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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세간웅(2002-08-17 11:23:03, Hit : 4955, Vote : 463
 노숙 - 여몽 비교분석론
천하를 세 갈래로 나누어 가진 세 영웅 중, 나머지 둘과는 달리 손권은 항상 대도독을 임명하여 막대한 권한을 부여하고, 그에게 모든 군정을 행하게 하였다. 필자는 오랫동안 그 이유를 궁금해 하였으나, 진수(陳壽)의 평은 그 의혹에 해답을 가져다 주었다. 그것은 오(吳)의 군제는,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한 촉(蜀), 위(魏)에 비하여 훨씬 사병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오는 본디 강동의 토착 호족들이 연합한 국가로, 군주가 그들 호족을 일일이 통솔하기는 벅참이 있었을 것인즉, 그들을 세세히 컨트롤할, 자신의 분신인 대도독이 필요했던 것이리라.
그 영광의 대도독 자리에는 개국공신 주유가 초석을 잡고, 그 뒤를 노숙, 여몽, 육손이 나란히 잇는다. 주유는 적벽에서 조조의 대군을 크게 격파함으로써, 단연 여럿 가운데 웅장한 기세를 드러내었으나, 노숙, 여몽등은 그 후광 때문에 상대적으로 빛이 항상 약해 보였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노숙, 여몽은 오히려 주유보다 빼어난 인재들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과연 어떤 인물이었으며, 리더로서의 자질은 어떠했는지, 그 둘을 낱낱이 비교·분석하기로 하겠다.

1. 임관 과정

노숙은 임회군의 대 호족이었다. 그의 곳간은 언제나 풍족했고, 수많은 사졸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그 세력은 근방에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원술이 그에게 출사를 청하였으나, 원술의 좁은 그릇을 간파한 그는 임관하지 않았으며, 주인으로 모실 이를 찾으며 정보(鄭寶)와 손권 사이를 갈등하던 중, 주유의 추천을 받고 손씨의 신하가 된다.
여기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 있다. 노숙이 주유의 추천으로 출사하였다는 점이다. 이미 주유는 그때 손권 다음가는 최고 권력자인 건위중랑장(建威中郞將)·중호군(中護軍) 겸임자였으며, 게다가 노숙과의 사이까지 각별하였다. 다시 말하면, 노숙은 주유라는 든든한 백그라운드를 업고 임관한 셈이고, 그의 뒷자리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는 항상 주유 보좌역으로 있다가, 주유가 병사하기 무섭게 역시나 그의 자리를 차지한다.

귀족적으로 호화스럽고 당당하게 임관한 노숙과는 정 반대로, 여몽의 임관은 일개 졸병에서부터 시작한다. 손책의 부장인 등당을 의지하여 여러차례 전쟁을 어깨너머로 배웠는데, 정사 여몽전을 참고 하도록 한다.

『몇 해가 지나 등당이 죽었다. 장소는 여몽을 추천하여 등당을 대신하도록 하고, 별부사마를 제수했다. 손권이 정권을 잡았을 때, 군소 부장들 중에 인솔하는 병사가 적거나 쓰임이 작은 자들의 군대를 병함하려는 계획이 있었다. 여몽은 비밀리에 돈을 빌려 병사들을 위해 붉은 옷과 행전을 지급했다. 병사를 검열하는 날이 되자, 정렬한 그의 군대는 빛났으며, 병사들은 잘 훈련되어 있었다. 손권은 이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으며, 그의 병력을 늘려주었다. 그는 단양 토벌에 참가하여 가는 곳마다 공을 세웠다. 그래서 평북도위로 제수되었고, 광덕현의 장이 되었다.』

이 대목을 보면, 우리는 여몽은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순전 자신의 노력과 공로로 부장으로 승진하고, 도위로까지 진급하는 놀라운 승진보를 보여주고 있음을 알게 된다. 조조 휘하의 전위와 비슷한 출신인데, "개천에서 용 난다" 라는 말은 졸병부터 시작하여 훗날 대도독까지 오르는 그를 말함이라 하겠다.


2. 공적

우선 여몽을 보도록 하자.
정사 여몽전을 요약하면,

『황조 토벌에 참가, 직접 선봉대를 통솔하여 적의 수장 진취를 격파하고 목을 베어 대승. 손권은 그 공적이 으뜸이라 칭하여 여몽을 횡야중랑장으로 임명』
『남군 공방전에서 조인을 포위, 적병의 수많은 마필을 얻는 계책을 진언하여 실행, 성공하여 군세를 배로 불림』
『환현을 기습. 손자재와 송호가 여몽에게 투항』
『유수전 참가. 보루 건설을 권유하여 조조군을 퇴각하게 함』
『환현 정벌. 전군 격파시켜 그 공로로 여강태수로 임명됨』
『여릉 도적 출현. 많은 장수들이 토벌에 나섰으나 번번이 실패. 여몽이 출진하여 우두머리를 주살, 토벌. 잔당은 평민이 되게 함』
『장사, 계양을 취함』
『영릉태수 학보를 교란책으로 항복케 함. 이로 형주에서 주도권 장악』
『합비에서 장료의 오군 기습, 여몽·능통 목숨을 바쳐 손권을 호위, 큰 피해를 면케 함』
『유수전 참가. 조조의 선봉대가 아직 진영을 세우지 않은 상태에서 여몽이 공격하여 격파. 그 공로로 좌호군·호위장군으로 임명됨』
『형주 탈취. 부사인, 미방의 항복을 받고 성을 점거, 관우의 퇴로 차단, 관우 부자 생포.
그 공로로 남군태수·잔릉후로 임명됨』

이상은 여몽이 이룬 빛나는 공적들이다. 여몽은 비단 동오에서만이 아니라, 삼국지 전편을 통틀어 최고의 장수였다. 그는 죽을때까지 단 한번도 패한 적이 없었으며, 참가하는 전투마다 한결같이 눈부신 전공을 세워 항상 공로부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리곤 했다. 유수에 둑벽을 쌓아 조조의 대군의 발을 묶어둔 것과 학보에게 거짓 전령을 보내 영릉군을 손쉽게 얻은 것 등의 기이한 계책은, 그가 또한 삼국지 최고의 전술가임을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조조에겐 장료가 있었고, 손권에게는 여몽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노숙은 어떨까? 정사 노숙전에서 또한 그의 눈에 띄는 공적은 찾을 수가 없는데, 이것은 노숙은 일평생 이렇다 할 공적을 쌓은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여몽이 손권으로부터 받은 형주 삼군 탈취 명령은, 이미 그보다 노숙에게 더 먼저 내려졌었다. 노숙은 우호적으로 받아들이다가 그 명령을 받고 관우군과 대치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그저 경계를 나누어 구역을 정한 것 뿐이었다. 그의 군략은 매우 소극적이었으며, 영토 확장 능력은 여몽에 비하여 매우 부족했다고 할 수 있겠다. 동오에 "복병을 묻고 관을 지키는 데 뛰어난 것은 자경이 있고 강에서 수전 잘하기로는 주랑이 있네" 라는 노래가 있다고 한다. 주유의 수전 실력은 천하가 다 인정하는 바이지만 노숙은 한평생 복병을 묻고 관을 지켜본 적이 없다고 봐도 무관할 정도이다. 설사 그런 용병술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결과로 나타나는 게 없으니 안 가진 것만 못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 노래에서 그리는 노숙의 용병은 허명이 아닌가 싶다.


3. 성품과 인물 됨됨이

이번에도 우선 여몽 먼저 보도록 하자. 그의 성품을 알 수 있는 정사의 구절을 요약해 본다.

『습숙의 군사들로 여몽의 병력을 증가시키도록 하였으나, 여몽은 습숙이 재능있는 장수라 극력 칭찬하여 그 계획을 거절함. 손권은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습숙의 병사를 돌려줌』
『손권이 성당, 서고, 송정이 죽자 그 세 명의 군대를 여몽에게 주어 합치려고 함. 여몽은 간곡히 사양하며, 그들은 모두 나라에 열심히 수고한 훌륭한 장수라 찬하여 거절, 또한 그들의 자제들을 위해 스승을 선택해주고 보좌하고 지도하도록 부탁함』
『부하의 일로 강하태수 채유에게 고발당했으나, 원망하는 마음을 조금도 같지 않음. 예장태수 고소가 죽었을 때, 손권이 임명할 만한 자를 묻자, 여몽은 채유를 추천하면서 훌륭한 관리라 찬함』
『감녕이 포학하여 여몽의 생각을 항상 거슬렸고 손권의 명령을 어기자 손권이 노여워함. 여몽은 감녕이 훌륭한 장수라 찬하여 손권으로 하여금 그를 후하게 대접하게 함, 감녕은 마침내 그 쓰임을 얻음』

난 정사 여몽전을 읽으며 감탄을 그치지 못하였다.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장수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는 항상 자신보다 남을 생각하였고, 남의 심정을 잘 파악하여 그들의 분을 삭여주기도 하였으며,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힘을 다해 도와주었다. 따라서 조정에서 그의 인간관계는 누구보다 좋았으며, 여몽을 싫어하고 꺼려한 이는 단 한 명도 기록에서 찾아볼 수 없다.
난 여몽의 이러한 고운 마음씀씀이의 원천을 -물론 그의 천성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그의 출신에서 찾는다. 오직 맨 주먹, 붉은 피로 졸병부터 시작하여 군열에 뛰어든 여몽은, 그 때문에 군사들의 마음을 노숙보다 훨씬 더 잘 헤아리고 있었으며, 병사들은 여몽을 존경하며 따랐다.
또한, 그는 누구보다 성실하였다.
『여몽은 어려서 경전을 배우지 않았으므로 항상 대사를 진술할 때마다 언제나 구술로 대신 표를 올렸다』
글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그가, 힘 밖에 없는 무장에서 중국 전토 최고급1의 전술가로 거듭나기까지는 십수년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노력하는 자에게 행복이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 나라를 짊어질 기량을 갖추게 된 것은 모두가 그의 성실함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그를 아꼈는데, 다음 정사 구절을 보도록 하자.

『책봉한 작위를 아직 행하지도 않았는데, 마침 여몽이 질병에 걸렸다. 손권은 당시 공안에 있었는데, 여몽을 내전으로 맞아들이도록 하고, 치료를 위해 온갖 처방을 다했으며, 국내에서 여몽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천금을 내리겠다고 포고하여 불러 모았다. 어떤 때 침을 찌르면, 손권은 그의 고통 때문에 슬퍼하곤 했다. 손권은 항상 그의 안색을 살피려고 하면서도 그를 놀라게 할까 걱정이 되어 언제나 담 밖에서 창문을 통해 바라보았으며, 그가 조금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을 보면 기뻐하며 주위를 돌아보고 말하며 웃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탄식을 했으며 밤에는 잠도 이룰 수 없었다. 질병을 앓는 중에 병세가 호전되면, 그를 위해 사면령을 내렸고, 신하들은 모두 경하했다. 이후에 병세가 더욱 악화되자, 손권은 직접 가까이에서 지키고, 도사에게 명하여 성신 아래에서 그를 위해 기도하여 그의 생명을 지켜달라고 청하게 했다. 그는 향년 42에 결국 내전에서 죽었다. 손권은 매우 애통해했으며, 그를 위해 상복을 입고 먹는 것도 줄였다. 여몽은 죽기 전에 하사받은 금은이나 재물, 상을 전부 창고 속에 넣어두고, 창고 관리자에게 자신의 목숨이 다하는 날 모두 조정으로 돌려보내도록 하고, 장례식은 검소하게 하도록 힘쓰라고 했다. 손권은 이 말을 듣고 더욱더 비감해했다.』

이 대목은 손권이 주유를 대한 것 못지 않게 여몽을 손발처럼 아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이 반평생 그토록 염원하던 형주를 얻어다 준, 게다가 인품까지 흠잡을 데가 없는 그는 동오 최고의 신하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버에는 노숙을 보도록 하자. 노숙은 임관 전부터 베풀기를 좋아하였다. 아무 거리낌없이 곳간 하나의 곡식을 주유에게 준 일화는 유명하다. 그만큼 그는 배포가 큰 멋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권력의 맛을 본 그는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정사 노숙전을 참고하면,

『장소는 노숙이 겸손하지 않고 불만스러워 한다고 비난하고, 노숙은 나이가 어리고 거칠어서 임용할 수 없다고 몇 차례 헐뜯었다. 손권은 이에 개의치 않고 노숙을 더욱 귀중하겨 여겼으며, 노숙의 모친에게 옷과 휘장, 생활 용품을 내려서 과거처럼 부유해지게 했다.』

동오의 내무를 총괄하는 손권의 오른팔인 장소에게까지 이렇게 심한 질책을 받았을 정도면, 나머지 신료들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였을 것인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노숙은 성격이 매우 오만하여 남의 말을 듣지 않고 독단으로 나갔으며, 자신의 위치에 저항하는 이들은 고깝게 생각하였다.
게다가 재미있는 사실은, 노숙과 여몽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라이벌간의 암투가 있었던 것 같다. 노숙은 자신의 동오 최고의 인물이라 생각했는지 남을 업신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여몽을 대함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명한 "오하아몽(吳下阿蒙)"의 고사에서 괄목상대하게 된 여몽의 박식함에 긴장한 노숙은, 한 수 아래로만 보았던 여몽의 존재에 위압감을 느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 노숙은 주유가 죽기 직전 남긴 유언으로 대도독의 자리에 올랐는데, 어찌하여 노숙은 주유처럼 후계를 지명하지 않았단 말인가? 노숙은 그의 후계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지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그의 식견으로는 여몽이 제일 유력한 후보라는 것을 틀림없이 감지하였을 텐데, 그것을 알면서도 지명하지 않았다는 것은 곧 그만큼 노숙이 여몽을 경계하고 의식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여몽은 노숙의 지명 없이도 자연스럽게 노숙을 이어받았다. 아니, 그 전에 이미 여몽의 내부 입지는 노숙을 압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손권이 열망하는 형주 문제를 노숙은 결국 처리하지 못했으나 여몽은 형주를 통째로 차지하여 땅 문서를 손권의 손에 쥐어주었다. 여몽은 손권의 명대로 노숙을 대신하여 육구를 주둔하고 형주를 공략하는데, 손권의 신임은 이미 노숙으로부터 떠나 여몽에게 있었다고 본다.


4. 대도독으로서의 전략과 이행

노숙이 가장 과감하게 나온 것이 바로 적벽 전투를 강력하게 추진하였던 것이다. 장소 등의 원로 구신들의 항복론을 반박하며 손권으로 하여금 힘써 조조의 대군을 맞아 승리하게 하였다. 연의에서는 주유가 손권에게 싸울 것을 건의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정사에 따르면 그 의견은 제일 처음 노숙에게서 나온 것이라 한다. 다급한 상황에서도 냉정하게 판단할 줄 아는, 그의 결단력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노숙은 출사 직후에 손권과 나눈 칭제론으로 단연 돋보인다.
정사에 나온 노숙의 대답을 보면,

『노숙이 대답했다.
"옛날 한고제가 마음을 다하여 초의 의제를 존중하여 섬기려고 했으나 원하는 대로 얻을 수 없었던 것은 항우가 해롭기 1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조조는 옛날의 항우와 같습니다. 장군은 어떻게 환공과 문공처럼 될 수 있습니까?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왕실은 다시 일어날 수 업고, 조조는 신속하게 제거되지 않습니다. 장군을 위한 계획은 오직 강동을 차지하고 천하의 변화를 살피는 것입니다. 기업의 규모가 이와 같으면 또 의혹을 초래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북방에는 진실로 힘써야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힘써야 할 일이 많을 때를 이용하여 황조를 소멸시키고 나아가 유표를 공격하여 장강 유역을 차지하여 자기 소유로 만든 연후에 제왕이라고 칭하고 천하 통일을 꾀하는 것, 이것이 한 고제의 사업이었습니다."』

제갈량이 초려를 나오기 전부터 이미 천하 삼분계를 구상하고 있던 것처럼, 노숙 또한 강동을 보전하면서 형주까지 병합하여 왕국을 건설하자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 얼마나 시무를 밝게 헤아리고 멀리까지 내다 본 장대한 계획인가! 더군다나 제갈량과는 달리 노숙은 손권의 황제 즉위에 남다른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무리 중 단연 돋보인다. 다음 대목에서도 그러한 뜻은 잘 나타난다. 손권은 제위에 오르고 나서도 노숙이 일찍이 자신에게 제위에 오르라고 하였던 명철한 식견을 예찬하였다고 한다.

『노숙이 궁전으로 들어와 손권을 알현하려고 하자, 손권은 일어나 그에게 예의를 나타내고, 곧 이렇게 말했다.
"자경, 내가 안장을 짚고 말에서 내려 맞았다면, 그대의 공을 충분히 빛낼 수 있지 않았겠소?"
노숙은 작은 걸음으로 급히 앞으로 나가서 말했다.
"충분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놀라지 않는 자가 없었다. 노숙은 자리에 앉은 후, 천천히 채찍을 들고 말했다.
"원하는 것은 존귀한 군주의 위엄과 덕망이 천하에 더해져 구주를 통일하여 제왕의 사업을 완수하고, 다시 특별한 수레로써 현명한 인사들을 부르고 저를 부르신다면, 비로소 빛날 뿐입니다."
손권은 손뼉을 치면서 기뻐하며 웃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노숙은 실천궁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가 구상한 계획은 우선 형주를 얻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두고 세운 계획이었는데, 형주 탈취 추진에는 너무 소극적이었다. 그는 유비 세력에 무조건적인 화친으로 시작하여 화친으로 끝나는데, 형주를 지키는 것은 호장 관우였으므로 그러한 친화정책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는 그의 처음 계획과 너무도 상반되는 방책이 아닌가! 게다가 한술 더 떠서 그는 구체적인 방안도 없이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위하여 허세를 부리는데, 훗날 손권은 육손과 더불어 삼도독 얘기를 나누는데, 그때 손권은 이렇게 말한다.

『"자명은 관우를 잡을 방법을 계획한 점에서는 자경을 이겼소. 자경은 나의 편지에 대한 답장에서 말하기를, '제왕이 일어날 때는 모두 환난을 제거함이 있으므로, 관우는 걱정할 것이 못 됩니다.' 라고 했소. 이것은 자경이 속으로는 처치할 방법이 없으면서 겉으로는 큰 소리 친 것일 뿐이었소. 나는 또한 그를 용서하고 책임을 묻지 않았소."』

여몽은 노숙에 비해 시세를 보는 안목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는 나라의 모든 일을 총괄하는 최고 권력자로써 항상 소규모 계획에만 급급하였었는데, 형주를 탈취한 대 프로젝트는 그러한 누명을 벗게 하였다. 형주를 얻음으로 인하여 동오의 국력은 곱절로 불어나고 영토 또한 배가 되는 엄청난 성장을 갖게 되는데, 이는 모두 여몽의 계획으로 이루어진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5. 마무리


여몽과 노숙은 당대의 으뜸가는 신하들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손권과 동오에 죽는 날까지 충성하였으며, 오를 위해 항상 힘을 다하였다.
그 둘이 가장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점이 바로 유비의 촉에 대한 입장인데, 친유비파의 우두머리 노숙은 그 때문에 결국은 형주를 못 얻게 되었고, 그가 세웠던 원대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그러나 반유비파인 여몽은 강력하게 형주공략전을 추진하여 결국 손권의 소원을 이루게 해 주는데, 이러한 점으로 그 둘은 크게 두 성향으로 나뉘는 것 같다. 결국, 동오에 큰 발전을 가져다 준 것은 여몽 쪽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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