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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세간웅(2002-08-10 22:40:26, Hit : 3826, Vote : 409
 나의 삼국지 회고록
- 10년 전

아빠: "정훈아, 삼국지라고 못들어봤지?"
나: "삼국지요?"
아빠: "응, 그래. 유명한 책이다. 정훈이 칼싸움하는거 좋아하지?"
나: "네!!"
아빠: "삼국지에 칼싸움하는것도 많이 나온단다. 아빠가 사줄까?"
나: "예, 좋아요."


이렇게 해서 길고 가늘었나, 짧고 굵었나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렇고 그런 나와 삼국지와의 인연은 칼싸움이 나온다는 전제 조건하에 6살 꼬마때 처음으로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하여 아빠가 처음으로 사준 삼국지는 다름아닌 만화 삼국지 총 5권. 그 중 3권을 먼저 사게 되었다. 6살 꼬마가 대단하면 무에 대단하고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평소때 같으면 칼싸움 나오는 곳만 찾아서 볼 나였는데도, 처음부터 꼼꼼이 정독을 - 6살이라는게 밑기지가 않을만큼 - 하게 되었다. 그날부터 삼국지 3권 만화책은 그야말로 내 막역지우였다. 밥 먹을때, 유치원 갈 때, 화장실 갈때는 물론이요 심지어는 밥먹을때와 옷 갈아입을 때까지, 자기 전까지는 내 손에서 떨어지는 때가 없었다. 부모님은 매우 놀랍고 대견해하셨다. (누가 말하기를 될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나? -_-;; - 이랬다고는 지금의 내 모습으로 보아 전혀 생각되지 않는다)
그 어린 눈에도 삼국지 특유의 어필은 전해왔던 것일까. 장비와 여포가 천군만마 앞에서 호각지세를 벌이고 군사들은 그들의 귀신같은 무예에 감탄하는 것이며, 제갈량이 형주정벌 때 - 그 당시에는 형주고 뭐고 몰랐지만 - 조조군을 마치 어린애 데리고 노는 것처럼 이리 뒤집었다 저리 엎었다 하는것이 얼마나 그 재미가 솔찬했던지.

3권을 다 읽고, 적벽전부터 시작하는 4권과 5권을 사달라고 그야말로 아빠 다리에 매달리며 지냈다. 그렇게 하여 기어이 얻어낸 4,5 권. 동해물이 마르고 백두산이 닳도록 읽었다. "몇 쪽의 첫번째 그림!" 하면 대번에 알아맞출 정도가 되어버렸다. 또래에서는 아주 삼국지 독종으로 유명해져 버렸고, 우습게도 유치원에서 삼국지 5권에 시커멓게 묻은 손때를 보여줘 독서상을 타기도 하였다. ;;


그렇게 시간은 흘러만 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난 어느새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 있었다.
국어 겸 논술 선생님이신 엄마의, 큰 책장을 무심코 뒤지다가 한쪽에 누리끼리한 ;; 10권의 책들이 주루룩 꽂혀있는 걸 보았다. 제목이 한문이었는데 첫자 "三" 자만 읽을 줄 알았다. 삼으로 시작하고 세자인 소설. 혹시 삼국지가 아닐까 하고 훑어본다. 후.. 깨알같은 글씨.. 엄청난 분량... 한번도 안본 문학타입이라 머리가 핑핑 돌았다. 그런데, 갑자기 눈이 확 밝아졌다. 그 작은 글씨들은 너무도 머리에 박혀 익숙하기 그지없는 이름을 외치고 있던 것이다. 조운, 유비, 그리고 여포도 보인다. 그 반가움을 무엇에 비기랴.

부랴부랴 아빠에게 달려가서 이 책 삼국지 맞냐고 물어보았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라는 아빠의 말.
기뻐서 날뛰었다. "내가 드디어 정식으로 삼국지를 읽는구나." 요즘 발행되는 깨끗한 이문열 삼국지가 아니라 아빠 대학때 보던, 내용은 똑같지만 낡고 안 좋은 이문열 삼국지였으나 개의치 않았다.

내 인생 처음으로, 글자만 따다닥 깨알같이 붙어있는 소설 읽기를 삼국지로 그 테이프를 끊게 된 것이다.


학교만 같다오면 책상에 붙어서 이문열 삼국지를 파기 시작했다. 공부하는 척 하고 삼국지를 몰래 읽다가 부모님이 들어오면 얼른 감추기를 수백차례, 어느새 5권, 6권이 지나고 다 읽게 되었다.
암기머리가 신통찮은 내가, 어찌나 인물 이름들이 컴퓨터처럼 입력이 잘 되는지... 내 자신도 놀랐다. 장수 이름들은 물론이요, 국사 공부를 삼국지 아는 만큼만 했으면 도대체 얼마나 좋을까. 그 웅대한 스토리가 아직도 어렸던 내 머리속에 처음과 끝이 가지런히 잡혀져만 갔고, 어느새 누가 좋고 누가 싫다 하는 귀여운 주관과, 남모르는 삼국지에 대한 정열과 사랑도 커져만 갔다.

이문열 삼국지를 무려 3년을 끼고 살았다. 중1 때까지 학교까지 들고가서 달달달 했고, 집에 와서 틈만 나면 손이 갔다.

그렇게 해서, 무려 같은 소설을, 그것도 10권 짜리를 200번도 넘게 읽어버렸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2000권 이상을 읽은 셈이다.

서서히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어릴때는 독서력 좋다고 칭찬하셨던 부모님의 눈에도 언짢음의 빛이 역력했고, 삼국지 읽어서 밥이 나오냐 뭐하냐 하는 부모님의 말씀도 잦아졌다.

한동안 삼국지를 잊었었다. 학교 생활에 취했었고 삼국지보단 당장의 다음주 있을 시험이 중요했다.


어느날 우연히 홍지서림 이라는 (전주에선 가장 큰 서점) 곳에 부모님과 같이 가게 되었다. 엄마는 엄마 필요한 책을 고르시고 나는 이것저것 뒤져보았다.

헛.. 놀랐다. 삼국지 종류가 왜 이렇게 많은가.
그제서야 난 우물안 개구리였다는걸 느꼈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삼국지 책이 있어 한번 슬쩍 보았다.
엇, 이상하다. 스토리가 이상하다. 짜임새도 이상하고 인물들도 안나오는게 많다. 이상한 삼국지.. 내가 알고 있던 삼국지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버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감히 사달라고는 못하겠고 나름대로 구상을 했다.

학교 끝나면 홍지서림으로 날마다 부리나케 뛰어가서 그 삼국지를 읽었다. 항상 읽었다. 학원 시간이 되면 아쉬운 마음을 홍지서림 구석에 잘 숨겨두고 다음날 와서 찾아갔다.
내가 그 삼국지에 이름을 붙였다. "이상한 삼국지" 라고.. 친구들은 그 삼국지의 내용을 말하는 나를 보고 웃었다. 무슨 문추가 조조에게 죽냐, 초선이 왜 원래 없다는 것이냐. 어서 가서 그 이상한 삼국지 다시 찾아보고 와라.
그들의 반응에 아랑곳 않고 읽었다. 뭔서 뭔서라고 나뉘어져 있는 것도 무시하고 내용만 읽었다. 매일같이 와서 이상한 삼국지를 읽는 나를, 도서관지기는 얹짢게 여기게 되었다. 손때 묻는다고, 안 살 거면 가라고. 내일은 안오겠다고 해놓고는 그 아저씨가 안보이는 날이면 눈치보다가 얼른 들어가서 읽고 나오고 그랬다.
마침내 거진 다 읽었다. 그랬다.

그 이상한 삼국지는,
우리가 지금 흔히 말하는 삼국지 정사였다는 것.


이상한 삼국지를 읽은 후로는 이문열 삼국지가 재미가 없어졌다. 순 내용도 다르지 않은가. 뭐가 사실이고 뭐가 거짓인질 알수 없는 착잡한 기분. 그것을 밝혀내고자 다른 삼국지도 좀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한결같은 이문열 삼국지내용. 그럼 그 이상한 삼국지가 가짜구나. 아하. 알겠다.
2학년이 되어 친구들과 우연히 삼국지를 얘기하게 되었다. 주도권은 당연히 일방적으로 나에게였다. 아무렴,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 맞수가 없었는데. 그런데 한 친구는 나랑 말이 참 잘통하는 것이었다. 속으로 내심 놀랐다. 개성적식견에다가 만만치 않은 지식. 그 친구의 이름은 조준호. 그날부로 정말 친한 친구가 되었다. "삼국지로 말이 통한다" 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마냥 좋았다.


그러다가 컴퓨터가 생겼고 인터넷이 우리 집에 들어왔다. 다음 메일을 보고 우연히 친 검색어 삼국지.
가장 윗 목록의 검색어가 눈에 띄었다. "정원기 교수의 삼국지 연구실".
'야.. 요즘은 삼국지 연구소도 있나보네?' 하는 마음으로 들어간 나는 그야말로 만족감에 가득 찼다.

생전 처음 보는, 그리고 겪는 "삼국지토론". 내가 아는 내용, 모르는 내용을 꼬리 달고 달고 하면서 한쪽에서 옹기종기 토론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 재미있었다. 야.. 삼국지 좋아하는 사람이 참 많네? 하면서.
회원 가입을 하고 조심스럽게 질문같지도 않은 질문 - 지금 다시보면 귀여워서 어쩔줄을 모르는 - 을 조심스럽게 올려보았다. 허저가 뭐가 어쩌고 였는데.. 다음날 다시 들어가보니 내 글에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 글에 누군가가 의견을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고 뿌듯한지..
그 감정이 그립다.

그 날로 "동호인" 이라는 그럴싸한 타이틀이 붙은 "난세간웅" 이 시작했다. 많은 동호인들과 친해졌고, 토론의 요령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았다.. 아하.. 그 이상한 삼국지가 그야말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삼국지 정사로구나! 새삼스럽게 알았다. 토론이 점점 손에 익어갔다. 동호인들도 어느샌가 난세간웅 하면 오~ 반갑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였다. 얼마나 뿌듯한지..
그 후로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일들과 웃고 울던 나, 토론하고 반론하고 얘기하던 나. 마치 삼국지와 함께 더불어 숨쉬는 것만 같았다.
지식은 물론이거니와 식견도 전과 비해 더없이 풍부해졌다. 적어도 허접에서는 벗어난 것 같다.


시간은 흘러만 갔다. 어느새 수년이 지났고 지금은 고등학교를 준비하는 내가 있다.
삼국지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아직도 식지 않았다. 아니, 앞으로 남은 무궁무진한 나날들중 삼국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지는 잘 모르겠다.
천자를 끼고 천하를 호령하는 조조와 온갖 부귀영화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땅한치 없어 식객으로 빌붙어 사는 옛주인을 찾아 멀고 험난한 길을 떠나는 관운장을 생각하면 왜 눈시울이 뜨거워질까. 중원천하를 다투는, 매처럼 나래치는 군웅들과, 천하를 호령하는 영웅들을 그리면 왜 아직도 가슴이 방망이질치고 하늘을 우러르게 될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 감정은 잃기 싫다. 누구에게도 주기 싫다.
나는 걸어왔다. 삼국지와 함께..















천랑 운검 (2002-08-11 01:55:06)
*^^* ㅠㅠ (^^)(--)(__)(--)(^^) ㅡ.ㅡ;;
천랑 운검 (2002-08-11 01:57:25)
내가 쓰는 몇 안되는 이모티콘들^^
천랑 운검 (2002-08-11 01:59:17)
凸ㅡ.ㅡ凸 언젠가는 쓰고싶은 이모티콘 홀홀홀~
난세간웅 (2002-08-11 18:48:56)
어이쿳, 엿을 주시네요. ^^ 잘 먹겠습니다.
小覇王孫策 (2002-08-11 21:10:34)
저도 처음엔 만화로 시작했답니다^^헐헐헐(뭐,제가 같은걸로 시작했다고 의미가 있는것도 아니
천랑 운검 (2002-08-13 04:57:00)
정훈이 한테 주는 엿이 아니구 나중에 재섭는 넘한테 써먹을려구 ㅋㅋㅋ
烏程侯 堅 (2002-08-14 10:18:27)
전 소년 삼국지라는 그림 별로 없는 소설로.. 제 용돈모아서 산 최초의 책이었습니다 ^^
神醫화타 (2002-08-18 16:01:21)
전 동화책..-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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