다.”

“그렇다면 관우에게 하루속히 공안과 강릉의 방비를 굳건히 하라는 전갈을 보내시오.”

“알겠습니다.”

“관운장이 잘 해내겠지요?”

유비는 불안한 눈빛으로 확인하려 들었다.

“관운장은 신장(神將)과도 같은 장수입니다. 잘 해내실 것입니다.”

공명은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관우는 형주의 총독이었다. 외교권을 제외한 모든 인사·행정·사법적 권한이 그의 손에 있었다. 군사상의 작전권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그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도 있었다.

―공안과 강릉의 방비를 튼튼히 하시오.

공명에게서 이런 지시가 내려왔을 때, 관우는 이미 공안(公安)에는 부사인(傅士仁), 강릉에는 미방을 배치하여 후방을 굳건히 방비하고 있었다.

‘공명이 나를 너무 낮게 보는군.’

관우가 이런 생각을 품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는 공안과 강릉의 방비뿐 아니라 그 곳에서부터 양양성까지 30리마다 봉화대를 설치하여 언제 있을지 모를 동오 군의 침공에 대비하고 있었다.

동오의 대도독 여몽이 반유비파라는 것쯤은 관우도 알고 있었다. 그가 노숙의 후계자로 지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관우는 이미 동오 군의 침공을 철저히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명의 선택 (289)…제25장 사라져가는 사람들(5)


여몽은 전형적인 무골(武骨)이었다. 자는 자명(子明), 여남 태생이었다. 소년 시절에는 가난했고 일자무식이었다.

그러나 두뇌는 매우 뛰어났던 모양이었다. 손권에게 출사하면서부터 독학으로 학문을 익히기 시작했다. 진도가 대단히 빨랐다.

―여몽은 무략(武略)만 지니고 있는 줄 알았더니 학문도 만만치가 않구려.

보는 사람들마다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관우의 뒤를 치시오.

손권으로부터 이런 밀명을 받은 여몽은, 그러나, 육구에서 더 이상 군대를 진격시킬 수가 없었다. 관우의 방비가 워낙 철저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한 계책을 생각해내었다.

“몸이 아파 도독의 직책을 수행하지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핑계하고 사임서를 제출했다. 실제로 그는 폐 쪽에 병을 앓았다. 아마도 폐결핵인 듯했다. 처음에 손권은 당황했다. 그 때 손권의 조카사위이자 지략이 뛰어난 청년 장수 육손(陸遜)이 귀띔해주었다.

“여몽 장군의 병은 관우를 안심시키기 위한 계책일 뿐입니다.”

관우는 지나친 자부심 때문에 다른 사람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짙었다. 더욱이 방덕을 목 벤 후에는 더욱 마음이 교만해져 있었다. 그가 경계하는 것은 동오의 여몽이었다.

그런데 여몽이 병으로 인해 도독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면 관우는 후방의 경계를 늦출 것이 분명하다.

“그 때를 이용하여 일거에 공격해 들어가면 형주를 쉽게 점령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비로소 손권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여몽의 사임을 수락하고 후계자를 선정했다.

“육손을 편장군 우도독에 임명하니 여몽의 뒤를 이어 대도독의 임무를 수행하라.”

육손은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무명 장수였다. 나이도 여몽보다 열 살이나 더 젊었다. 손권과 여몽이 노린 것도 바로 이 점이었다.

그러나 육손은 주유 못지않은 강동의 지략가였다. 그는 육구에 부임하자마자 나름대로 관우 에게 또 하나의 미끼를 던졌다.

우금을 사로잡고 방덕을 목 벤 관공의 용맹과 지략은 세상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옛날 진문공(晉文公)이 다시 태어난다 한들 어찌 관공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나는 한낱 서생으로 행동이 더디며 재능이 얕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대한 임무를 맡아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오로지 관공의 도움을 받아 향후의 일을 처리할까 합니다…….

자신을 낮추고 관우를 한껏 부추기는 부임 인사편지였다. 관우는 이 편지를 받자마자 생각 해볼 것도 없다는 듯 소감을 밝혔다.

“손권의 안목이 짧고 얇아 이 같은 어린아이를 장수로 삼았구나!”

여몽의 계책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과연 관우는 형주 후방의 경계를 완전히 늦추었다.

그 무렵, 그는 여전히 번성의 조인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군량과 군사가 부족했다. 그 때마다 강릉과 공안의 군사와 군량을 번성 전투에 투입하라는 명을 내렸다.

―후방을 습격당할 염려는 없다.

결국 대다수의 후방 군사들이 양양으로 이동해갔다. 강릉과 공안은 텅 빈 상태가 되었다.

여몽이 기다리던 때가 왔다. 그는 즉시 대도독의 자리로 복귀한 후 군사 3만에 전함 80척을 동원하여 장강을 따라 서쪽으로 진격했다. 빠르면서도 은밀한 이동이었다.

모든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먼저 특공대가 상륙하여 양양성으로 이어지는 봉화대를 눈 깜짝할 사이에 점령했다. 그런 후 강릉성을 포위했다. 새카맣게 몰려드는 동오 군의 침공 에 미방은 싸울 뜻을 잃었다.

무엇보다도 군사가 부족했다. 성문을 열고 깨끗이 항복했다. 강릉성에 무혈입성한 여몽은 즉시 육손을 시켜 공안을 공격하게 했다. 강릉성이 떨어진 것을 안 부사인 역시 두말없이 두손을 들었다.

공명이 피땀 흘려 손에 넣었던 두 성이었다. 그러나 잃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허망할 정도였다.



공명의 선택 (290)…제25장 사라져가는 사람들(6)


관우는 번성에서 선전(善戰)하고 있었다. 조인을 곤경에 빠뜨린 채 번성 함락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할 때 날벼락과도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강릉이 여몽에게 함락되었습니다.

―공안의 부사인도 항복하였답니다.

관우는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여몽은 병에 걸려 건업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강릉에서 도망쳐온 군사의 뒤이은 보고에 관우는 비로소 자신이 무서운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때는 너무 늦었다. 이미 형주는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퇴로를 차단당했다.

설상가상으로 번성에 조조의 구원군이 당도했다. 양릉파에 머물러 있던 서황의 군사들이었다. 번성의 사기는 올랐고, 반대로 관우의 군사들은 절망에 빠졌다. 이제는 어떻게 이 곳을 탈출하여 서천까지 무사히 도망칠 수 있는가가 관건이었다.

“일단 당양의 맥성(麥城)으로 후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양아들 관평이 제안했다. 맥성은 당양현 서쪽에 자리잡은 작은 성이었다. 서북의 상용(上庸) 땅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목이었다. 상용에는 지금 유봉과 맹달이 수비대장으로 주둔하고 있다. 맥성으로 입성하여 서북 지역으로 탈출하든지, 아니면 그들에게 구원병을 요청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자는 관평의 의견이었다.

관우는 즉시 번성의 포위를 풀고 맥성을 향해 달려갔다. 도중에 서황의 군대를 만나 크게 패했다. 수많은 군사를 잃었다. 맥성에 들어갔을 때에는 불과 수백 명의 군사들만이 뒤따르고 있었다.

강릉성 탈환을 목표로 했던 관우였다. 그러나 그 곳은 싸우기에 부적합한 성이었다. 서북으로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것마저 여의치 않게 되었다. 재빨리 추격해온 여몽의 군사들에 의해 맥성이 겹겹이 포위된 것이었다. 이제 유일한 희망은 외부로부터의 구원군이었다.

“제가 상용으로 가서 구원병을 요청하겠습니다.”

요화(寥化)였다. 그는 겨우 동오 군의 포위망을 뚫고 상용에 도착했다. 관우의 급박한 처지를 알렸다. 그런데 유봉과 맹달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우리의 임무는 이 곳 상용을 수비하는 일이오. 우리가 이 곳을 비우면 조조 군이 단번에 이 곳으로 쳐들어올 것이란 말이오.

그러고는 끝내 구원군을 보내지 않았다.

맥성에 의지해 구원군만 기다리고 있던 관우는 여러 날이 지나도록 요화가 돌아오지 않자 일이 여의치 않음을 직감했다.

“앉아서 죽을 수는 없다. 탈출이다!”

결연히 선언하고 산악지대로 이어지는 북문을 열고 돌격해나가기 시작했다. 관우가 앞장서고 관평이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여몽은 이미 관우가 산악지대로 탈출을 시도할 것임을 예상하고 있었다. 산길 좌우로 수많은 복병을 숨겨두었다.

관우가 장향(  鄕)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양 편이 모두 험한 산이었다. 억새와 풀 넝쿨 등이 빽빽이 들어찬 잡목림이었다.

“복병을 조심하십시오.”

관평이 염려했다.

“쥐새-끼 같은 무리가 숨어 있다 한들 두려울 게 무엇이 있단 말이냐?”

관우는 이렇게 외치며 대로를 달리듯 거침 없이 달렸다.

그 때였다. 좌우에서 함성이 일어나며 양 편 산기슭에서 동오 군이 쏟아져나왔다. 손에는 창칼 대신에 갈고리창과 올가미 밧줄이 쥐어져 있었다.

“이놈들!”

관우가 소리치며 달려나갈 때에 풀숲에서 갈고리창 하나가 관우의 말 다리를 낚아챘다. 관우는 말과 함께 땅바닥에 고꾸라졌다. 간발의 틈을 주지 않고 수십 개의 올가미 밧줄이 날아들었다. 그가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섰을 때에는 그의 몸은 이미 밧줄로 꽁꽁 묶인 채였다. 그의 양아들 관평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그 길로 관우는 손권 앞으로 끌려갔다. 관우는 고개를 똑바로 쳐들고 손권 앞에 섰다. 그런 관우를 향해 손권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나를 도와 천하 대업을 이루어봄이 어떠하시오?”

그러자 관우의 삼각수 아름다운 수염이 부르르 떨렸다.

“푸른 눈의 어린아이야. 내 일찍이 유황숙과 의(義)를 맺고 어지러운 한왕실을 일으키리라 맹세했었다. 이제 내가 간계에 빠져 사로잡혔다고는 하나 어찌 쥐새-끼 같은 무리에게 고개를 숙일 수가 있을 것인가. 나에게는 다만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그러한 관우의 기상은 한겨울날 아침의 푸른 대나무 같았다.

손권은 분노를 터뜨리는 대신 감탄과 존경의 눈길을 보냈다. 좌우의 부하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관우를 살려주어 그로 하여금 조조를 견제케 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그러자 여몽이 얼굴빛을 바꾸며 간했다.

“관우는 호랑이입니다. 살려두면 훗날 해가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조조 역시 관우와 맞서기를 꺼릴 것입니다. 조조는 관우를 제거하기보다는 도성을 옮길 것을 먼저 생각할 것입니다. 그를 살려두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이에 손권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대 말이 옳소. 후환이나 남기지 않는 수밖에.”

그러고는 부하를 시켜 관우의 목을 베게 했다.

관우의 목이 땅에 떨어지자 하늘의 해가 빛을 잃었고, 땅이 흔들리며 울음소리를 내었다. 이 때 관우의 나이 58세. 건안 24년(219년) 10월의 일이었다.

공명의 선택 (291)…제25장 사라져가는 사람들(7)


“관우가 죽었습니다.”

열흘이 채 안 돼 공명은 황풍으로부터 관우의 죽음 소식을 보고받았다.
‘우정’의 정보망은 빨랐다. 그리고 정확했다. 그러나 이 때만큼은 공명도 그 정보의 정확성을 의심했다.

“그럴 리가 있는가? 다시 자세히 알아보도록.”

“틀림없습니다. 손권의 아장 마충(馬忠)이란 자에게 붙잡혀 임저(臨沮)에서 참수되었습니다. 그의 아들 관평도 함께 죽었습니다.”

“다시 알아보라니까.”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으려 함이었던가. 전에 없이 신경질적이었다. 그러나 황풍은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계속 자신의 할 말을 이어나갔다.

“목은 즉각 조조에게로 보내졌습니다.”

조조와의 동맹 선물인 듯합니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자신의 판단을 말하지 않았다. 오로지 조사된 사항만을 보고했다. 오랫동안 공명의 조력자로서 일해온 황풍 나름대로의 습관이었다. 그것은 공명이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대는 있는 사실만 말하라. 판단은 내가 한다.

이런 무언의 약속은 공명의 출사 이후 줄곧 지켜져왔다.

“조조는 관우의 목을 보고…….”

“그만!”

공명은 버럭 외치며 방을 나가버렸다. 그런 그의 눈에는 굵은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황풍은 방 안에 혼자 남아 공명에게이듯 텅 빈 공간을 향해 나머지 사항을 마저 보고하였다.

“슬피 통곡하였다고 합니다.”

―관운장께서 우금을 사로잡고 방덕의 목을 베었답니다.

―번성 함락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연이은 낭보에 한중왕 유비는 몹시 기분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유비는 공연히 몸이 뒤틀리고 살이 떨려 견딜 수가 없었다. 앉아도 서도 마음이 불안했다. 밤이 깊었는데도 잠이 전혀 오지 않았다.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데 별안간 한줄기 차가운 바람이 불며 촛불이 깜박거렸다. 유비가 놀라 고개를 돌려 보니 어둠 속 한가운데 어떤 사람이 서 있었다.

―너는 누구냐? 무슨 까닭으로 이 깊은 밤중에 남의 내실에까지 들어왔느냐?

어둠 속의 사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유비는 의자에서 일어나 사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어둠 속의 사내는 다름 아닌 관우가 아닌가. 유비는 반가움을 이기지 못했다.

―운장이 언제 여길 왔느냐?

손을 내밀어 관우의 손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관우는 여전히 입을 다문 채 유비의 손을 피했다. 유비가 괴이쩍게 여겨 다시 물었다.

―네가 나를 왜 피하느냐?

그러자 비로소 관우는 눈에서 눈물을 뚝뚝 떨구며 애절하게 말했다.

―형님, 원통하게 죽은 이 아우의 한을 풀어주십시오.

순간 음산한 바람이 다시 일면서 관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유비가 놀라서 깨어보니 꿈이었다. 온몸에 진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시 살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직 삼경이 되지 않은 때였다.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시종을 불러 명했다.

“군사를 모셔오너라!”

그 시각, 공명 역시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

‘어찌할까?’

유비에게 보고할 자신이 없었다. 관우의 죽음을 어찌 자신의 입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그 때 유비로부터 부름이 있다는 전갈을 받았다. 급히 유비의 처소로 달려갔다.

유비가 초췌한 얼굴로 방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유비는 공명에게 꿈 이야기부터 들려주었다.

“아무래도 운장에게 무슨 변괴가 생긴 게 틀림없소. 무슨 소식을 듣지 못했소?”

유비의 물음에 공명은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꿈은 꿈일 뿐입니다. 날이 밝은 뒤에 사람을 형주로 보내 관운장의 소식을 알아보게 하겠습니다.”

공명은 도저히 관우가 죽었습니다,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때였다. 시종이 급한 발걸음으로 들어와 알렸다.

“형주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유비는 급했다.

“어서 들라 해라.”

요화였다. 그는 구원을 요청하러 상용으로 갔다가 맹달과 유봉으로부터 거절당하자 곧장 성도로 향했다. 그런데 오는 도중 관우가 사로잡혀 끝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유비를 보자마자 엎어지듯 바닥에 엎드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관운장 부자께서 맥성을 탈출하다가 동오 군에 사로잡혀 참수를 당했다 합니다.”

요화의 말을 들은 유비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얼굴에 아무런 변화도 일지 않았다. 천천히 공명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입술이 조금씩 달싹거렸다.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소리가 너무 작아 공명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유비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겨우 말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운장이…… 죽었다 하오. 운장이…… 죽었다 하오…….”

“주공!”

심상치 않은 기색을 눈치채고 공명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유비는 이미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 뒤였다.
새로운 소식들이 계속해서 공명에게 날아들었다. 그것은 변화를 의미하는 것들이기도 했다.

―동오의 여몽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이 42세. 폐 쪽에 병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로 깊었던 것일까. 육손이 여몽의 뒤를 이어 대도독의 자리에 올랐다.
동오 진영에서 또 한 사람이 죽었다. 손교(孫皎)였다. 손권의 사촌동생이기도 했다. 관우 토벌 작전 때 정로장군으로서 우도독의 임무를 수행했다. 나이는 30대 초반. 아무런 병도 없는 건강한 몸이었다. 그런데 급사한 것이다.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관운장의 저주가 내렸다!

이러한 소문을 증명하듯 또 하나의 커다란 별이 떨어졌다.

공명의 선택 (292)…제25장 사라져가는 사람들(8)


조조 죽음―.

난세의 간웅이라 일컬어지던 당대 제일의 실력자 조조가 그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관우가 죽은 다음 해인 건안 25년(220년) 정월의 일이었다. 이 때 그의 나이 66세. 원인은 병사였으나 죽기 직전 정신착란 증세를 보였다는 설도 있다.

조조의 죽음은 그 해 전반기의 가장 큰 사건이었다. 그의 아들 조비(曹丕)가 조조의 뒤를 이어 위왕의 자리에 올랐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 해 10월, 또 하나의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조비, 황제에 오르다.

조조의 죽음을 계기로 천하 정세에 대변화가 일어나리라는 것은 누구나가 예상했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황제가 무엇인가. 천하의 주인이다. 단 한 사람밖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조비가 그러한 황제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이제 한(漢)은 없다.

조비의 황제 즉위는 새로운 제국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국호는 위(魏)―.

헌제(獻帝)는 한왕조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헌제는 죽은 뒤에 붙인 칭호이다. 시호라고 한다. ‘황제를 헌납했다’라는 뜻에서 ‘헌제’라는 시호를 붙였다. 그의 살아 생전 이름은 유협(劉協). 조비는 그를 죽이지는 않았다. 하내군(河內郡) 산양현(山陽縣)으로 내려가 살게 했다. 작위를 공(公)으로 낮춰 산양공(山陽公)이라고 불렀다.

천자의 자리에서 물러난 산양공은 황제로의 복귀를 노리지 않았다. 조비가 대어주는 재산으로 남은 생을 편안히 살았다.

그러나 한왕조의 멸망을 강력하게 부정하는 사람이 있었다. 유비였다. 그리고 그러한 유비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 공명이었다.

―우리 주공이야말로 한왕조의 정통 후계자다.

어쩌면 그는 조비의 황제 즉위를 내심 바라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래야 자신의 다음 행보가 한결 수월해질 것이 아닌가.

그는 황풍을 불러 중얼거리듯 물었다.

“조비가 산양공을 살해했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소?”

“……?”

황풍으로서는 금시초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얼른 대답하지 않았다. 공명은 결코 자신이 아는 정보를 먼저 얘기하는 법이 없었다. 알아도 늘 모르는 척 묻곤 했었다.

그런데 이 날은 달랐다. 구체적으로 사람 이름까지 거론하며 소문의 진위 여부를 묻고 있는 것이었다. 그 때 공명이 또 말했다.

“조비라면 능히 그럴 만한 인물이지. 그대는 아직 그러한 소문을 듣지 못했단 말이오?”

순간 황풍은 비로소 공명이 말하는 바를 알아들었다. 얼굴이 다소 붉어졌다.

“송구합니다. 곧 조사하여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성도를 중심으로 서천 일대에 이상한 소문이 퍼졌다.

―조비가 전 황제를 독살했다.

삽시간에 성도성 안은 시끌시끌했다. 가는 곳마다 조비와 산양공에 관한
얘기뿐이었다.

유비도 그 소문을 들었다. 즉시 공명을 불러 물었다.

“사실이오?”

“만 리 밖의 일이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지금까지 황풍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으음…….”

유비는 신음을 토했다. 침통한 표정으로 변해갔다. 눈에 다시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런 유비를 향해 공명이 말했다.

“주공만이 한왕조를 이을 수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중에서도 유비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공명의 선택 (293)…제25장 사라져가는 사람들(9)


서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처음에는 관우의 죽음과 관계되는 것들이었다.

맨 처음 상용을 지키고 있던 맹달이 그 곳을 탈출하여 조비에게로 투항했다. 관우에게 구원군을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한 문책이 두려워서였다. 그러고는 서황과 더불어 군사를 이끌고 상용으로 쳐들어갔다.

상용의 수비대장 유봉은 그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성도로 도망쳐왔다. 유비는 유봉을 보자 관우의 죽음이 떠올랐다. 분노가 치솟아올랐다.

―너는 어찌하여 관운장에게 구원군을 보내지 않았느냐?

―맹달이…….

유비는 유봉의 변명을 듣지 않았다.

―당장 저 자를 끌어내어 목을 베라!

유봉이 누구인가. 유비의 양자이다. 양자도 아들이라면 당연히 나서서 말려야 했다. 말리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그러나 분노하는 유비의 모습을 바라보며 공명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공명만이 아니었다. 모든 막료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시선이 가 닿은 곳에 한 소년이 서 있었다. 유비의 친아들 유선이었다. 그의 나이 이제 불과 15세. 유독 연약했다.

‘저 아이를 위해서라도…….’

유봉은 끝내 참수당했다.

또 한 가지 사건이 벌어졌다. 팽양이 모반을 꾀한 것이었다. 팽양은 이인 흉내를 내어 방통을 통해 유비에게 출사한 유장의 전 막료였다. 어느 날 마초와 술을 마시던 중 그가 말했다.

―나의 지략과 그대의 용맹을 합친다면 천하는 우리 손에 들어올 것이 분명합니다. 뜻이 있으시오?

취중 대화라고는 하지만 마초는 뒤가 시원하질 않았다. 그 길로 유비를 찾아가 팽양의 일을 보고했다. 유비는 크게 노하여 군사를 보내 팽양을 체포하는 한편 그의 집을 수색했다. 조비에게 투항한 맹달의 편지가 수십 통 나왔다.

유비는 공명을 불러 팽양의 일을 물었다.

―팽양이 모반할 뜻을 품은 게 확실하오. 어찌 처리하면 좋겠소?

공명이 대답했다.

―팽양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오래 두면 반드시 화가 생길 것입니다.

결국 팽양도 참수되었다.

유비의 측근 중 또 한 사람이 사라져갔다. 법정이 죽은 것이다. 병사(病死)였다. 법정의 죽음에 대해 유비는 크게 슬퍼했다. 관우의 죽음에 이은 또 한 번의 상심이었다. 며칠간 애도하며 눈물을 흘렸다.

법정의 죽음은 공명에게도 큰 슬픔이요, 타격이었다.

‘그가 없었더라면…….’

유비의 서천 평정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유황숙의 성도 입성은 또 하나의 현실 변화일 뿐입니다.

옛 주인인 유장을 물리치고 난 직후의 법정의 소감이었다. 이렇듯 그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공명과는 분명히 다른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공명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었다.

유비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었다.

때로 감상적일 때도 있었다.

―제갈 군사께서는 행복하신 분입니다.

공명의 꿈을 부러워했었다.

서서, 방통에 버금가는 우정을 나누기도 했다. 취향과 기호는 달랐지만, 유비를 위하고 촉한의 장래를 염려하는 마음은 언제나 같았다. 나이 45세.

‘아깝다!’

법정을 묻어주고 돌아온 다음 날, 공명은 서재에서 하루 종일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공명의 선택 (294)…제25장 사라져가는 사람들(10)


우울한 날의 연속이었다. 유비도 침체되었고, 공명도 가라앉아갔다. 분위기를 바꾸어줄 필요가 있었다.

‘더 늦어지면 곤란하다.’

공명은 그 동안 추진해오던 일을 마무리지으리라 결심했다. 태부 허정 등의 막료들과 함께 유비를 찾아가 아뢰었다.

“한나라의 백성들을 이대로 내팽개쳐두실 작정이십니까?”

“무슨 뜻이오?”

“조비는 한의 제위를 찬탈했습니다. 천자도 살해했습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은 조비의 행위를 인정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한왕실의 후예이신 한중왕께서 대위에 올라 종사를 잇는 것이 마땅하며, 그것만이 조비를 토벌할 수 있는 길입니다.”

“나보고 황제의 위에 오르라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그대들은 대담하군.”

“전하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한왕실과 한왕조의 백성들을 위해서입니다.”

“나는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소.”

“한이 이대로 사라져가도 괜찮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망설이실 까닭이 없습니다. 전하의 몸은 이제 한 몸이 아닙니다. 천하 백성들을 두루 살피십시오.”

“내게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이렇게 말하는 유비의 눈길은 허공의 한 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조비가 황제의 위에 오른 지 6개월 후, 유비도 마침내 성도의 무담(武擔) 남쪽에 대를 쌓고 황제 즉위식을 거행했다. 연호를 장무(章武)로 고쳤다.

이 해가 서력으로는 221년이다. 유비의 나이 61세, 공명은 41세 때의 일이었다. 맏아들 유선을 황태자로 삼았다. 왕후 오씨 부인을 황후로 높였다. 그 오씨 부인의 소생인 둘째아들 유영(劉永)을 노왕(魯王)에, 셋째왕자인 유리(劉理)를 양왕(梁王)에 봉했다. 관제와 벼슬이름도 바뀌었다. 공명은 승상(丞相)이 되었다. 녹상서사(錄尙書事)를 겸했다.

황제의 기밀을 취급하는 측근직이다. 명실상부한 유비 정권의 제2인자가 된 것이다.

―동오를 정벌하리라!

유비가 황제의 위에 오른 후 내뱉은 첫 일성(一聲)이었다. 그 무렵, 유비는 관우에 대한 복수심으로 뜨겁게 불타고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 그것을 실행할 만한 여건이 아니어서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한왕실의 뒤를 잇는 촉한의 황제가 되었고, 내정도 안정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비의 관우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은 간절했다.

40년 전, 탁군의 한 작은 마을에서 도원결의를 한 이래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가깝게 지내온 그들이었다. 온갖 고생 끝에 신천지 서천을 손에 넣고 바야흐로 천하를 향해 한 걸음 성큼 다가서던 때였다.

그런데 관우는 서천 구경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손권의 간교한 술책에 걸려 허망하게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

‘이제 뜻을 펴보는가 했더니…….’

어찌 안타까운 마음과 분노하는 마음이 일지 않겠는가. 손권을 이대로 놔두고서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유비는 마침내 결심했다.

―복수를 위해서

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형주 탈환!

이것이 유비가 내세운 명분이었다. 일리가 있었다. 형주는 중원 진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땅이었다. 형주를 빼앗긴 상태에서의 중원 진출은 길이 너무 멀고 험하다.

그러나 형주를 통해서라면 언제든지 쉽게 중원 진출을 노릴 수 있다. 유비는 이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러한 유비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정은 들끓었다.

―지금은 손권을 칠 때가 아닙니다.

―먼저 위나라의 조비부터 쳐야 합니다.

허정, 진복, 조운 등이 앞장서서 반대했다. 심지어는 공명까지 나서서 유비의 동오 정벌을 만류했다. 그러나 아무도 유비의 결심을 깨지는 못했다.

“내가 없는 동안 제갈 승상은 나라를 잘 다스려주시오!”

친정(親征)이었다. 동정(東征)에 참여할 장수들도 친히 짰다. 선봉에 황충을 임명했다. 중군은 유비 자신이 거느렸고, 후군은 조운에게 맡겼다. 총병력 35만. 어마어마한 대군이었다. 낭중( 中)에 주둔하고 있는 거기장군(車騎將軍) 장비에게도 출전의 명령을 내렸다.

―장익덕은 강주(江州)에서 본대와 합류하여 동오로 진군하라

공명의 선택 (295)…제25장 사라져가는 사람들(11)


그러나 유비가 이끄는 동정군은 그 출발부터 좋지 않았다. 성도를 떠난 직후, 또 하나의 비극적인 소식이 날아든 것이다.

그 무렵 장비는 낭중에 주둔하면서 관우의 죽음을 몹시 슬퍼하고 있었다. 피눈물이 흘러 옷소매가 붉게 물들 정도였다. 신경이 곤두섰다. 군기가 엄해졌다. 부하들의 사소한 실수 하나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유비로부터 동오 출병의 명을 받았다. 한맺힌 손권에게 복수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는 부하들에게 엄한 군령을 내렸다.

“사흘 말미를 줄 터이니, 모든 군사들은 흰 깃발과 흰 갑옷을 준비하라!”

흰 깃발과 흰 갑옷은 죽은 관우에 대한 복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부장 범강(范彊)과 장달(張達)이 장비를 찾아와 말했다.

“사흘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좀더 기한을 늘려 주십시오.”

그 같은 말에 장비는 크게 화를 내었다.

“하라면 할 것이지, 감히 명을 어길 작정이냐?”

그러고는 두 사람을 붙잡아 채찍으로 등을 매질하였다. 등이 찢어지고 피가 흘렀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그 날 밤, 범강과 장달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렸다.

“어차피 흰 기와 갑옷을 마련하지 못하면 우리는 장비의 손에 죽게 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우리가 먼저 장비의 목을 베어버리자. 자네 생각은 어떤가?”

“그것이 우리가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네. 오늘 밤 장비가 술에 취해 잠을 잘 때 군막으로 들어가 죽여버리세.”

한편, 장비는 이상하게 마음이 불안하고 정신이 어지러웠다. 술을 마시지 않고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주보(酒保)에게 명하여 술을 가져오게 했다. 술을 한 말이나 마신 뒤 취하여 쓰러져 자기 시작했다.

부하를 시켜 몰래 장비의 동태를 살핀 범강과 장달은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려 단도 한 자루씩을 지니고 장비의 군막으로 숨어들어갔다. 살금살금 장비의 침상 앞으로 다가간 그들은, 순간, 깜짝 놀라 기절할 뻔하였다. 장비가 두 눈을 부릅뜨고 수염을 곤두세운 채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으헉!”

그 자리에 주저앉으려는데 장비의 코에서 코고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그제야 두 사람은 장비가 눈뜨고 자는 버릇이 있음을 알았 다. 다시 용기를 내어 칼을 높이 쳐들었다. 배와 가슴을 노리고 힘껏 찔렀다. 장비는 외마디 비명소리를 지르며 이내 숨을 거두었다. 이 때 그의 나이 55세.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군중에서는 장비의 죽음을 알았다. 부장 오반(吳班)이 이 일을 급히 유비에게 보고하였다.

“낭중에서 거기장군의 부장이 표문을 보내왔습니다.”

성도의 교외를 막 벗어날 무렵이었다. 이 같은 말에 유비는 갑자기 발을 구르며 외쳤다.

“아, 장비가 죽었구나.”

장비에게 별일이 없다면 어찌 장비의 부장이 표문을 올리겠는가. 유비는 급히 표문을 받아 읽어보았다.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폐하!”

혼절하여 쓰러지는 유비를 막료들이 겨우 붙잡아 침상에 뉘었다.

그래도 유비는 동오 정벌을 강행하였다.

―범강과 장달이 장비의 목을 가지고 손권 진영으로 도망갔습니다.

이 같은 보고가 더욱 유비의 복수심에 불을 지른 것이었다.

“짐은 벼슬에 나오기 전 관우·장비와 형제의 의를 맺고 살고 죽기를 함께하기로 맹세하였다. 그런데 이제 짐은 천자가 되었으나, 두 아우는 모두 비명에 갔다. 어찌 이 한을 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선언한 유비는 다시 군대를 몰고 나가 백제성에 사령부를 차렸다. 형주와의 접경지역에 해당하는 곳이다.

그 무렵, 손권도 왕을 칭하고 있었다. 조비로부터 ‘오왕(吳王)’이라는 작호를 받는 형식을 취했다. 위와 오의 밀월 관계였다. 본격적인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시작이기도 했다.

―유비가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동오의 손권은 유비가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친히 동오 원정군을 거느리고 형주를 향해 쳐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에 크게 놀랐다.

즉시 대도독 육손에게 명하여 유비 군의 진격을 막게 했다. 조비와 동맹을 맺은 상태였기 때문에 후방은 아무 걱정이 없었다. 전 병력을 촉과의 국경지대로 투입했다.

첫 전투는 자귀 근처에서 벌어졌다. 촉군의 장수는 관흥(關興)과 장포(張苞)였고, 오군의 대장은 손환(孫桓)이었다. 관흥은 관우의 아들이었으며, 장포는 장비의 아들이었다. 두 사람 모두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는 복수심에 불타 있었다. 손환은 이들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부장 이이(李異)와 사정(謝旌)만 잃었다.

그 뒤로도 싸움은 십여 차례 계속되었다. 거의가 유비 군의 승리였다. 그러나 피해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노장 황충이 전사한 것이다. 동오 군에서는 맹장 감녕(甘寧)이 죽었다.

―무협(巫峽)을 점령했습니다.

―건평(建平)을 함락시켰습니다.

이 정도라면 승승장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반면에 손권 진영의 분위기는 나날이 어두워져갔다. 대도독 육손의 용병술에 대해 의심과 질책의 화살이 쏟아졌다. 한당, 주태 같은 역전의 맹장들은 노골적으로 육손에게 따지고 들었다.

“적병을 무서워하는 거요?”

이에 대해 육손의 대답은 너무나 이상했다.

“그렇소. 지금으로서는 유비 군을 감당할 수가 없소. 서서히 패하며 물러나시오!”

유비 군으로서는 복수전이었다. 모두들 예기가 날카롭고 흥분된 상태였다. 게다가 지형마저 유리했다. 서천의 지대는 높다. 반면 형주 쪽의 지대는 낮다. 공격도 방어도 모두 여의치 않을 수밖에 없다.

―넓은 평지로의 유인이다.

이렇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 사람들은 다 알았다.

“최종 방어선은 이릉(夷陵) 지역이 될 듯싶소.”

육손은 눈을 가늘게 뜨며 지도 한 곳을 가리켜보였다

공명의 선택 (296)…제25장 사라져가는 사람들(12)


이윽고 유비 군이 산악지대를 통과하여 평지대로 나왔다. 저 멀리로 이릉 들판이 보였다.

효정·천구(川口)에까지 이른 유비는 진채를 길게 벌여 세웠다. 7백 리에 달하는 거리였다.

장관이었다. 낮에는 깃발이 해를 가리었고, 밤에는 모닥불이 하늘을 밝히었다.

그 무렵 유비는 확실히 육손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7백 리에 달하는 진채도 진채려니와 그 주변이 모두 수목이 우거진 곳이었다. 지대도 낮았다. 병법에서 가장 꺼리는 지대였다.

그러한 진채 배치에 우려를 표명한 것은 마량이었다.

“나무숲에 진채를 세우는 것은 병법의 금기사항입니다. 적이 화공을 쓰면 어쩌렵니까? 다른 데다 진채를 세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유비에게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지금은 여름철이다. 어찌 화공을 쓸 수 있겠는가? 공연히 뙤약볕에 진채를 세워 싸우기도 전에 군사들을 지치게 할 필요가 없다.”

“지금 육손은 지키기만 할 뿐 싸움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을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진채를 옮기십시오.”

“육손이 어찌 감히 나와 맞서려 하겠는가? 가을이 되면 그대가 말하지 않아도 진채를 숲 밖으로 옮길 것이다.”

유비는 고집을 피웠다. 마량은 다시 말했다.

“제갈 승상께서는 이 곳의 일을 무척 염려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곳의 진채 배치를 그림으로 그려 한 번 물어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유비는 그럴 필요가 없다며 거절하다가 마량의 거듭된 청에 하는 수 없이 진채 배치도를 그려 성도로 보냈다.

“대관절 누가 이 따위 진채를 세우도록 말씀드렸는가? 당장 목을 베어야 할 자다!”

마량이 가지고 온 도본을 보는 순간, 공명은 얼굴빛을 바꾸며 날카롭게 외쳤다.

“주상께서 몸소 배치하셨습니다. 권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자 공명은 책상을 치며 탄식했다.

“아아,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주상께서는 이미 대비책을 강구하신 듯합니다.”

마량이 유비와 주고받은 말을 전했으나, 공명은 여전히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숲 속에 진채를 얽는 것은 병가에서 가장 꺼리는 바이다. 만일 적이 불로 공격하면 어찌할 작정인가. 더욱이 그 지역은 올해 가뭄이 심하여 초목이 바싹 말라 있다. 여름철이라고는 하나 기름을 뿌려 불을 붙이면 금세 불바다가 될 것이다. 또 7백 리에 걸쳐 진채를 늘어놓았으니, 무슨 수로 그 긴 전선을 막아낼 것인가. 육손이 지금까지 패하여 물러난 것도 바로 이 점을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그대는 빨리 돌아가서 진채를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하라.”

공명의 지시를 받은 마량은 다시 급히 말을 달려 유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유비가 숲 속에 진채를 세우는 것을 본 육손은 빙긋 웃었다.

―이제야 때가 왔구나!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순우단(淳于丹)을 불러 명했다.

“그대에게 5천 군사를 줄 터이니 강 남쪽으로 가 촉의 네 번째 영채를 공격하라.”
순우단은 곧 진격했다. 오랜만의 전투였다. 공을 세우기 위해 열심히 싸웠다. 그러나 촉의 방비도 만만치 않았다. 좌우 진채에서 구원군이 쏟아져나오는 바람에 순우단은 크게 패해 달아났다.

순우단은 고개를 떨구고 육손 앞으로 나가 벌을 청했다. 그러나 육손은 오히려 그런 순우단을 위로했다.

“수고하시었소. 사실은 이번 싸움은 유비의 경계를 늦추기 위한 계략이었소. 그들은 오늘 낮의 승리로 방심할 것이 틀림없소. 우리는 오늘 밤 대대적인 기습 작전을 펼 것이오. 그 때 큰 공을 세우기 바라오.”

그러고는 즉시 모든 장수를 불러 일일이 영을 내렸다.

―주태 장군은 배에 마른 풀과 갈대를 잔뜩 싣고 숲 남쪽에 매복해 있다가 싸우는 소리가 나면 숲에 불을 지르시오.

―한당 장군도 유황과 염초가 든 마른 풀단을 싣고 동편에 매복해 있다가 신호가 떨어지거든 화공을 펼치시오.

―서성과 정봉 장군은 선봉이 되어 촉병의 영채를 공격하시오.

모두들 육손의 지시에 따라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명의 선택 (297)…제25장 사라져가는 사람들(13)


그 날 밤이었다. 윤 6월이었다. 늦여름의 마지막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지만 밤바람은 시원하게 느껴지는 때였다. 유비는 군막을 나와 천천히 걸었다. 산책이었다. 관흥과 장포가 호위했다. 온갖 상념이 유비 의 뇌리를 스쳐갔다.

전선 7백 리―.

장강의 숲을 따라 40군데의 진채가 길게 펼쳐져 있었다.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군사들은 풀 숲에 누워 제각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어느 새 성도를 떠난 지 1년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지칠 만도 하겠지.’

그랬다. 촉의 군사들은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순찰을 돌고, 훈련을 하고,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일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라!’

공격을 하고 싶어도 공격할 수가 없었다. 유비는 가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낮에 한바탕 전투가 있었다. 순우단이라는 동오 군의 무명 장수가 기습을 해왔었다. 관흥과 장포가 잘 막아냈다.

“당분간은 저 쪽도 조용하겠지?”

육손은 이 쪽 진영의 경계 상태를 확인해보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낸 유비가 그런 것쯤 눈치 못 챌 리 없었다.

“그렇습니다. 적극적으로 싸우려 들지 않은 것으로 보아 탐색 겸 쳐들어왔던 것이 분명합 니다.”

관우의 아들 관흥이 유비의 말을 받았다.

“싸움이란 적장의 마음부터 읽어야 한다. 조카들도 잘 배워두도록!”

“명심하겠습니다.”

그 때였다. 좨주 일을 보고 있는 정기(程畿)가 급히 유비 앞으로 달려왔다. 발걸음이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인가?”

유비가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먼저 물었다.

“적병의 동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정탐병의 보고에 의하면 동오 군이 줄을 지어 동쪽과 남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언뜻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유비가 이윽고 결론을 내리듯 말했다.

“그것은 틀림없이 우리를 꾀어내려는 의병(疑兵)일 것이다. 함부로 움직이지 말도록.”

밤의 어둠은 더욱 짙어갔다. 바람도 아까보다 한결 거세졌다. 유비가 막 산책을 마치고 군막 으로 들어서려는데 남쪽에서 요란스런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앗, 불입니다.”

관흥이 먼저 외쳤다. 유비가 남쪽 숲을 바라보니 과연 불길과 함께 시커먼 연기가 솟아오르 고 있었다.

“동쪽 숲 속도 훤해졌습니다.”

역시 화광이 비쳤다. 그제야 유비는 예사로운 일이 아님을 직감하고 서둘러 전투 배치를 알 리는 북을 울리게 했다.

모든 것은 삽시간에 이루어졌다. 사방이 어느 새 불길이었다.

“적병이다! 적의 기습이다!”

서성과 정봉이 앞장서서 유비의 진채를 향해 쳐들어오고 있었다. 유비는 놀랐다기보다 당황 했다. 예상 밖의 기습이었다. 채 갑옷을 걸치기도 전에 불화살이 날아와 군막 지붕에 꽂혔 다. 금세 불길이 솟아올랐다.

“폐하! 여기로…….”

관흥이 재빨리 유비의 말을 끌어왔다. 유비는 말에 올랐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말머리를 향한 곳은 이웃 진채인 풍습(馮習)의 진중이었다. 그러나 그 곳도 이미 불바다였 다. 아니 그 곳뿐만 아니라 주변 숲 모두가 불길로 가득했다. 사방이 대낮처럼 훤했다.

“이럴 수가…….”

유비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윤 6월이라고는 하지만 여름철이 아닌가. 육손이 화공을 쓸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었다.

“유비는 달아나지 말라!”

동오의 한 장수가 수천 군사를 이끌고 유비를 향해 덮쳐들고 있었다. 서성이었다. 유비는 깜짝 놀라 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장포와 풍습이 나타나 서성 앞을 가로막았다. 그 덕분에 유비는 무사히 몸을 피할 수 있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관흥과 부동(傅桐)이 나타 나 유비를 호위했다.

마안산(馬鞍山)으로 올랐다. 산언덕에 이르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미 7백 리 전선은 모 두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산과 들이 온통 불길에 휩싸여 있었고, 촉병의 시체는 흐르는 강물을 막을 지경이었다. 예전의 적벽의 풍경이 이러했던가.

“아, 나의 병사들이여……!”

가슴 속에서 무엇인가 큰 덩어리가 떨어져내리는 것 같았다. 눈앞이 아득해지면 온몸의 힘 이 빠져달아났다. 마안산 골짜기에도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관흥이 유비에게 급한 목소리 로 권했다.

“사방에서 불길이 죄어오고 있습니다. 이 곳에 오래 머물 수가 없습니다. 어서 이 곳을 피 하셔야 합니다.”

“어디로…… 어디로 간단 말인가?”

“이 곳에서는 백제성이 가장 가깝습니다. 일단 그 곳으로 들어가셔서 군마를 정돈한 후 동 오 군을 물리치는 게 옳을 듯싶습니다.”

유비는 대답할 틈도 없었다. 얼른 말에 박차를 가하여 마안산 서쪽 기슭을 향해 달려내려가 기 시작했다. 관흥이 앞장을 서고 장포가 뒤를 막았다. 백제성을 향해 달려가는 유비는 말 위에서 연방 탄식하고 있었다.

“아아, 나의 꿈이 이렇듯 스러지는구나. 운장과 익덕을 무슨 낯으로 대하리. 하늘이여, 하늘 이여.”

완벽한 패배였다. 일 년 동안의 연승이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부동 장군이 전사했습니다.

―좨주 정기가 항복을 거절하다가 참수되었습니다.

―황권이 위나라로 투항했습니다.

―마량이 이릉으로 돌아오다가 전사했습니다.

겨우 목숨을 구해 백제성으로 탈출한 유비는 연이은 장수들의 죽음 소식에 혼절을 거듭하였다

공명의 선택 (298)…제25장 사라져가는 사람들(14)


“마량도 죽었단 말이냐. 이제 무슨 낯으로 성도로 돌아가 승상의 얼굴을 대할 수 있단 말인가.”

유비는 이렇게 탄식하며 백제성에 그대로 눌러앉았다.

백제성은 변방의 작은 성이다. 황제가 머무를 만한 곳이 못 되었다. 개축을 해야 했다. 우선 이름부터 바꾸었다. 영안(永安)으로 개명했다. 황제가 침식(寢食)하는 건물을 궁(宮)이라고 한다. 유비가 묵고 있던 객관(客館) 역시 영안궁으로 고쳐 불렀다.

이릉 7백 리 전선의 패배는 유비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심적 타격을 안겨주었다. 마음이 꺾였다,라는 말은 바로 유비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게다가 나이마저 60세가 넘었다. 한번 자리에 눕자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못했다.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

라는 말을 곧잘 했다. 꿈이 있고, 젊음과 패기가 넘쳐흐르던 시절. 비록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신분이었지만 그 때야말로 자신이 살아 있음을 여실히 보여줄 수 있었던 때였다. 패배마저도 즐거웠던 그 시절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사람들―관우와 장비였다. 그들이 있었기에 유비가 존재했던 것이 아니던가.

어느 날 저녁이었다. 등불을 밝힌 채 홀로 침상에 누워 있는데 홀연히 음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등불이 껌벅거리는 사이에 두 사내가 방 안으로 들어와 섰다. 움직임이 이상하여 고개를 들어 눈여겨보니 이게 누구인가. 관우와 장비였다. 반가움에 눈물부터 쏟아졌다.

―운장과 익덕이 와주었구나. 그 동안 잘 있었는가?

그러자 관우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희들은 사람이 아니라 귀신입니다. 옥황상제께서 저희 두 사람이 평생 신(信)과 의(義)를 저버리지 않음을 어여삐 여기시고 신(神)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이제 형님께서도 저희들과 만나게 되실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유비가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관우와 장비의 모습은 어느 새 사라지고 방 안에서는 등불만이 외롭게 타고 있었다. 시종을 불러 물어보니 삼경 무렵이었다.

“이제 짐이 세상을 하직할 날도 멀지 않았구나. 제갈 승상을 불러다오.”

공명은 우울했다. 유비의 대참패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유비가 병상에 누워 일어날 줄을 모른다고 했다.

‘또 하나의 큰 별이 떨어지려 하고 있음인가.’

각오를 해야 했다. 다음 후계자는 정해져 있다. 황태자 유선이 총명하지는 않다고 하지만 큰 혼란은 없을 것이다. 내정은 이미 안정되어 있다. 익주 평정 후 다른 일에 우선하여 내정에 힘쓴 것도 바로 이러한 경우에 대비해서가 아니었던가.

‘다만 염려되는 것은…….’

유비의 명망이 워낙 높았다. 그의 부재로 인한 외방 세력의 움직임을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틀림없이 침공이 있을 것이다.’

남쪽 지대에 거주하는 만족(蠻族)들의 움직임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위와 오나라의 동맹이 깨졌습니다.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 성도로 날아들었다. 동오의 병력이 모두 이릉 전투에 몰린 사이에 조비가 강동 땅을 침공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촉·오의 싸움이 더 길게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던 모양이었다. 조비로서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하룻밤 사이에 육손이 유비의 7백 리 전선을 격파할 줄을 어찌 알았으리요.

―육손은 재빨리 움직였습니다.

다섯 갈래로 나누어 내려오던 조비 군은 모두 육손에 의해 격파당했다. 조비는 머쓱하니 허도로 돌아갔다. 공연한 욕심에 얻은 것 없이 동맹만 파기한 것이었다.

“좋군.”

공명은 낮게 중얼거렸다. 공명이 두려워했던 것은 단 하나―위·오의 동맹이었다. 그런데 조비의 얄팍한 욕심 덕분에 가장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 하나가 저절로 해결이 된 셈이었다.

―승상이 보고 싶소.

영안의 유비로부터 부름이 있다는 전갈을 받은 것은 위·오 동맹이 깨졌다는 소식을 들은 바로 직후였다.

장무 3년(223년) 2월, 공명은 영안으로 달려갔다.

“폐하!”

유비의 얼굴을 보는 순간, 공명은 깜짝 놀랐다. 그의 얼굴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보이지 않았다. 각오했다고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눈물부터 쏟아졌다.

“이리로!”

유비가 손을 내밀었다. 공명은 가까이 다가앉았다. 유비가 공명의 손을 잡았다. 공명은 더욱 안타까웠다. 유비는 힘껏 손에 힘을 준 모양이었으나 공명에게는 힘없는 노인네의 싸늘한 손등에 불과했던 것이다.

“융중이 생각나는구려.”

유비의 눈길은 허공 한 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앞날을 생각하십시오.”

공명은 울먹였다.

“그 때 초당에서 부른 그대의 노래가 ‘양보음’이라는 노래였소?”

“폐하에게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유비는 지나간 시절로 돌아가려 했고, 공명은 앞날을 향해 달려가려 하고 있었다.

“그 때의 그 노래가 참 좋았소.”

“폐하……!”

“그대를 얻은 것은 나의 일생 중 가장 큰 행운이었소.”

“…….”

두 사람 모두 입술이 일그러졌다. 유비는 웃으려 애썼고, 공명은 울음을 참으려고 애썼다.

“지금의 제업(帝業)은 온전히 그대의 힘이오.”

“아직 북쪽과 동쪽이 남아 있습니다.”

“내 자식은 어리석고 약하오.”

“황태자께서는 인자하고 덕스럽습니다.”

“새는 죽을 때 그 소리가 슬프고, 사람은 죽음에 임해 그 말이 바르다고 했소.”

“……?”

“만일 내 아들이 재주가 모자라 지금까지의 제업을 지킬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그 때는 승상께서 촉한의 주인이 되시오.”

이 무슨 소리인가. 공명은 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온몸이 진땀에 젖었다. 아들을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촉한을 부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황제가 신하에게 내리는 유언이 아니었다.

자칫하면 이 한마디로 모든 게 무너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공명은 방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외쳤다.

“신이 어찌 신하로서 딴 뜻을 품겠습니까. 충성과 절개로써 태자를 섬길 것이니, 방금 전의 말씀은 거두어주십시오.”

머리를 들자 피가 흘러내렸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내 아들의 안녕이 아니라 천하의 평화요. 전쟁이 없는 나라, 살육과 약탈이 없는 땅을 이룩해주시오. 이것이 나의 꿈, 나의 희망이었소.”

“폐하……!”

유난히 안개가 많이 낀 4월 어느 날, 아래로 까마득히 장강이 내려다보이는 벼랑 꼭대기의 영안성에서 유비는 마침내 63년의 생애를 마감하는 숨을 거두었다.

뒷날 두보(杜甫)는 시를 지어 유비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

촉주(蜀主)는 오(吳)을 노려 삼협(三峽)으로 향했으나 그 해 영안궁에서 눈을 감았네.

푸른 일산은 공산(空山) 저 너머로 떠오르는 듯한데 무너진 궁터에는 이름없는 절만 섰구나.

고묘(古廟) 소나무 가지엔 백로만 깃들고 설날 복날엔 촌로(村老)들만 찾는구나.

공명의 사당이 곁에 있어 임금과 신하가 함께 제사를 받는도다.





촉한부흥전 제 4화 -유선의 귀향-
가충전3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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