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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삼연(2010-09-11 12:03:14, Hit : 4512, Vote :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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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로즈업人 사람속으로…] 삼국지연구소 소장, 정원기













[클로즈업人 사람속으로…] 삼국지연구소 소장, 정원기
삼국지연구소 소장 정원기 "황석영씨와 격론 벌이기도…"
삼국지 바이러스에 감염, 삼국지 사전까지 펴냈죠…
소설가 황석영씨와 번역오류 문제로 격론 벌이기도
이문열의 삼국지도 원문 오역 많아
실제 어느 중국 교포가 무려 1천 군데 넘는 오류 지적하기도
연구 자료 찾기 위해 중국 현지 대학·서점은 물론 일본 고서점거리까지 뒤져
15년 노력에 정말 구하기 힘든 고본까지 찾아…덕분에 시력은 1.5에서 0.5로

젊은날 그에게 학문은 '사치'였다.

6남매의 맏이로, 몰락한 집안의 재건을 위해 빵장사부터 했다. 밥이 해결된 뒤 그는 빵 대신 그토록 염원하던 '책'을 다시 잡았다. 30대 중반을 넘어 대학, 불혹이 넘은 나이에 대학원에 들어가서 삼국지 연구자로 삶의 방향을 튼 것이다. 그 후 15년이 지난 지금, 아직 삼국지에 대한 연구는 '진행형'이다. 다들 '나도 삼국지 읽어봤다'고 하지만 삼국지 연구는 참 '난공불락'. 한두번 읽어도 전체 그림이 쉬 조감되지 않는다. 1천200여명의 등장인물, 240개 장면의 사건을 종횡으로 묶고, 그 인물과 사건과의 얼개를 입체적으로 정리하는 건 1차관문. 설상가상, 2차관문이 기다린다. 서기 289년 진수(陳壽)가 편찬한 정사 '삼국지', 1천100년이 지난 1368년 원말 청초 작가인 나관중(羅貫中)의 원본 '삼국지연의', 거기서 다시 1679년의 모종강(毛宗崗)이 개편한 수정본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를 바탕으로 한 20~21세기 한·중·일을 비롯한 전세계 각종 번역·번안·해설본 족보를 일목요연 정리해야 한다. 그는 그 화두를 거의 풀어놨지만 그 과정에 몸도 많이 상했다.

대구시 동구 동호동 그의 서재를 찾았다. 현관 옆 벽에 이백의 장진주(將進酒) 액자가 걸려있다. 그 위에 여포가 적토마를 타고 휘두른 방천화극(方天畵戟) 같이 생긴 은색 창이 걸려있다. 나태해지는 자신을 경책하는 불가의 '죽비' 같았다. 그가 바로 회원 1만5천여명의 삼국지 전문 사이트는 물론 최근 삼국지 교실까지 개설한 정원기 삼국지연구소 소장(62)이다.

우린 삼국지의 겉만 안다. 삼국지가 과연 고전이냐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인사도 있다. 그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삼국지를 단순한 전쟁소설이라고 폄훼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건 잘못된 지적이다.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에도 얼마나 추악한 내용이 많은가. 이 또한 독자가 받아들이기에 달린 것이다. '시간적 영원성과 공간적 보편성을 확보한 작품이 고전'이라면 3D영화와 게임 신드롬까지 일으키고 있는 삼국지야 말로 최고의 고전이 아닐 수 없다."

머잖아 저승의 유비가 그를 '삼고초려' 할 것도 같다.


◇ 빵장사에서 삼국지 연구가로

-삼국지에 심취하게 된 동기는.

"유년시절 조부께서 마을 사람들에게 낭랑한 초성으로 삼국지 이야기를 읽어주거나 구술하시던 걸 숱하게 접했는데 그길로 삼국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다. 그 후 만화에 빠졌고 초등 4학년 때쯤 단권으로 된 삼국지를 처음 접했다. 본격적으로 삼국지 연구에 돌입한 시기는 1995년경으로, 영남대 대학원 중문학과 최환 교수님의 권유가 직접적인 계기였다."


-삼국지를 제대로 연구하려면 선행 논문과 관련 텍스트가 많아야 하는데.

"처음 연구를 시작했을 때 국내에는 약 20편의 논문이 존재했는데 대다수 비교연구에 집중됐다. 그때는 삼국지 연구 상황에 대한 기초 데이터조차 구비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자료 분류와 연구 상황 연구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결과물이 석사학위 논문으로 '80년대 이후 삼국지 연구 동향'이다. "


-너무 방대하고 지루한 연구 과정이라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는가.

"연구 도중 몇 번 고비를 맞았다. 판본과 연구논문이 너무 많고 흩어져 있어 중국 현지 곳곳의 대학교 도서관이나 서점은 물론, 일본 도쿄 간타(神田)의 고서점 거리까지 뒤졌다. 덕분에 전체 자료의 70~80%를 확보할 수 있었다. 원본을 찾고 구매할 수 없는 자료는 복사하고, 그러던 중 가까이는 중화민국 초기에서 멀리는 청나라 가경(嘉慶)연대의 고본까지 어렵사리 구할 수 있었다. 5년여의 작업 끝에 내놓은 게 '정역 삼국지'다. 중간에 몇 차례 포기하고 싶은 충동도 받았다. 덕분에 1.5나 되던 시력이 지금은 0.5가 되고 말았다."


◇ 진화를 거듭하는 삼국지 연대기

-왜 이렇게 삼국지가 세계적으로 붐을 일으키고 있는가.

"같은 역사소설인 '동주열국지'는 좌전·사기·전국책의 내용을 그냥 나열한 것으로 주제 의식이 없고, '초한지'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그런데 삼국지는 동주열국지처럼 복잡하지 않고 초한지처럼 단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제가 뚜렷하고 생동감 넘치는 인물 묘사에다 중국인의 세계·역사·가치관이 녹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삼국지는 중국문학이자 한국문학이며 중국발 동아시아 공동문학이다. 삼국지 연구는 G2로 급부상한 중국이해의 필수 코스다."


-삼국지도 숱한 모습으로 진화해 온 것 같다.

"그렇다. 위촉오 대립 상황을 기록한 역사서 삼국지는 서기 289년에 나왔다. 그러나 소설적 기번을 가미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1천100년 뒤에 나온다. 그 중간의 공백기인 송대에는 곽사구와 같은 전문 이야기꾼들이 나타났다. 이러한 이야기꾼을 중국에선 설서(說書) 또는 설경(舌耕)이라 불렀는데, 그들의 이야기 대본을 '화본(話本)'이라 한다. 이 화본을 '평화(平話)'라고도 부르는데, 삼국지평화는 삼국지연의의 모태가 된다. 이렇게 역사서→구비문학→소설→연극→영화→VCD→게임으로의 발전 과정은 말하고 듣는 텍스트에서 보고 읽는 텍스트를 거쳐 직접 참여하는 텍스트로 확장 변용된 경우다. 삼국지 변용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요즘 삼국지 게임 산업도 폭발적인 것 같다.

"1989년 일본 코에이사에서 내놓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 1'을 시작으로 20년동안 한·중·일·대만을 포함하여 70종이 넘는 게임이 출시되었다. 현재 국내에 서비스 중인 삼국지 게임은 창천(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 워로드(네오위즈게임즈), 진삼국무쌍온라인(cj인터넷), 액션삼국지(게임빌), 삼국지무한지대(넥슨모바일) 등으로 기종은 PC·휴대폰·비디오게임 등이 주류를 차지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코에이사의 '삼국지'로 11편까지 등장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수가 너무 많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분류해 달라.

"우선 삼절(三絶)을 꼽을 수 있는데 지절(智絶)은 지혜의 화신인 제갈공명, 의절(義絶)은 의리의 화신인 관운장, 간절(奸絶)은 절세의 간웅인 조조로 분류된다."


-도원결의한 유비·관우·장비는 어떤 인물인가.

"도원결의를 한 관우, 장비와 함께 세 사람은 다 같이 평민 출신이다. 즉 유비는 돗자리를 짜서 생계를 유지했고, 관우는 두부장수(야사), 장비는 푸줏간 주인으로 나온다. 그래서 유비는 중국 방직업자들의 신이 되었고 장비는 도축업자들의 우상이 됐으며, 관우는 동양에서 제일가는 신의 경지까지 오른다. 특히 관우는 역대 왕조의 극진한 예우를 받아 송대에 이르러선 황제로 추증되는데, 그 이유는 말에 오르면 금을 주고 말서 내리면 은을 주고, 열 명이나 되는 미녀를 주고, 비단과 적토마까지 하사해도 조조의 수하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천리를 멀다 않고 옛 주군 유비를 찾아 떠나는 의절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유비가 실제로 그렇게 인자한 사람인가.

"소설 속에는 그렇게 그려졌지만 실제론 날래고 사나운 영웅, 즉 '효웅(梟雄)'이었다. 예를 들면 소설에선 뇌물을 요구하는 감찰관을 장비가 버드나무 회초리로 매질하지만 실제 역사에선 유비가 매질한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박망파 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에서 제갈양이 모든 계략을 짜낸 줄 알고 있지만 실제론 유비가 직접 세운 전략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조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우린 조조를 싫어하는데 일본은 또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일본에서는 조조를 높게 평가한다. 이는 유비를 좋아하는 우리와 다른 그들만의 민족성이 아닌가 한다. 조조란 참 복잡한 캐릭터다. 뛰어난 재능, 원대한 계략, 천하통일의 뜻을 품은 걸출한 정치가인 반면, 극단적 이기주의자로 백성을 짓밟으며 자신을 과시한 통치자다. 또한 신분에 관계없이 능력 위주의 인재관리 재능이 있는 반면 재주 있는 사람을 시기하는 이율배반적인 인물이다."


◇ 국내 삼국지 전문가에게 딴죽걸기

-한국의 삼국지는 이문열 삼국지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흥미도나 소설 구상 면에서 평가하면 이문열이 정말 대단한 작가라는 걸 실감한다. 하지만 원문 번역에서 오역한 부분이 많아서 어느 중국 교포가 무려 1천 군데가 넘는 오류를 지적하기도 했다. 인명인 '예양(豫讓)'을 지명으로 오역하는 식이다. 이런 걸출한 작가의 번안본이 나오기 전 제대로 된 정역본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다."



-창작과 비평사에서 나온 황석영씨 삼국지 번역오류 문제로 지상논쟁을 벌인 적도 있었다면서.

"중국어 원문을 기준으로 적벽대전 부분인 43~50회 내용을 집중 검토한 결과 황씨의 삼국지는 중국 옌볜인민출판사의 '삼국연의'와 동일 오류가 반복되고 문장 흐름도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그 문제를 두고 모 일간지에서 반론·재반론을 거듭하다가 황석영씨 측에서 감정적으로 나오는 바람에 토론을 중지하고 말았다. 그만한 대형작가라면 이문열이나 장정일처럼 번안본을 내는 게 더 당당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장래 계획이 있다면.

"삼국지를 잘 알고 좋아하며 한학에 조예가 깊은 파트너가 있다면 '정사 삼국지' 공동 번역을 시도해 보고 싶은데 아직 적절한 파트너를 만나지 못했다. 오는 10월말 중국으로 '삼국지 테마여행'을 가니 많이 동참했으면 한다."

◇삼국지 관련 문의 www.samgookji.com (010-3509-8847)


# 정원기 소장은

청도에서 태어나 영남대 중어중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아시아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2008년 현암사를 통해 국내 최초 삼국지 전문가 자격으로 '정역 삼국지(10권)'를 펴냈다. 또한 2000년 '삼국지사전', 삼국지연의의 모태(母胎)라 할 수 있는 '삼국지평화', 한국의 판소리처럼 사설과 창으로 구성된 설창사화(說唱詞話) '화관색전',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시가를 발췌한 '삼국지 시가 감상' 등을 번역했다. 이 모두 국내 최초 번역이다.

98년 정원기삼국지연구소를 개설, 2000년 온라인상에 홈페이지까지 올렸는데 10년 동안 수많은 국내 삼국지 마니아들의 열렬한 성원을 받았다. 지난 9월1일부터 매주 목요일 동양고전연구소 주최(영남일보 후원) 시민강좌에서 국내 첫 삼국지 강좌를 시작했다. 정역 삼국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지 상식 백가지, 여인 삼국지, 삼국지 사전 등 다수의 저서 및 역서가 있다.








/글=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푸른미르 (2010-09-23 20:51:36)
안녕하세요 교수님.
추석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

본문내용하고는 상관없는 내용이라 교수님께 심히 죄송스럽지만 워낙 궁금한게 많아 교수님께 문의좀 드릴려고 오게 되었습니다.

왕은의 촉기에 대해서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계신지요~?
전 촉기임에도 시종일관 촉에 대한 부정적인 기술과 확인하기어려운 꿈얘기, 배송지의 비판 등으로 그것에 대한 신뢰를 무조건하긴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방회의 관우 멸족 건도 개인적으로 그당시 방회의 권한으로는 쉽지않았을거라 생각하구요.
더불어 위략에 나오는 위연의 자오곡 계책 또한 그것이 실재했던 것도 읩문이긴 합니다. 엄정한 사서인 자치통감에서 그것을 확인할수 없는게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의 이유이기도 하구요.

천학비재하여 교수님께 저에겐 어려운 과제를 문의드립니다. 그럼 얼마남지 않은 추석 연휴 즐겁게 보내십시오 ^^
정삼연 (2010-09-24 23:44:48)
간단히 결론을 내릴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배주에 나오는 210종의 자료들 중에는 신빙성이 농후한 내용, 신빙성이 전혀 없는 내용, 일부는 신빙성이 있지만 일부는 없는 내용 등이 혼재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정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조차도 아전인수 식으로 자신의 놀리에 맞추어 인용하는 실정이 아닙니까? 왕침의 <위서>나 위소의 <오서> 등은 관에서 편찬한 것일뿐만 아니라 진수의 <삼국지>가 나오기 전에 이미 존재했던 자료이지만 왕은의 <촉기> 같은 경우는 동진시기에 개인이 사사로 편찬한 책이니 다분히 사적인 견해가 삽입될 개연성이 있지요. 실제로 사적인 견해 때문에 동시대의 역사가였던 우예라는 사람의 배척을 받아 면직된 적도 있으니까요. -정원기
푸른미르 (2010-09-30 22:13:26)
교수님, 답변 감사드립니다. ^^

요시카와 에이지본 『삼국지』의 정체(1)
하진은 재야 지식인 단체의 대표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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