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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삼연(2014-12-16 23:31:47, Hit : 1518, Vote : 297
 http://www.samgookji.com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의 정체(2)

2. 의의와 성격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는 1939년~1943년에 걸쳐 『츄가이쇼코신포(中外商業新報)』 신문의 연재소설로 나왔다. 같은 시기 일주일 차이를 두고 조선의 일본어 신문인 『경성일보』에도 동시 연재 되었는데, 이 시기는 일본 제국주의가 바야흐로 중일전쟁을 넘어 태평양전쟁까지 일으키며 침략에 광분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내용이 일본 군국주의의 ‘천황제 파시즘’과 무관하다고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일전쟁 당시 요시카와 에이지는 마이니치신문 특파원으로 중국 화베이(華北)에서 종군했으며 그 후에도 이런저런 군사적 임무까지 수행한 전력으로 보아 그의 작품 속에 군국주의 찬양, 전쟁의 필연성, 침략의 정당성 같은 이데올로기가 배제되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삼국지가 희대의 전쟁소설임을 감안하면 자신이 처한 시대적 문제의식이나 사명감을 반영함에 있어 이 보다 더 이상 좋은 소재도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중문학자 권용성 선생도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의 수용과 사적 의미」란 글에서 몇 가지 예를 들어 지적을 하고 있는데 이제 그 예를 필자 나름대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그 하나는 유비가 모친에게 선물할 차를 보존하는 대신 황실의 유물인 보검을 잃어버리고 돌아오자 노모는 아들의 행실을 경계하기 위해 어렵사리 구한 차단지를 강물에 던져 버린다. 이 순간 유비는 대오각성하게 되는데, 이 스토리에서 우리는 ‘차보다는 칼’을 부각시키는 작가의 의도를 인지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차’ 또는 ‘다도’는 ‘평화와 여유’를 상징하는 반면 ‘칼’은 ‘전쟁과 비상시기’를 연상할 수 있지 않은가. 말하자면 한가롭게 차를 마시며 소일할 시기가 아니라 칼을 들고 전쟁에 참여해야할 비상 시기임을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익주의 유장이 유비의 군세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한중의 장로에게 원조를 요청하는 장면에서 작가는 ‘위험한 사상에 기반을 둔 침략주의 국가에 읍소하니……’라는 멘트를 했다. 이는 1938년 대외 팽창 정책을 펴던 독일이 일본에게 소련, 영국, 프랑스를 가상 적국으로 하는 군사동맹을 제안하다가 1939년에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한 적이 있는데 이에 실망을 느낀 일본 정부가 ‘기괴한 국제 정세’라는 표현을 쓴 사실과 일맥상통하는 멘트가 아닐 수 없다. 익주에서 볼 때 유비는 동쪽에서 온 군사집단이고 장로는 소련처럼 북쪽에 위치한 군사집단임을 상정한다면 상당히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는 서문 중에서 ‘현대의 중국 대륙에는 『삼국지』 시대의 치란흥망이 그대로 있으며 작품 속 인물도 문화와 인물은 변해 있지만 아직도 오늘날 살아있다’고 한 말이다. 삼국지 시대의 치란흥망이란 한마디로 줄이면 한 왕조 말기의 ‘난세’를 뜻한다. 사방에서 도적떼와 지방군벌이 벌떼처럼 일어나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는데 유비 삼형제가 이를 구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전쟁에 뛰어들지 않았는가. 중일전쟁에 종군기자로 참여한 요시카와가 당시의 중국 정세를 그와 같은 관점으로 보았다면 일본 군국주의가 전쟁터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필연성, 또는 명분을 모색한 것으로 이해할 소지도 있을 것이다.


이와 유사한 예는 권 선생이 지적한 문장 외에도 도처에 산견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조조가 여백사를 죽이고 진궁과 함께 달아나는 장면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현상수배자 신분인 조조가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도와주기로 한 아버지의 친구 여백사 가족 여덟 명을 몽땅 도륙하고 마는데 이게 실수였다고 치더라도 자신의 행위가 실수임을 인지하고도 과일과 술을 사들고 오는 여백사마저 죽여 버린 일은 조조의 극단적인 잔인성과 에고이즘을 절묘하게 서술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주목할 부분은 진궁의 행동이다. 원본에서는 먼저 잠든 조조를 두고 죽일까말까 망설이던 진궁이 마음속으로 절교를 선언하고 떠나는 반면 요시카와 에이지본에서는 엉뚱하게도 ‘난세에 필요한 사람’이고 ‘하늘의 뜻’이라 결론짓고는 조조의 곁에서 함께 잠을 청한다는 점이다.


이는 이탁오본이나 모종강본과도 상반되는 내용으로 그야말로 원작자의 의도를 완전히 왜곡한 경우이이다. 왜 그랬을까? 삼국지 시대나 요시카와 에이지 시대나 다 같은 난세였음은 거론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삼국지』 시대에는 지켜야할 인간의 기본 도리가 요시카와 시대에 와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단 말인가? 『삼국지』 시대에는 ‘이리와 같은 자’로 매도당하던 인격이 요시카와 시대에는 ‘난세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하늘의 뜻’으로 바뀐 건 인간의 보편적 가치관이 변한 게 아니라 당시 일본 군국주의의 사정이 그만큼 다급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만만하게 보았던 중일전쟁의 장기화에 직면하여 ‘동아 협동체론’을 외치며 태평양전쟁으로 치닫던 일본 제국주의의 다급함이 조조의 비인간적 행위마저 거부감 없이 수용한 것이다. 당시의 국제정세에 대한 총력전체제를 감안하면 그들이 조조의 악랄하고 잔인한 행위를 통해 현실적 카타르시스를 맛보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


이와 유사한 예를 한 가지만 더 언급하자면 조조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들 수 있다. 유비 형제가 화공으로 황건적을 괴멸시키는 과정에서 불타는 초원을 배경으로 나타나는 조조의 형상은 투구, 갑옷, 말안장, 칼집까지 선홍색이다. 뿐만 아니라 수하의 5천 병사도 전원 붉은 깃발을 들었다. 모두가 붉은색이다. 불타는 초원, 병사들의 깃발, 투구, 갑옷, 말안장, 칼집까지, 조조의 캐릭터는 왜 이토록 강렬한 붉은 색일까? 원본에는 겨우 병사들의 깃발만 붉은색으로 나와 있을 뿐이고 그나마 등장시기도 훨씬 뒤에 안배되어 있는데……. 이 강렬한 붉은 색에서 욱일승천기가 연상되는 것은 필자만의 상상일까? 하지만 필요하다면 자신을 도와준 은인도 가차 없이 죽여 버릴 수 있는, 그러고도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조조의 강심장과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는 결코 작가의 즉흥적인 구도에서 나온 매치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와 관련된 내용으로 일본의 영향력 있는 종교지도자 이케다 다이사쿠의 글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의 글에서 ‘요시카와가 “역사란 승자가 만든 패자 제재의 기록이다. 따라서 역사를 고쳐 쓰는 것이야말로 문예가 할 일 중 하나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그의 소설은 (이미) 뒤집어놓은 역사를 다시 뒤집어 버린 차원 높은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그는 역사소설을 자동차의 백미러에 비유했는데 이는 뒤를 살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쌍방향 안목으로 시대의 변화와 인간 내면의 영원성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물론 저명한 평화주의자인 이케다 다이사쿠가 일본 군국주의를 옹호할 리는 없을 것이다. 이는 그의 스승들이 군국주의에 반대하다 투옥되기도 하고 옥사하기도 한 사실을 두고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요컨대 필자가 여기서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점은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가 가진 역사적 의의와 성격일 따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케다 다이사쿠의 말을 다시 음미해본다면 앞에서 언급한 필자의 상상력이 단지 허상만으로 치부될 일이 아님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이문열 삼국지와 요시카와 삼국지의 유사점과 상이점(1)
요시카와 에이지본 『삼국지』의 정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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