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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기 교수님의 정역삼국지 :-)2008-12-21 12:31:21
 희지재


   겨울방학 하셨죠? 저 그제 시험 마치고 돌아와 집에서 불을 때놓고 책 읽었습니다. 복학 첫 학기, 학업에 소홀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레포트 쓰는 기계’라는 별명이 생긴 학기였는데, 그런데도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남의 인생처럼 내 인생이 쏜살같이 또다시 한 년 지나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지런히 살면 살수록 더욱 인생은 빨리 가버린다는 것이 딜레마지요. 배운 것은 많은데 배울 것은 더 많아, 학기가 끝나고 돌아가 쉬라는 것이 수긍되지 않습니다. 밤바람이 몹시 불더군요. 제 위로 지나가는 것들, 물 속 자갈처럼 흘려보내고…
   집에 도착해 있는 정원기 교수님의 정역삼국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학기 중에 서울역사박물관의 <우리의 삼국지 이야기> 전시에 혼자 갔었지요. 바쁘다 보니 미루고 미뤄 마지막날 간신히 한 시간 정도 짬을 낼 수 있었는데, 재작년인가, 중국유물전에 비해 전시는 초라했습니다. 하지만 동묘에서 옮겨 온 삼국지 그림들은 눈 떼기 힘들더군요.
   정원기 교수님 책에도 60명의 중국화가의 665점의 그림이 페이지 사이사이 들어갔는데, 교수님 말씀대로 책이 스마트(smart)합니다.
   정역과 재해석이 있다고 하면 삼국지는 정역을 읽는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원전성이 있는 동아시아의 고전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대표적 판본들에 대해 제가 길게 쓸 수 있겠지만, 그 가운데서 정역삼국지의 가치를 강조할 수 있겠지만, 어쩐지 꺼려집니다. 정역에 비하면 나머지는 일종의 부연설명이나 각주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반가운 책을 알려야 하니 몇 자 적어볼까요.
   근래 삼국지 시장에서 부각됐던 작품들은, 문단의 명성 있는 작가 중으로는 이문열, 황석영, 장정일 세 사람이 제일이었고, 그 외 근 몇 년 특별히 열거할 만한 번역본은 리동혁, 정소문의 작업물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국내 역본의 대조는 정원기 교수님이 이미 꼼꼼하게 해두신 것이 있습니다. 그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samgookji.com/bbs/view.php?id=sugyoung&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5



  아래는 정원기 교수님께서 작성하신 것이 아니라, 제가 쓴 글입니다.



1. 이문열 삼국지
   이문열에게 삼국지 번역을, 황석영에게 수호지 번역을, 최인호에게 서유기 번역을 맡기자는 기획이 출판가에 나돌았던 적이 있었답니다. 그 중 실제로 나타난 것은 첫 번째 뿐입니다. 논술시장을 공략한 이문열 평역본은 두드러진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작가 자신의 다른 책들을 합친 것만큼이나 팔려나갔습니다. 그 오류를 모아놓은 리동혁의 <삼국지가 울고 있네>조차 상당히 알려질 만큼 시장에의 공헌도는 컸던 반면에, 역사에 무지하고 정치적 편향이 심해서 그로부터 문제들이 기인했습니다. 현재는 국내 애호가들에 의하여도 비판이 자세히 진행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저는 이문열을 정치적으로 싫어하고, 언론에 노출되는 저널리스트로서는 심각하게 비논리적이라고 보고 있으며, 특히 근간된 작품들은 문학적으로도 격이 떨어진다고 느낍니다. <선택> 이후는 절망적이죠. 다만 이문열의 젊은 날 김현이 축복한 <황제를 위하여>는 읽어볼 계획입니다.


2. 황석영 삼국지
   리얼리즘으로 탁마한 황석영의 문장은 이문열의 의고체와는 또다른 멋을 국내 삼국지에 가획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출판사에서 선전한 것처럼 정역은 결코 아니었고 그렇다고 재해석도 아닌 작품입니다. 황석영의 중문 번역 능력도 완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표절 시비도 지적되어야 합니다.
   황석영은 수호지를 평역했다면 보다 좋은 책을 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황석영에게는 이미 장길산(張吉山)이 있어 그의 작가 인생에서 수호지를 거쳐 가는 것이 필요한 경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제게는 장길산에 내재한 성적 편견도 마뜩치 않은데, 황석영 자신이 본다면 수호지가 남의 민족 서사라 같은 주제를 두고 쓴다면 역시 장길산이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장길산의 문장은 여느 작가들이 따라잡는 것이 불가능한 경지를 보여줍니다. 동시대의 젊은 작가군은 문장이 쿨(cool)하다는 평가는 가능할지언정 빈곤합니다. 국어의 문학언어로서의 고유성을 담지하고 있는 것은 황석영 세대가 마지막인 듯합니다.
   수호지 70회 뒤의 남정북벌이나 호걸들의 종말의 비장미가 근본적으로 불필요하고, 그들은 그저 비도덕적 도둑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김성탄의 평가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국내의 철학자 이정우도 같은 이야기를 한 적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수호지보다 더욱 비민중적인 층위의 위정자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삼국지는 왜 번역했을까요? 그 자체가 노년 황석영의 어떤 한계를 내비친다고 느낍니다. 황석영 스스로도 노년의 생계를 대비하는 의미였다고 고백하였지만…
   황석영 말년의 소설은 리얼리즘 계열이 아니라 일종의 샤머니즘이 되어갑니다. 문제의식 자체가 사회와 역사에서 나온 판에, 소설적 긴장을 결말에 굿거리나 하며 풀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화룡정점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 등단한 문단의 기린아였던 황석영은 젊을 적부터 문장이 아주 탄탄했는데, 지금은 서사가 불성실해지고 있고 소설적 문제의식 역시 현대성을 더이상 따라잡지 못 하고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가 젊을 때의 단편들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3. 장정일 삼국지
   장정일의 경우는 대표소설인 <보트하우스>와 <중국에서 온 편지> 그리고 그의 시들을 읽으십시오. <햄버거에 대한 명상>, <길안에서 택시잡기>, <삼중당 문고> 같은. 그의 삼국지는 읽지 마십시오. 장정일은 한문을 번역할 수 있는 능력을 아예 결여한 젊은 작가입니다. 그래서 그의 재해석의 이데올로그는 김운회로서, 지성이 의심되는 내셔널리스트입니다. 사회학자 뒤르켕은 과학과 이데올로지를 구분했는데, 김운회의 학설은 이데올로지에 속합니다. 전반적 기조는 춘추필법을 피한다고 하여 자민족 춘추필법을 시도한 경우입니다. 고전을 고전으로 읽으십시오. 소설이라는 허구의 작업에 굳이 과학을 더하고 싶거든 자치통감을 곁에 두고 읽으세요. 고전을 이데올로지로 읽었다면 장정일 삼국지나 김운회 삼국지를 읽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삼국지를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굳이 그들이 삼국지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궁금하다면, 다른 삼국지를 읽으면서 김운회의 <삼국지 해제>나 <삼국지 바로 읽기>를 읽는 것이 정직한 방법입니다.


4. 리동혁 삼국지
   리동혁 삼국지는 장정일과 반대로 중문에 능통한 젊은 작가가 흥미로운 시도를 한 경우입니다. 이문열, 황석영에 비해 오역이 현저히 적고, 리동혁의 첨삭이 장정일 삼국지의 이데올로지에 비해 훨씬 과학적이고 영양가 있습니다. 특히 애호가들에게 어필할 번역본입니다.
   다만 두 가지 점에서 한계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국어에 익숙치 못 하기에 오문이 많아 문학성을 훼손했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더 심각한 문제로, 판본에 대하여 독자들을 오도하고 있습니다. 패치워크(patchwork)가 삼국지의 원본성을 되살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삼국지가 울고 있네>가 아주 우수한 책으로 소장 가치가 있는 반면, 리동혁 삼국지는 대체로 그의 첨삭 부분이 본문 번역보다 유용합니다.


5. 정소문 삼국지와 정원기 삼국지
   정소문 삼국지는 시장에서 사장된 번역본으로서는 아까울 정도로 그동안 가장 소장가치가 있었던 작품입니다. 출간 당시 해당 출판사측에서 보내준 덕분으로 한 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정역에 가까웠던 역본입니다. 상당한 분량의 주석 작업과 원문 오류 교정이 장점이지만 완전한 수준이 못 됩니다. 따라서 진화계열상 정원기 삼국지에 의해 대체되고 있는 역본입니다. 정원기 삼국지가 더 좋은 판본을 골랐고, 더 매끄러운 국어 문장을 사용했으며, 책의 장정이나 책 속 도판들이 훨씬 아름답고, 역자가 삼국지를 전공한 중문학교수이므로 국내 어느 애호가보다도 기술적 착오를 두루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소문 삼국지는 오류의 교리에 있어서 원문에 직접 손을 댔지만, 정원기 삼국지는 표로 작성해 별책부록으로 빼두고 있습니다. 이것도 상당히 중요한 차별점을 줄 수 있습니다. 그 교리일람표는 정원기 교수님의 스승인 중국의 심백준(선뻐쥔)이 작성한 것으로, 방대한 분량의 교리입니다. 다른 교리본들을 종합하고 연구해 10배의 교리를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원문성을 지키면서 오류를 교정한 일람을 별첨한 것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입니다.
   정소문 삼국지가 여전히 특화되고 있는 한 가지 부분은 모종강 협평의 1/10 정도를 번역한 부분입니다. 그에 대신해 정원기 삼국지는 모종강 협평을 생략한 대신 모종강이 쓴 <독삼국지법>을 번역해 실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한 애호는 독자들, 애호가들의 몫입니다.
   재해석과 정역을 동일 기준으로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역시 정역을 읽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입니다. 고전이니까요. 동지(冬至)가 어제 지났는데, 긴 겨울밤을 조선시대부터 삼국지를 읽으며 보낸 조상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꼭 삼국지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사고와 상상력이 담긴 채 시간의 검증을 받은 것이 고전입니다. 고전과 함께 하는 겨울 되시기를 빕니다 :-)


덧글 5개
 무적위연 음....그렇군요 2008/12/27 12:12 
 희지재 이건 다른 데도 올린 글이라 좀 평이하게 썼지만, 정원기 선생님 삼국지는, 제가 지금 2권을 읽고 있는데요, 연의 읽는 재미를 오랜만에 느끼게 해주는 소장가치 있는 책입니다. 삽화들도 독서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게 신기하더군요. 다빈치코드 애장판처럼 상업적 목적으로 불필요하게 삽화들을 집어넣어 가독성이나 몰입도를 떨어뜨린 무책임한 편집이 아닙니다. 보장합니다. 오히려 삽화 보는 재미가 쏠쏠하지요. 그리고 어려운 한자어는 문장 안에서 풀어주셔서, 한학자들의 번역에 비해서 한글세대들이 읽기도 쉽습니다. 2008/12/30 05:12 
 희지재 요샌 제가 쓸 글이 없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같다면 제가 오히려 쓰겠는데… 무적위연님 약속하신 집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링크해주시기로 하셨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08/12/30 05:12 
 좌자 흠... '미네르바 삼국지' 발언은 아무래도 부적절한 비유인 것 같아 삭제하기로 합니다. 종족적 민족주의와 흑백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런 비유는 자칫 엉뚱한 오해로 변질될 우려도 있으니깐요. 하여튼 저도 지금 정원기 선생님의 <정역 삼국지> 제7권을 거의 다 읽은 상태인데요, 속도감과 간결성을 동시에 갖춘 문체라 할까요... 정역이라면 딱딱한 느낌을 줄 것이란 선입감은 전혀 기우였음을 알았습니다. 그동안 보아온 황당한 삼국지, 짜깁기 삼국지, 사이비 삼국지 식의 복잡한 가필이 없더라도 원본 자체에 이미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쳐난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원문 자체가 유장하다거나 비장하다거나 수식이 많은 문체가 아니라 간결하고 담백하면서도 군더더기가 없어(그러면서도 긴장감이 지속되는지라) 독자들의 상상력을 마음껏 유발한다는 점도 특기할만 합니다. 역자가 이런 묘미를 수려한 한국어 문체로 충분히 살려낸 것을 감안한다면 삼국지에 대한 남다른 내공을 쌓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는 60명이 넘는 중국 화가들의 다양한 삼국지 그림 감상도 솔솔하고요. 한 번을 읽더라도 올바른 삼국지를 읽어야 한다는 점에서 저 역시 다른 분에게 강력히 추천할 도서로 꼽습니다. 2009/01/11 10:01 
 희지재 견식 높으신 좌자님이 추천하셨으니 “되었다!”란 생각이 드는군요!^^ 정원기 선생님 삼국지 정말 강추입니다. 2009/02/0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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